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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미래 May 09. 2024

발레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photo_영화 로봇드림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채 벚꽃도 만개하지 않은 4월에 이 다사다난한 한 해가 어서 저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파묘'의 화림이라도 불러 조상 묫자리를 다시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 일상을 마구 헤집다 못해 할퀴는 일들이 쌓여 봉분을 이루었다. 


영화 '로봇 드림'에서 고장 나고 다리가 부서진 로봇처럼 내 일상은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갇혔다. 현실의 아편처럼 영화만 줄기차게 봐서인지 자꾸만 그 영화 속 인물들에 대입이 된다. 마지막으로 더하자면 영화 '추락의 해부'의 산드라처럼 막막하고 고독한 법정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나는 나름 열심히 연재하던 발레 글도 쓸 수 없게 되었고 식사도 거르게 되었다.  


시작은 지난 2월부터였다. 2월 초 아이가 학교에서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콘크리트 벽면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혀 뒤통수가 찢어진 사고였다. 보드라운 목련잎 같던 아이의 두피 살갗이 벌어졌고 미지근해서 섬뜩한 피가 아이의 머리에서 목으로 가슴팍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도 이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 힘들다. 


아이는 상처 난 곰돌이 인형처럼 벽면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두피는 원래 혈관이 많은 부위라 상처가 나면 출혈이 많다고 한다. 아이는 머리가 아픈 충격보다 온몸으로 쏟아지는 피에 놀라 하얗게 얼어 있었다. 그걸 본 친구도 놀라 선생님께 외친 첫마디가 '선생님, 00이 살려주세요!' 였다고 하니 그 상황이 어땠을지 보지 않아도 그려졌다. 


나는 너무 이른 시간, 핸드폰에 학교 번호가 뜰 때가 불안한데 그날은 유독 더 그랬다. 

담임 선생님의 전화였다. 


어머니... 00 이가 많이 다쳤습니다. 지금 바로 오셔야겠습니다.

얼마나... 다쳤나요?

피가 많이 났고 지혈 중입니다, 최대한 빨리 와주십시오. 


저보다 무서운 말이 있을까. 나는 온몸에 피가 빠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부여잡고 학교로 달려갔다. 

아이는 양호실에 앉아 있었다. 그 작은 머리에 붕대를 몇 번이나 감았는지 얼굴 피부가 위로 한껏 당겨져 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툭 하고 댐이 무너지듯 크게 울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히 아이를 다독이며 정신없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때까지 나는 아이가 실수로 넘어져 다친 줄만 알았다. 선생님도 많이 놀라, 경황이 없어서 설명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응급실에 도착해 의사가 차트를 작성하며 아이에게 어떻게 다쳤는지 물었다. 그때서야 나는 상황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는 친구가 밀어서 벽에 부딪혔다고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하고 선생님께 전화했다. 


선생님은 한 친구가 놀다가 실수로 아이를 밀었는데 너무 세게 밀어서 벽에 뒤통수를 부딪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이가 비명을 내 지르며 두피를 꿰매는 동안 내 가슴 한 켠은 돌을 얹어 놓은 듯 묵직해졌다. 


실수로 머리가 저렇게 됐다고? 


선생님도 그 자리에서 목격한 것이 아니기에 주변 아이들 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사자인 아이에게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해 학생의 이름을 임의로 '훈'으로 칭하자면 

훈이에게 아이가 장난을 걸었는데 발끈하며 있는 힘껏 아이를 밀었다는 거였다. 훈이는 그렇게 다치게 할 마음은 없었을 거라고 아이가 말했다. 훈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 생일에도 왔던 친구인데 다소 덩치가 큰 아이였다. 


나는 솔직한 심정으로 실수였다고 해도 화가 났다. 사람을 그렇게 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달음에 달려가 그 아이와 부모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담임 선생님은 고의가 아닌 실수 인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나는 마냥 화를 낼 수도 참을 수도 없는 이상한 감정에 빠졌다. 


이번에 안 사실은 가해자가 있는 사고는 '상해'로 분류되어 건강보험 처리가 안 되는 것이었다. 

'놀다가 실수로' 

이 부분이 병원에서도 의견이 달라서 건강보험 적용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혹시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두는 걸 추천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건보 적용이 안된다고 공단에서 거절되고 보험료가 환수되더라도, 피해자 측이 아닌 가해자 측으로 환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을 몰랐던 나는 절차가 복잡해질 것 같아 일반으로 처리했고 이후 학교 공제회 지급까지 거절당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렇게 된 부분을 재차 문의하니, 병원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재신청해주었다. 물론 담당자와 긴 통화를 했고 병원에 다시 방문해 결제 취소와 재결재, 서류를 보완해 학교 공제회에 재 신청하는 수고로움도 더해졌지만 말이다. 


보험 담당자는, 

놀다가 실수로 라는 말과 

둘이 밀기 놀이를 하다가 실수로 라는 말은 전혀 다른 뉘앙스라고 했다. 


전자는 보험 적용을 하기 어렵고 후자는 가능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처음 차트를 작성할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보험 적용이 명확하게 되게끔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거짓말을 하는 건 안 되겠지만 말이다. 


다 나열할 수 없지만 힘든 과정이었다. 학기 말이었고 전근이 예정되어 있던 담임 선생님은 홀연히 사라졌다. 사고 당일 훈이에게서 사과 편지와 케이크를 받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두피의 상처와 진물 때문에 돌아 누워 자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며 억울했다.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옹졸해지는 것에 놀랐다. 


나는 참지 못하고 훈이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그리고 아이의 상태와 병원에서 진료받는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훈이 어머니는 진심으로 미안해했고 연락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훈이의 어머니는 선생님께 설명을 듣지 못해 그렇게 크게 다친 줄 몰랐다고 했다. 선생님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셨는지 상대 부모님께 전화도 해주시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사고로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괴롭지만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음이 불편해질 수 도 있지만 자세하게 알려야 한다. 학교, 가해 학생, 그 부모님에게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넘어갈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그다음 학폭 사건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 일은 서막에 불과했다. 아이의 머리 상처에 딱지가 생기기도 전에 더 괴로운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 남길 사건 이후로 발레를 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후의 이야기는 아이 학교 문제가 주를 이루게 될 것도 같다. 그 동안 발레를 배우며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우스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그렇게 땀을 흘려도 살이 빠지지 않더니 운동을 쉬었는데도 3키로가 빠졌다. 힘들게 다져온 근육들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신기루 같다. 


발레 수업에 계속 빠지게 되면서 유독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점프였다. 


발레의 기초 자세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점프를 한다. 바를 잡고 훈련을 하고 나면 도약이라도 하듯 무릎을 한껏 굽혔다가 허공에 몸을 던지는 점프를 배운다. 


제자리에서 뛰는 것과도, 멀리 뛰기와도 다르다. 


발레의 점프는 몸을 공중으로 보내는 것이다. 내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고 상상하면서 착지할 때도 사뿐해야 한다. 그런 점프가 너무 하고 싶었다. 


아파트에서는 층간 소음 때문에 할 수 없었고 발레 학원의 바닥은 탄성 마루라 확실히 달랐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터질 것 같을 때 점프를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어릴 적 퐁퐁 (지역에 따라 방방이)을 하면 해방감이 들던 것처럼. 


맞다, 나는 어서 다시 발레를 시작해서 해방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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