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비벼도 나오지 않는 느낌.
머리카락보다 가늘지만 표면이 거칠어 눈을 비빌 수록 안구를 생채기 내는 나일론 실오라기 하나가 마침내 손톱 끝에 잡혀 징그럽게도 쑤욱 뽑혀 나올 때의 기분.
내 일상에 그런 이물감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성가신 먼지들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들이닥쳤다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내 주위를 돌아다닌다.
펄펄 끓는 차를 급하게 삼킨 듯 가슴에 오랫동안 열이 났다.
가해한 아이들이 있었고 피해자는 내 아이였다.
실오라기 정도로 성숙한, 11살짜리들에게 무슨 응수를 할 수 있을까. 그 부모들에게 화를 낸들 바뀌기나 할까.
그냥 내 손으로 그들을 찾아내고 뽑아냈음에, 멀리 날려버릴 수 있음에 안도할 수밖에.
아이들은 너무나 순진 무구해서 때론 잔인하다. 그 작고 연한 손가락으로 개미를 짓이기듯 내 아이를 처참히 뭉개버렸다. 이유 없이 그냥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학폭 하는 법' 따위를 검색하고 재미 삼아 행동에 옮겼다. 문자를 차단하면 그 이전 메시지가 모두 지워진다고 믿는 아이들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발 더 나아가 내 번호까지 알아내 문자를 보냈다. 친구의 부모님에게 문자로 대거리를 하다니 세상이 미쳐가고 있는 건가, 사람들이 변하고 있는 건가.
우리 가족에게는 고통의 밤이 왔다. 자다가 이상한 경련을 하는 아이를 다독이고, 울부짖는 아이를 안아주었던 긴 터널 같은 밤이 갑자기 찾아왔다. 안 하던 틱을 하고 우리 몰래 눈물을 훔치는 걸 목도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을 실감했다. 억장지성. 억 길이나 되게 높게 쌓은 성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이었다가 우리는 함께 추락했다. 더 깊고 어두워진 일상으로.
마침 새 학기라 반이 바뀌어 친한 친구가 없었다. 아이는 어느날 저녁을 먹다가 눈물을 흘리며 토로했다. 다른 친구들도 자기를 욕하는 것 같다고.
아이는 한쪽 다리를 잃은 개미처럼 누가 보아도 상처 입은 모습으로 학교를 가야 했다.
선생님은 가해 학생들과 확실하게 분리해주겠다고 했지만 등 하굣길에 마주쳤다. 그들의 반성 없이 의기양양한 모습에 아이는 두 번 세 번 상처를 덧입었다. 왜 우리는 상처받는 쪽이 되어야 하나. 나도 그들을 똑같이 가해하고 싶었다.
학폭 관련 기사를 검색하던 나는 피해 학부모가 가해 학생들에게 고함을 질렀다가 아동 학대로 처벌받은 사례를 읽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속이 편해질까. 아닐 것 같다. 나는 대신에 그들을 조용히 저주하는 쪽을 택했다.
그 아이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중학생이 되어 더 나쁜 짓과 비행을 일삼는 인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양지로 향할 것이고 너희는 한없이 음지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성인이 되면 지금처럼 아무 기록도 남지 않는 것 대신 다양한 범죄 기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시는 사회의 양지로 들어설 수 없게 족쇄를 채우는 활자들이 새겨질 것이다.
이 저주가 부당한가?
피해자들은 머릿속에서 실행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그 가해자들 무리가 경찰서에 끌려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학폭위를 열어도 지속적인 폭력이 아닌 이상, 서면 사과로 끝날 거라고 했다. 학교에 처음 가자마자 들었던 말이다.
아이도 나도 치미는 분노를 꺼뜨리기 힘들었다. 매일 진하게 축적되는 그 분노가 우리를 모두 집어삼키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선처'하는 것이었다. 용서가 결국 우리를 지키는 최종 수단이었다.
'어머니 너그럽게 선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폭부장이라는 그 사람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 예민한 학부모에서 너그럽게 선처한 학부모? 때론 태도가 사람을 정의한다는 걸 그를 보고 알았다.
가해 학생들의 단톡방의 기록을 지우지 말고 보관해 달라는 요청과 심리 상담 센터를 다니겠다고 학교에 알렸을 때 그 학폭부장이라는 선생님은,
요즘 부모들 참 예민하다. 고 했다.
내게 전화가 이미 걸린 줄도 모르고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 혼잣말을 마치 숨 쉬듯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며 할 수 있는 건 어떤 지경에 이른 것일까. 나는 더 화낼 힘도 없어서 그를 딱하게 여겼다.
전 후 사정도 살피지 않았겠지.
내 아이와 가해 학생들 이름도 매번 헷갈려서 틀리는 그 선생님께 기대하는 것도 없었다.
그 선생님 말대로 사건을 교육청으로 올려도 비슷했을 것이다.
무력했다. 가해 학생과 그 부모들과 대면한 자리에서도 나는 힘이 빠졌다.
남자아이가 사과하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전에 아들이 교내에서 마주쳤다고 했는데 보고도 그냥 지나갔다고 했다. 집에 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애 엄마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아이를 찾아냈고 다시 불렀다. 그 애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성을 띤 것처럼 가해 부모와 우리 사이에 둔탁하게 쌓여 갔다.
여자애의 엄마는 계속해서 울었다. 미안함과 당혹스러움, 슬픔이 뒤엉킨듯한 울음이었다. 차라리 그게 더 인간적이었다. 사과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은 남자애의 엄마는 줄곧 굳은 얼굴이었다. 이 일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인 양 자리에 억지로 끌려 나온 듯한 얼굴이었다. 뒤늦게 교실로 들어온 남자아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과해.
미안해.
그 삼초 남짓한 사과를 듣는 동안 나는 완전히 힘이 빠졌다.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았다. 사과를 들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자아이가 내게 보낸 사과 편지의 끝에 '다시 00 이와 놀아도 될까요?' 란 말이 적혀있었다.
그런 짓을 하고도.
뒤에서 온갖 욕과 따돌림과 장난을 치던 그 아이를 나는 지난 1년 동안 먹이고 대접해 줬다. 우리 집에 거의 매주 놀러 오는 아이였다. 나는 그 애가 단 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안다. 늦게까지 있다가 저녁까지 먹고 가도 그 부모에게선 전화 한 통 없었다. 의아했지만 바쁘신 분들인가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화가 났다. 그렇게까지 아이를 방치했으니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아이의 핸드폰을 조금만 살폈더라면 그런 단톡방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내 아이가 이렇게까지 상처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자애가 남긴 마지막 말은 너무나 무신경해서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그 부모에 그 아이구나.
그러니까 그런 짓을 하고도 뻔뻔하게 다시 놀고 싶다고 하는구나.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최은영의 소설 '밝은 밤'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사과를 받았으나 끝내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를 떠올렸다.
그 나라에는 사과를 받았기에 더는 화를 낼 수 없는 사람과, 이미 벌어진 상처를 무력하게 들여다보는 사람과,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끊임없이 되묻는 사람과, 애가 왜소하고 약해서 함부로 대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도 완전히 용서할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려다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키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