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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미래 Jul 01. 2024

힘 빼고 살기

발레는 내가 해 본 운동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

매 수업 때마다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변함없이 힘들다는 것도 신기하다.

하다 보면 몸이 좀 익숙해지기도 하고 수월해져야 하는데 말이다.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턱까지 차는 순간이 오면 학창 시절 죽기보다 싫었던 체력장이 떠오른다.  

운동장에 엎어져서 땀에 묻은 모래알이 입에 들어가 질근질근 씹히던 오래 달리기부터, 1초 만에 떨어져 굴욕적이었던 턱걸이까지 기초체력을 평가한다는 체력장은 내 자존감을 앗아갔고 빈혈을 가중시켰다.

그랬던 내가 이제 돈을 들여서 매주 운동을 가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과거의 나에게 이렇게 변명하고 싶다.

40대에는 기초 체력은 고사하고 기초 수명을 늘리기 위해 운동을 해야만 한다고.

운동을 멀리하던 지난날의 내 몸은 참 무거웠다.

몸무게도 더 나갔지만 기운 없이 축 쳐져서 더 무겁게 느껴졌다.

무겁다와 무섭다.

발음도 모양도 비슷한 이 말처럼 어느 순간 나는 내 몸이 무겁다 못해 무섭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피곤한데 잠들지 못하던 밤들이 그랬다.

조금이라도 불안한 일이 생기면 내 몸, 내 뇌는 나를 잠들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도 않는데 계속 생각을 했다.

밤 12시가 넘어가고 새벽 2시가 기로였다. 그때까지도 못 자면 항상 밤을 새웠기 때문이었다.

오전 8시에 몽롱하게 일어나지 않으려면 2시쯤에는 약을 먹는 게 나았다.

누가 마취총이라도 쏴줬으면, 수면 내시경을  때처럼 열까지 세기도 전에 아떨어졌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원래는 스틸녹스라는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반 알씩 쪼개 먹었지만 어느 순간 부작용이 나타났다.

잠에 드는 대신에 악마의 보상처럼 우울감이 생겨난 것이다.

긴 장마를 지낸 화분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속에 독버섯이 자라고 점점 포자를 퍼뜨리는 기분이었다.


가족들은 도대체 왜 못 자는 거냐고 채근했다.

니가 몸이 덜 힘들어서 그런 거다, 그냥 눈을 감고 백까지 세봐라, 상추를 먹어라 등등.  

전혀 도움도 되지 않고 불면을 가중시키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내가 우울증에 걸린다면 첫마디는 분명 니가 왜 우울증에 걸리냐 일 것이다.  


수면제를 계속 먹다가 우울증까지 걸리면 보나 마나 가족들에게 더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므로 나는 약을 바꿨다. 병원에서 새롭게 처방받은 약은 다행히 괜찮았다. 그래도 내성이 생길 수 있어서 아주 힘들 때만 먹기로 했다. 약을 걱정하는 내게 의사가 권유한 명상이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해보라는 의사의 말에 잠들기 한 시간 전에는 스마트 기기를 멀리하고 방을 어둡게 한 다음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머리를 비웠다. 넷플릭스의 '헤드 스페이스 숙면이 필요할 때' 영상도 도움이 되었다. 생각을 내려놓고 잠에 들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약에 언제까지 의지할 수는 없었다.


나는 발레를 배우면서 불면증의 이유를 어렴풋이 찾았다.

선생님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이 바로 '힘 빼세요'였는데, 그러고 보면 내 몸은 항상 긴장한 채였다.

잠에 드는 건 몸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힘든 사람인 것이다.


요즘에는 발레에 요가까지 하고 있지만 뻣뻣한 목과 허리, 다리의 긴장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여태껏 뼈인 줄로만 알았던 승모근은 선생님이 누를 때마다 깜짝 놀랄 만큼 단단하다.

유난히 발달된 승모근은 거울에 비친 나를 발레리나 대신 운동 꽤나 한 운동선수처럼 보이게 한다.


최대한 가볍게 움직이고 힘든 척도 하지 않아야하는 발레인데 내 몸 부터가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모양새였다.


코어에만 힘을 주고 어깨나 손 끝에는 힘을 제발 푸세요!


선생님의 간곡한 요청에도 머리로는 그러자 하는데 되려 온 몸에 더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동작을 할 때 좀 더 의식하며 목과 손 끝에 힘을 풀려고 한다. 그러면 선이 더 부드러워지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사실 손이나 팔에 힘이 들어가면 발레가 아니라 로봇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긴장을 풀면 실은 더 사람다워지는게 아닐까.




그간 얼마나 용을 쓰며 살아왔던 걸까 싶을 만큼 몸은 기억했다.

가정 불화로 불안했던 과거의 나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잠식 되었던 20대의 나와는 이제 작별한 줄 알았는데 몸은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과거를 거쳐온 게 지금의 나라는 걸.


매일 밤 잠들기 전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가만히 호흡한다. 내 안에 파도치는 불안이 고요해질 때까지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을 최대한 길게 한다. 마시는 숨에 엉망으로 매듭지어져서 팽팽해진 내 몸 구석구석이 조금씩 풀어지고 숨을 참았다가 훅하고 내뱉는 숨에 마침내 민들레 홀씨처럼 자유롭게 흩어지는 걸 상상해본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그러니까 힘을 좀 빼고 살자. 이제는 힘이 들지 않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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