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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미래 Mar 18. 2024

왔다. 발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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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도 왔다. '발태기'가.  

발레를 배운 지 어느덧 1년, 그 정도면 턴도 하고 점프도 할 수 있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 한 발로 서는 것도 잘 안된다. 물론 행사장 바람 인형 같던 처음보다는 발레라는 뼈대가 조금 잡혔다.   

그러나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가랑비에 옷이 젖듯 오직 나만이 알아차릴 만큼 발레가 늘다 보니 그분이 오셨다. 일명 발태기! 


  발태기는 권태기와 발레를 합친 단어로 취미 발레인들이 발레가 늘지 않는다는 ‘핑계’로 학원을 멀리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나는 학원에서 고인 물이다 보니 발레 멤버들이 돌연 사라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 학원 오픈 시기에 함께 하던 수강생들이 거의 다 떠나고 나니 이참에 나도 쉬어 볼까 하고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핑계 거리는 많았다. 하루 종일 아이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겨울 방학, 약속, 여행이 많은 연말과 새해. 그 기간들도 무사히 지나왔건만 최근 코로나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발태기가 찾아왔다. 

  

  연말에 다녀온 치앙마이 여행은 증세를 악화시켰다. 11박 12일로 다녀온 여행의 모토는 온전한 '쉼'이었다. 한 해 동안 힘들었던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노는 여행으로 치앙마이를 선택한 것은 괜찮은 결정이었다. 


치앙마이에서 할 일 이라곤 마사지와 수영, 맛집 탐방, 쇼핑뿐이라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은 길 가에 고양이들 마냥 제각기 늘어져 있었다. 그 분위기에 발맞춰 먹고 놀고 했더니 겨우 잡혀 있던 내 종아리 근육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매일 마시던 망고 주스와 맥주는 아킬레스 건에서 출발해 뱃살, 승모근까지 구석구석 돌며 근육은 몰아내고 말랑한 행복감과 지방 같은 것들로 채워 주었다.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망가졌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원위치되었다는 것을. 나는 실수가 아닌 자의로 내 몸의 포맷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억울했다. 겨우 열흘 남짓 운동을 쉬었을 뿐인데, 여행은 고리대금 업자 마냥 통장 잔고와 더불어 내 근육까지 털어갔다. 그렇다고 완전히 운동을 놓았던 것도 아니었다. 치앙마이에서도 나는 요가 수업을 들었다. 


다만 그곳의 요가는 명상에 가까웠다. 유럽이나 호주에서 온 요가 강사들은 향을 피우고 '인 헤일, 엑스 헤일'을 재창하며 흔히 아는 기본 요가 자세로 수업을 이어 나갔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요가 수업이다 보니 어렵지 않은 면도 있었지만 숨이 턱턱 막히던 발레 수업과 비교도 안될 만큼 편안했다. 

한 마디로 운동이 안 됐다. 


  공교롭게도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레 선생님이 바뀌었다. 기존의 A선생님은 호통마저 개그로 승화하는 스타일이어서 수업 내내 밝은 에너지가 넘치던 분이었는데, 새로운 B 선생님은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첫인상을 압축하자면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었다.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러시아 발레단이라면 저렇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였다. 


수업 시작 전 그는 간단한 목례도 생략한 채 출석을 확인했다. 모스크바의 냉기가 느껴지는 권위적인 표정과 낮은 톤의 목소리. B 선생님은 생애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수업 내내 우리의 실수를 모조리 잡아내고 교정하는데 집중했다. 약간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턴을 돌 때 팔이 자꾸 쳐지면 기존 A선생님은 


누가 부르셨어요~ 웨이터. 웨이터 팔 안 돼요. 


깔깔 대며 놀렸는데 B 선생님은 조용히 다가와 팔을 툭 터치하는 식이었다. 웃음기 싹 빠진 수업은 엄숙하리만치 조용해졌고 수강생들의 숨소리만 되려 커졌다. 


그동안 정확한 발레보다는 즐거운 발레를 한 것일지도 몰랐다. 발레가 즐거운 율동이 아니었던가? 

아니었다. 발레는 발 끝까지 정확함을 요구하는 예술이었다. B선생님은 기본 플리에 자세와 발 포지션조차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허벅지 턴 아웃해야죠! 꼬리뼈를 더 아래로! 골반 앞으로 내밀지 마세요!


순간 귀여운 목소리의 A선생님이 오리 궁댕이! 하며 나타날 것만 같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우리의 믿을 수 없이 한심한 실력에 그녀도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고 혼나는 기분을 졸업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그렇게 뛰면 무릎 나가요!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지 점프를 하다가 발목을 삐끗했다. 가만히 잡아보니 꽤 통증이 있었다. 


점프할 때 발 끝까지 포인하고 제대로 플리에 해야죠. 


선생님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지적했다. 그런 지도법은 어쩌면 열의를 다해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너무나 엄격한 수업 분위기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자, 팔에 힘을 풀어보세요. 아니 다시, 다시, 다시.  


다른 수강생들보다 눈에 띄게 실력이 쳐지다 보니 선생님은 제대로 될 때까지 나를 밀착 마크했다. 자연스레 얼굴은 붉어졌고 평소 하지도 않던 실수를 반복했다. 


아, 오늘이 그날이구나. 


속으로 이 수업만 끝나면 발레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고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내 몸을 조여 오는 레오타드도 실밥이 터지든 말든 벗어던지고 잠옷보다 편한 태국 코끼리 바지나 입고 늘어져 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자 홀가분해졌다. 


간단했다. 그저 발레를 배우지 않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수업을 가기 전에 식사를 조절하지 않아도 되고 근육이 파박 터질 때까지 공포스런 스트레칭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자괴감에 빠지는 스텝들도 깡그리 잊어도 되고 거울 앞에 선 부끄러운 나와 더 이상 대면하지 않아도 된다. 


내 체중을 지탱해 주던 바 Bar 도 안녕, 수업이 마치면 달려가던 정수기와도 안녕, 그렇게 학원의 모든 것과 영영 이별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냥 시원할 줄 알았는데 낯익은 감정이 올라왔다. 그건 마치 아직 좋아하는 연인에게 힘들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 기분과 비슷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레 가방을 옷장 구석으로 밀어 넣어 보았지만 여전히 실밥이 터질까 조심조심 레오타드를 벗고 손빨래를 했다. 


그때서야 고백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헤어지기에는 너무 좋아져 버렸구나.  

 

그 어떤 무서운 선생님이 내 멘탈을 탈탈 털어버린다고 해도 발레를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있을까. 발레라는 우아한 문턱은 나와 눈곱만큼도 어울릴 생각이 없는데 매번 최선을 다해 온몸을 바치게 된다.  


발레에 왜 이렇게 몰두하나 생각해 보니 그 대답은 '나'였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완벽주의를 연구한 이동귀 교수의 말은 나를 관통했다. 그는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완벽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다양한 부류가 있다고 했다.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분명 그중 하나가 나였다. 

나는 '사회부과 완벽주의자'였다. 사회부과 완벽주의자는 주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겉으로 완벽하려 하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려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내 오래된 불안은 이런 성향에서 온 것일지도 몰랐다. 


치앙마이에서도 나름 방탕하게 쉬었다고 생각했지만 기어코 현지 요가 수업을 찾아내 운동을 했던 것도 내 성향 때문이었다. 여행을 다녀와 근육이 완전히 사라진 걸 선생님에게 들키기 싫었던 것이다. 평생을 남 눈치 보며 살았는데 이게 완벽주의자의 특성 중 하나라니 서글프다. 


발레는 완벽주의자들을 위한 운동이다. 수강생들이 하나 같이 발레복에 진심인 건 우연이 아니다. 복장이 완벽하게 갖춰졌을 때의 자기만족임과 동시에 남을 의식한 것이다.   


다들 나와 같은 유형이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MBTI도 같지 않을까 유추해 본다. 


선생님이 가뭄에 콩 나듯 해주는 칭찬 또한 그 어떤 운동보다 달콤하다. 수강생 관리 차원일지도 모르지만 오늘 자세 좋아요, 많이 늘었어요, 와 같은 말을 들으면 처음 칭찬받은 1학년으로 돌아간 기분이 된다. 


실제로 발레리나들은 완벽주의자에 가깝다고 한다.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들은 흐트러짐 없이 모든 동작들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셀 수 없이 턴을 하고 점프를 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짓는 그들을 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새로 온 선생님도 분명 완벽주의자일 것이다. 반면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얼마나 큰 결점 덩어리 일까. 엉덩이에 힘을 주는 걸 까먹고 쭉 내밀기를 하질 않나, 계속 고개를 숙이지 않나. 어쩌면 그녀의 극심한 직장 내 스트레스가 내 몸뚱이 일지도 모른다. 그리보면 냉담한 표정도 이해가 간다. 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나저나 권위적인 선생님을 핑계로 발레를 그만 두려 했건만 오히려 더 빠지게 되었다. 


두 번째 수업에 내가 한 발로 꽤 오래 중심을 잡자 그 상심에 싸였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미소 덕분에 나는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새 레오타드를 결제했다.  



내 발태기는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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