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겉으로 보기엔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발레리나들이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를 하고 몇번이나 턴을 도는게 쉬워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온 몸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근육에 힘을 주어야 한다.
특히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있으면 숨을 언제 내쉬어야 할지 몰라서 머리가 핑 돌기까지 한다.
제자리에서 몸풀기만 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니
체력 소모가 클 수 밖에 없다.
운동을 하기 전에는 되도록 가볍게 먹고 가는 편인데
발레 수업날에는 제대로된 식사를 하고 간다.
보통 한시간 전에 먹어야 좋다.
수업 바로 전까지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고 가면
먹은 게 끅하고 올라오는 아주 불쾌한 경험을 한 이후로,
넉넉히 한시간에서 두시간 전에 밥을 먹고 간다.
소화도 어찌나 잘되는지 몰래 트름을 한 적도 많다.
수업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위장도 주의해야하지만
대장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아랫배가 좀 불편하다 싶을 때는 수업을 그냥 포기한 적도 있다.
누워서 다리 찢는 동작, 아래로 숙였다가 일어서는 동작, 점프 동작까지
가스가 마구 분출되기 쉬운 동작이 무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플리에(양 무릎을 밖으로 굽히는)를 하고 위로 점프를 하는데
방귀가 크게 분출되었다. 그땐 마치 인간 로케트가 된 기분이었다.
소리까지 났다면 그 길로 발레와는 작별했을 것이다.
이렇듯 속을 요동치게 하는 발레 수업이 끝나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배가 고프다.
기분 탓이겠지만 볼록했던 배가 들어간 느낌도 들고 다리 근육도 한결 단단해져 있다.
튼튼해진 두 다리는 성큼 성큼 나를 떡볶이 집으로 이끈다.
발레 선생님은 아실까.
내가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항상 맞은 편에 있는 떡볶이 집으로 향한다는 걸.
갈등을 한적도 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직진을 하면 집이고 왼쪽으로 건너면 떡볶이 집이다.
하지만 내 내면에 큰 이견이 없는 이상 보통은 왼쪽으로 간다.
사실 발레를 하러 가기 전부터 떡볶이 먹을 생각에 기분이 들떠 있곤 했다.
한 주 동안 열심히 운동한 면죄부도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 속으로 메뉴를 떠올린다.
떡처럼 생긴 폼롤러로 다리를 풀면서,
거울 속의 오동통한 내 몸을 보며 감자튀김까지 먹어도 될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고민은 무슨, 먹으면 안될 몸이다.
기껏 똥배에 미미하게 나마 힘이 생기려 하고 붓기도 빠지려 하건만
나는 이 몸에 매번 떡볶이를 투척한다.
이쯤되면 떡볶이를 먹기 위해 발레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유독 힘들었던 날에는 떡튀순 세트가 좋다.
고민할 힘도 없기 때문에 그냥 세트로 다 때려먹는 거다.
걸을 때에도 발레리나처럼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가라는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고고한 학처럼 목을 쳐들고 한 손에 따끈한 떡볶이 봉지를 들고서
빠른 스텝으로 집으로 간다.
식으면 안된다.
한번은 발레 선생님께 식사는 어떻게 하는 지 여쭤본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놀라웠다.
하루에 한 끼.
나는 되 물었다.
간식은요?
그냥... 한 끼만 먹어요.
그렇다. 서예 붓으로 압을 조절해 그린 것처럼 선이 유려한 저 몸은 강박에 가까운(내 기준) 식이 조절에 있었다.
그녀는 정말 지독한 유지어터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려놓았다.
저렇게 되지 못할 바에 그냥 마음 편하게 먹고 살자고.
그녀의 대답은 내게 비뚤어진 자유를 안겼다.
그렇게 나는 발레 후 떡볶이라는 괴상한 루틴을 식후엔 스크류바와 같은 리듬으로 착실하게 수행 중이다.
힘든 운동을 했으니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라야 하는 법.
이건 마치 내 몸을 걸고 제로섬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오늘도 발레 + 떡볶이는 결국
영으로 수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