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둘이 떠난 비밀 여행

엄마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 여행 가면 나아질까?

by 다움코치

나는 남편한테 말하지 못한 비밀여행이 있다.

언젠가는 말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여행. 바로 2018년 1월 설날(구정) 일주일 전, 엄마와 단둘이 떠난 여행이다. 남편한테는 출장이라 말하고 아이들을 남편한테 맡기고 친정 엄마와 단둘이 2박 3일 제주여행을 다녀왔다.

#1. 엄마의 무표정

친정엄마는 엄살이 없는 분이다. 2살 터울 있는 형제를 9년째 독박 육아해 주고 계신다. 첫째 둘째가 각각 5살, 3살 때 아이 둘을 태우면 40kg가 넘는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매일 어린이집 등하원을 시키고 문화센터에 데리고 다니셨다. 하지만 힘든 내색을 단 한 번도 안 하셨다.

엄마는 육아를 하시는 9년 동안 여러 번 다치셨다. 우는 첫째 아이 달래주려고 급한 맘으로 뛰어가다가 문턱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져서 손목, 발목을 다치셨다. 가장 크게 다치신 건 2살 배기 둘째를 데리고 병원 계단을 내려오다 중심을 잃었을 때 아기를 보호하려고 뒤로 넘어져서 엉덩뼈를 다치신 것이다. 그때조차도 엄마는 아프다는 말씀을 안 하셨다. 그리고 엄마 좀 쉬자면서 나더러 조기 퇴근하거나 휴가를 내라는 말씀을 하신 적도 없다. 아파도 참고 힘들어도 참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엄마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었음을 엄마 얼굴을 보고 알아차렸다.

늘 밝은 얼굴로 소위 웃상인 엄마였는데... 2018년 어느 겨울날, 퇴근하고 현관을 들어서면서 본 엄마 얼굴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이러다간 엄마가 우울증으로 큰일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결심했다. 엄마께 휴식시간을 드리기로 말이다. 눈치가 보였지만 미룰 수가 없었다.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1월 한 달간 휴가를 냈다.

"엄마, 1월 한 달 동안 좀 쉬세요."


쉬라고 말씀드렸지만 쉼 없이 달려온 엄마는 쉬는 법도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들을 챙기고 휴가를 낸 나도 챙기고 집안일도 챙기고...


#2. 엄마, 우리 둘이 여행 떠나요!

집에서는 도저히 못 쉬는 엄마!

"엄마, 우리 여행 가요. 엄마랑 저 둘이서요"


우리는 제주도로 떠났다.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준비해서 떠난 제주도. 장롱 속에서 썩고 있던 내 운전면허증이 제주에서 빛을 발했다. 렌터카를 빌려서 엄마를 모시고 하루에 2코스 정도 관광했다. 밤에는 호텔에서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갈치조림, 전복 미역국, 흑돼지 삼겹살 등 제주 맛집을 찾아다녔다. 엄마는 제주도 시장 구경과 천지연 폭포가 좋았다고 하셨다. 제주 시장에서는 친한 분들 드릴 기념품을 사는 여유도 생기셨다. 시원한 폭포 물줄기를 보면서 엄마와 나는 누구 다리가 더 긴가 재보면서 깔깔 웃었다.

천지연 폭포 앞에 쭉 뻗은 내 발, 엄마 발

오설록에서 상큼한 한라봉 주스를 마시며 제주 공기를 충분히 만끽했다. 제주의 하늘, 산, 바다 모든 게 다 반짝반짝 예뻤다. 엄마가 활짝 웃는 모습을 너무나 오랜만에 보았다. 여행에 있어서 어찌 편안하고 좋은 일만 있으랴! 마지막 날 제주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갑작스럽게 폭설이 내렸다. 도로 위를 쌩쌩 달리던 차들이 모두 거북이걸음으로 엉금엉금 갈 수밖에 없었다. 눈이 많이 쌓인 미끄러운 도로 운전만 해도 긴장되는데 서울 가는 비행기를 놓칠까 봐 엄마와 나는 비행기 타는 순간까지 심장이 쪼그라드는 아슬아슬한 경험을 했다.


엄마와 간 제주여행은 애들 키우고 난 이후 처음으로 ‘엄마와 나’만 생각하면 되는 귀한 시간이었다. 아이들한테 뭐를 먹일지, 일찍 재워야 할 텐데 라던지? 그런 고민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오롯이 엄마와 나만 생각하면 되는 그런 여행. 엄마를 위해 떠난 여행이었는데 나 역시 힐링이 되었다. 특히 푹신하고 새하얀 호텔 침대에서의 꿀잠은 3년이나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만나는 교회 권사님들한테 기념품을 나눠주면서 딸이랑 제주도 꼭 같이 가보라는 말을 덧붙이는 엄마의 볼은 새색시처럼 살짝 발그레해졌다.

엄마와 떠나는 두 번째 여행이 기다려진다.

우리, 언제 또 떠날 수 있을까?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없다’ '사실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이런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
장거리를 걸을 때는 지치기 쉽다. 판단력도 흐려진다.
그러므로 걷는 시간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쉬는 시간'이다.

- 걷는 사람, 하정우(하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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