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지금 화나신 거죠?
"아니, 화 안 났어. 원래 내 말투인데 너는 사람 기분 나쁘게 그러더라"
엄마는 부산 사람이다. 42년 동안 들었으면 엄마의 경상도 말투에 적응되었을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평소보다 조금 거세진 엄마 말투를 들으면 '욱'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그 순간만 지나면 될 텐데 그걸 못 지나치고 콕 집어 여쭤본다.
"화나셨어요?"라고 말이다.
엄마는 20대 초반 가장 예쁠 때 아빠랑 결혼하셨다.
169cm의 훤칠한 키, 쌍꺼풀 짙은 커다란 눈, 오뚝한 코, 적당히 도톰한 입술을 가진 엄마는 젊었을 때 '미스코리아에 나가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하셨다. 6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미인이다.
며칠 전에도 엄마랑 대화하는데 '우리 엄마 진짜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화에 잠깐 집중을 못했을 정도니... 젊었을 땐 두말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예쁜 엄마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쉽다고 생각한 건 '애교 없는 경상도 말투'였다.
#2. 부부싸움,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심해진 게 아닐까?
어릴 때 엄마와 아빠(역시 부산 사람)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신기했다.
'내용을 들어 보면 싸울 거리도 아닌데 왜 싸우시는 거지?'
사소한 문제로 시작했는데 점점 감정이 고조되어 싸움이 극에 달했다. 부산 사투리를 쓰는 두 부부가 강한 억양으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나면 우리 집 분위기는 너무 험악해져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싸움이 커진 게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랑 육아를 함께 하면서 '내용'과 상관없이 '엄마의 말투'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이 많았다. '엄마가 말투와 억양을 바꿔주시면 좋겠다'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어느 날 엄마랑 다투던 중,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엄마, 딸이 싫어하는 말투인데 바꿀 수 없으세요?"
엄마도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 이 말을 한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엄마는 서운함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 그리고 난 그냥 말하는 건데... 내가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겠네"
"엄마는 또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
집안 분위기는 냉동고보다도 더 차가운 기운이 돌면서 냉랭해졌다.
#3. 바꿔야 하는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어느 날 엄마가 S언니 이야기를 해주신다.
"S 알지?"
"네"
엄마와 내가 함께 다녔던 운동센터에서 알게 되었고 엄마가 친하게 지내시는 50대 초반의 언니다.
"오늘 S한테 전화 왔거든. 고향에서 굴을 보내왔는데 주고 싶으니 만나자고 전화했더라고. 그런데 S랑 전화를 끊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S는 말을 너무 예쁘게 하는 거라"
잠시 그 언니를 떠올렸다. '그 언니? 선한 얼굴이라 좋은 이미지였지'
"S가 '언니'라고 부드럽게 날 부르니까 나도 '그래, 예쁜 S야'라고 말하게 되더라. 통화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
"그러셨어요?"
"상대방이 나한테 온화하게 하면 나도 온화한 말투로 대답하고 상대방이 퉁명스러우면 나는 더 퉁명스럽게 돼.
'경상도 사람도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고운 거구나'
S 언니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엄마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내가 먼저 부드러운 말투로 대화를 시작했다면?'
'따뜻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봤다면?'
그랬다면 경상도 엄마와 딸의 대화는 어땠을까? 한결 훈훈했을까?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평화를 위한 기도문 중에서(성 프란체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