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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 시간부자 Nov 13. 2020

엄마, 택배 좀 그만 시키세요

택배 스트레스를 아시나요?

#1. 택배는 이제 그만(오늘도 택배 상자가 3개씩이나...)

“띵~동”

“택배요”

“네. 두고 가세요”

현관문을 여니 택배 상자 3개가 쌓여있다. 모두 친정엄마가 시키신 것이다. 보자마자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냉장고에 들어갈 자리도 없는데, 택배를 또 시키셨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새어 나온다.


요즘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물건을 주문하신다.

내가 회사 다닐 때 엄마는 아이들 케어에 정신없이 바쁘셔서 TV와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으셨다. 그런데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엄마는 시간적 여유가 많 생기셨다. 그래서인지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날락하시면서 마음에 들면 고민 없이 <주문하기>를 누르신다. 김치, 단호박, 옥수수 등등등.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 엄마를 위한 것도 별로 없다. 기껏해야 아이들과 아빠 반찬이나 간식거리다.



#2. 장어 15마리는 심하잖아요? 1년 넘은 떡도 심해요. 심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더 이상 냉장고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손이 큰 엄마는 음식을 대량으로 주문하신다. 요즘 기력이 없으신 아빠를 위해 장어를 사셨다고 하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장어는 한두 번 먹는 특별식 아닌가? 장어를 15마리까지 살 필요는 없지 않나?

“엄마, 장어 3~4마리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이렇게 많으면 질리고 잘 안 드실 거 같은데요?”

“아빠는 반찬 많이 드셔. 내가 아빠 다 해 드릴 거야”

하지만 장어들은 기다란 몸을 둘둘 말은 채 2달째 꽁꽁 얼어있다.


 냉동실 저 깊숙이에는 1년 넘은 떡도 있다.

“엄마, 이 떡은 너무 오래돼서 못 먹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떡은 원래 냉동실에 얼려놓고 먹는 거야”

엄마의 냉동실에 대한 신뢰감무한대다.

‘내가 얘기하기 전에는 저 떡의 존재도 모르셨을 거 같은데...’ 냉동실을 뒤적거리다가 뭐 하나라도 버릴라 치면 어느새 엄마가 내 옆에 와한마디 하신다.

“안 그래도 그거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요?'  내가 꺼내는 음식이 갑자기 드시 싶어 지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냉동실 문을 열면 어김없이 음식 한두 개가 발 앞에 '툭'하고 떨어진다.  나는 이제 떨어지는 물건에 안 맞으려고 발을 잽싸게 피하는 '재주'까지 생겼다.

냉동실에서 음식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내가 뭐하나라도 버릴까 봐(?) 엄마는 내 옆에 쏜살같이 오셔서 말씀하신다. 

“놔둬. 내가 치울게”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음식 떨어진 거 보셨죠? 엄마, 좀 느끼시나요? 이제 물건 그만 사셔야겠죠?’

 

그러든지 말든지 다음날 택배는 또 온다.


문을 열면 물건이 '툭' 떨어지는 우리 집 냉동실

#3. 냉장고를 부탁해요! 

엄마의 주문병(?)은 포기했다. 

대신 <냉장고 정리 컨설턴트>에게 냉장고 정리를 요청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생각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한 날짜를 기다렸다. 그런데 중요한 점을 간과했다. 냉장고를 정리하러 온 시간이 하필 내 운동시간이랑 겹친 것이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해야 하는데 컨설턴트와 엄마만 집에 두고 가려니 왠지 찜찜했다. 그래도 엄마를 믿었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깨끗해진 냉장고를 상상하면서 기분 좋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랏? 이게 아닌데?’ 냉장고는 여전히 꽉 차 있었다.

“이상하다. 버릴 게 없었나요?”라는 내 물음에 "네”라고 하는 컨설턴트의 답변이 미적지근하다.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신 틈을 타 한분이 슬쩍 다가와 말씀하신다.

“어머님께서 냉동실 물건은 대부분 아이들 간식이래요. 다 먹을 거라서 버릴 게 없다고 하셔서 못 버렸어요. 원래 저희를 부르실 때는 물건을 버리려고 부르시거든요? 그런데, 이 집은 거의 안 버리고 냉장고에서 나온 그대로 다시 들어갔어요”

‘맙소사’


  (정리 전) 공간 없음 ☞ (정리후)보기 좋게 정리됐다는 게 차이점?


#4. 엄마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말 것!

결론적으로, 우리 집 냉장고는 여전히 가~~ 득 차있다.

대신 정리는 잘돼 있어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알게 되었다. 엄마도 깔끔하게 정리된 냉장고를 보고는 기분이 좋아지신 듯하다. 엄마께서 이모 세분과 번갈아(엄마는 네 자매다) 전화 통화를 하시면서 '냉장고가 깨끗해졌다'라고 자랑하시는 걸 들었다.

“이쩡아, 냉장고 정리 전이랑 정리 후에 사진 찍어둔 거 있으면 이모들 있는 단체 카카오톡 방에 사진 올려”


머릿 속으로 '비포 앤 애프터가 다르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며 카카오톡 방에 사진을 올린다.

그리고 결심한다.

'앞으로는 엄마 안 계실 때 내가 틈틈이 냉장고를 비워야겠다’


우리 모두는
완성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우리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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