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독백, 60대 중년 여성의 신기한 대화법

-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한다. 동시에 남의 이야기도 듣는다.

by 다움코치
우리 집 애완식물 마리모예요


#1. 엄마, 너무 뜬금없는걸요?

“이게 뭐야?”

“마리모요”

친정아빠의 질문에 귀요미가 대답한다. 오랜만에 친정 부모님과 우리 집에 모여 식사하는 자리. 아빠, 엄마, 남편, 아이들과 식탁에 빙 둘러앉았다. 아빠께서 식탁 위에 마리모가 담긴 투명한 병을 보시면서 물어보신 것이다. 나는 물속에 동동 떠 있는 초록 식물을 가리키며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린다.

여기 초록색 동그랗게 생긴 식물 보이시죠? 그 아이 이름이 마리모예요.”

아빠는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신다.


“아빠, 마리모가 말라죽으려고 해요. 물 갈아줬어요?”

귀요미가 남편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나는 마리모 화분 아래 둔 종이 <마리모 관리법>을 큰소리로 읽는다.

“1주일에 한 번 물을 갈아주세요. 밝은 그늘에서 키우세요”

그때 갑자기 엄마께서 대화에 쑥 들어오신다.

“그래서 내가 파리지옥 화분도 주방 창가에 놔뒀잖아.”

‘오잉?'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파리지옥(식물) 이야기는 왜 하시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엄마도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서 그러시나? 파리지옥을 잘 돌보고 있다는 걸 인정받고 싶어서 그러시는 걸까?’



#2. 엄마가 이상하다

그날 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운 남편한테 물었다.

“자기가 볼 때 엄마 어때? 최근에 뭔가 좀 이상해 지신 것 같지 않아?”

“왜? 뭐가 이상하신데?”

“자기가 볼 때는 괜찮아?”

‘내가 요즘 엄마가 변했다는 생각에 너무 매몰되어 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싶어서 남편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늘 그렇듯 남편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반문한다.

“두리뭉실하게 묻지 말고 자기가 느끼는 걸 이야기해봐”

“음, 아니야”

“지난번 장모님 검사 결과 어떠신데? 뇌 MRI 찍으신 거 말이야”

“괜찮으시데. 지켜보기만 하면 된대”

나는 엄마에 대한 내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주 막내 이모와의 통화가 생각났다.

“이쩡, 너네 엄마가 예전보다 말이 많아지긴 했어. 그리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다른 사람 이야기가 다 안 끝났는데도 중간에 껴들어서 엄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그러네”

“그래요?”

“어. 근데 이모가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그 순간에 이야기를 안 하면 잊어버려서 그렇다더라. 생각날 때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래”

뭐, 이런 식의 대화법은 엄마한테서만 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젊은 사람 중에도 많다. 남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

그래도 예전에는 안 그러셨던 엄마가 저러시니 신경이 쓰인다.


집단 독백에 대하여 (자료:나무위키)


#3. 집단 독백, 60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대화 모습?

60대 중년 여성들 틈 속에서 1시간 넘게 앉아있었던 적이 있다.

올해 여름에 돌아가신 큰아버지 장례식장에서의 일이다. 엄마,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두 분, 고모 이렇게 60대 중년 여성 다섯 분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대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다섯 분이, 대화를 하는 건지 집단 독백을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희한한 건 한꺼번에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갑자기 왜 그 이야기를 하냐”며 면박을 주는 사람도 없다. 대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연관된 주제인가 싶어 귀 기울여 들어 보면 전혀 생뚱맞은 자기 경험 이야기다. 그렇게 ‘동일한 주제로 돌아왔다가 또다시 딴 이야기를 하다가’를 반복하면서 1시간 동안 이야기하시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지인분이 대학 때 들었던 상담 과목 강의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

빨래터에서 '중년 이상의 여인들의 대화법'에 대한 내용인데, 각자 자기 할 말만 하면서 타인의 얘기도 듣는다는 것이었다. 토해내는 독백을 통해 후련함을 찾고, 타인의 토하는 말을 통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안을 삼고. 때로는 자랑도 한다는.. 그런 것도 의사소통 방법이라고 배웠다고 하셨다.

60대 중년 여성의 신기한 대화법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 엄마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파리지옥’ 이야기가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김홍도의 <빨래터> (자료:네이버지식백과)


엄마를 연구하는 일은 자신에 대한 연구로도 이어집니다.
글로 표현하다 보면
자신이 엄마에게 어떻게 다뤄졌는지도 분명해집니다.
상세하게 알게 된다면 앞으로 자신의 자녀에게만큼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책도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엄마는 자기 스스로를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연구는 딸밖에 할 수 없는 일이고 한편으로는
엄마를 위한 더 없이 좋은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즐기면서 엄마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길 바랍니다.

-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아사쿠라 마유미,노부타 사요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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