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Jul 21. 2024

1948 런던올림픽

20박 21일의 긴 여정

이제 곧 파리올림픽이 열린다. 대한민국도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어떤 성적을 거두고 돌아올지 자못 기대가 된다. 문득 우리나라가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했을 때가 궁금해졌다. 과거를 추적해 보았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실로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1948년 7월 29일부터 8월 14일까지 런던에서 제14회 하계올림픽이 열렸다. 이 대회에 한국은 최초로 참가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땄지만 그땐 나라를 잃었을 때가 아닌가. 가슴에 단 일장기를 손 선수는 고개 숙인 채 애써 감추었다. 동아일보는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하는 바람에 일제 당국으로부터 정간까지 당했다. 그러나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당당하게 독립국가로 참가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전이었다. 정부 수립은 그해 8월 15일 이루어졌으니까 런던올림픽은 정부 수립 직전이었다. 그래서 그때 조선(朝鮮) 선수단이었다. 선수 50명, 임원 17명 총 67명의 선수단은 6월 18일 동대문 서울운동장에서 결단식을 가졌다. 그리고 6월 21일 아침 기차(해방자호)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한다.


해방자호는 10시간이 걸려 부산에 도착했다. 6월 21일 저녁이었다. 동래에 있는 호텔에서 일박하고 이튿날인 6월 22일 밤 9시 반에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밤새 배는 달려 이튿날인 6월 23일 오전 후쿠오카(하카타)에 닿았다. 거기서부터는 기차를 탔다. 특별열차는 후쿠오카를 출발해 요코하마로 향했다. 이틀이 걸렸고 6월 25일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이제는 홍콩으로 가야 했다. 홍콩으로는 배를 타고 갔다. 미군 수송선을 개조한 여객선인 제너럴 멕스(General Meigs)호를 타고 6월 26일 밤 늦게 요코하마항을 떠났다.


이 배는 중국 상해를 거쳐 홍콩에 7월 2일에 도착했다. 일주일을 항해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때부터는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그러나 1948년 당시의 항공기 사정은 지금과 사뭇 판이했다. 제트여객기가 아니었고 프로펠러기는 운항 거리가 짧았다. 게다가 탑승 인원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선수단 67명이 한꺼번에 탈 수 없었다. 1진, 2진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1진은 7월 4일에 홍콩을 출발했고 2진은 7월 8일에 출발했다.


홍콩에서 런던까지의 여정이 장난 아니었다. 무려 일곱 번을 갈아탔으니 말이다. 7전 8기가 아니라 '7갈 8승'이라야 해야 하나. 홍콩에서 태국 방콕, 방콕에서 안도 콜카타, 콜카타에서 인도 뭄바이, 뭄바이에서 이라크 바그다드(아랍에미리트의 샤르자라는 설도 있다), 바그다드에서 이집트 카이로, 카이로에서 이탈리아 로마, 로마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야 했다. 일곱 번 갈아타고 홍콩에서 런던까지 가는 데 나흘 걸렸다. 눈물겨운 여정 아니었나.


7개 종목 50명의 선수가 출전해서 동메달을 두 개 땄다. 역도와 복싱에서 각 하나씩 땄다. 메달을 못 따긴 했지만 마라톤의 최윤칠 선수는 놀라운 투혼을 보여줬다. 38km까지는 압도적 선두를 달렸단다. 38km에서 근육 경련이 일어나며 걷게 되었는데 걸으면서도 40km까지는 선두였다니 어찌 놀랍지 않나. 어떻든 조선선수단은 20일에 걸쳐 배, 기차, 비행기를 수 없이 갈아타고 런던에 도착해 올림픽에서 분투했다.


어언 76년이 흘렀다. 당시 선수단 중에서 그때를 증언해줄 이는 아마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유일한 여성 참가자였던 원반던지기의 박봉식 선수는 1930년생이라는데 런던 올림픽에서 22명 중에서 18위를 차지했단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스물한 살인 1951년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는데 살아 있었다면 94세니 아직 그런 연배는 꽤 살아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언급해 둘 것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일본은 참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첫 참가를 했는데 일본은 왜 못했나.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제2차세계대전 전범 국가 독일과 일본은 초청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때부턴 참가할 수 있었다.


파란만장한 런던까지의 여정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답습만 해서는 안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