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음법칙을 무시하나?
우리나라에 법이 참 많다. 1,700개가 넘는다. 이들 법 중에는 1940~196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법이 있는가 하면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비교적 새 법도 많다. 국가의 기본이 되는 법일수록 일찍 만들어졌다. 형법이 1953년, 민법이 1958년, 상법이 1962년에 제정되었다. 이런 기본법은 제정 당시에 온통 한자로 적혔다. 한자로 적을 수 없는 순우리말만 한글로 적었다. 한자 혼용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이들 법에 있는 한자는 여전히 그대로다. 오늘날 웬만한 법전에 이들 법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독자 편의를 위해 한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 법적으로는 엄연히 한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법전 원문의 한자를 편의상 한글로 옮겨 적으면서 한글 맞춤법을 어긴 예가 적지 않다. 특히 상법에 그런 사례가 많다. 예컨대 상법 제96조와 제126조를 보자.
'계약년월일', '작성년월일'이라 했다. 법전 원문에는 한자로 '契約年月日', '作成年月日'라 되어 있는데 이를 한글로 보여주면서 맞춤법을 지키지 않았다. '계약연월일', '작성연월일'이라야 한다. 왜 이런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있을까.
요즘 법률은 제정할 때 한글로 작성하기 때문에 원문이 한글인 게 보통이다. 그리고 한글 맞춤법도 잘 지키고 있다. 수많은 법률에서 '년월일'이 아니라 '연월일'이라 바르게 쓰고 있다. 한 예를 들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는 다음과 같이 '연월일'이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상법에서는 '년월일'이라 하고 있는가. 더구나 '년월일'은 법적인 근거도 없다. 법에는 한자 '年月日'로 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편의상 한글로 적으면서 실수를 했다. 그러니 법 개정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년월일'을 '연월일'로 바꾸어 주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그냥 두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이렇게 제공하고 있다. 여간 부주의하고 태만하지 않다.
더욱 황당한 예가 있다. 상법 제462조의3은 1998년 12월에 신설된 조이다. 당시에 제462조의3 제1항은 다음과 같았다.
1998년 당시에도 상법 조문을 한자로 적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지금도 여전한데 다만 편의상 한글로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표기하고 있다.
'年'을 '년'이라 한 것이다. 당연히 틀렸다. '연'이라야 한다. 그래야 두음법칙에 맞다. 맞춤법도 사회적 약속인데 왜 이를 무시하나. 법조문이 맞춤법을 어기다니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