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한국과 미국의 법은 여러모로 다르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서 50개 주가 연방을 이룬다. 이 50개 주는 각자 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마다 법이 조금씩 다르다. 한 예로 결혼할 수 있는 연령만 보자. 많은 주에서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을 18세로 하고 있지만 미시시피주에서는 21세로 하고 있단다. 미시시피주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시시피주에서도 부모 동의만 있으면 남자는 17세, 여자는 15세에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캘리포니아주와 뉴멕시코주에는 부모 동의만 있으면 14세에도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은 18세부터 결혼할 수 있다. 물론 19세부터는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다.
각 주마다 법률이 따로 있으니 연방 차원의 법은 그리 많지 않은 게 미국이다. 연방헌법은 당연히 있지만 그밖의 연방 법률은 몇 개에 그친다. 각 주마다 법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각 주는 자체 헌법을 가지고 있단다. 아마 필요할 것이다. 미국의 법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이트로 findlaw와 justia가 있다. 이곳에서 법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필자는 한국의 법조문에 많은 비문이 있고 심지어 오자까지 있지만 방치되고 있음을 책으로 써낸 바 있다. 요즘 만들어지는 법률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기본이 되는 법인 6법의 언어는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 법률은 1950년대 내지는 1960년대초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서둘러 법률을 제정하다 보니 언어적 오류가 숱하게 들어갔다. 그런데 왜 6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있나. 그래서 법을 공부하는 신진 학도들이 법조문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힘들어하게 만드나? 좀체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답답해하지만 가만 미국 사정을 들여다보니 미국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게 됐다. 프레드 로델(1907~1980)은 20대에 예일대 로스쿨 교수가 돼 40년가량 예일대 로스쿨에서 가르친 법학자다. 그는 1939년에 출판된 Woe Unto You, Lawyers라는 책에서 법률가들을 강력히 비판했다. Woe Unto You, Lawyers가 무슨 뜻인가. "법률가들이여 화를 입으라" 정도 되는 뜻이다. 혹은 "저주받으라, 법률가여"로 번역한 것도 보았다. 오죽하면 그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썼겠나. 그 책에서 로델은 법률가들이 자기들만 아는 어려운 말로 글을 쓰고 있음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Woe Unto You, Lawyers가 성경에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1장 52절에 그 말이 나온다. 예수님은 벌써 당시의 법률가들의 행태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한 것인데 로델이 이를 인용해 책의 제목으로 삼았단다. 이미 2000년 전에도 법률가들은 그들만 아는 지식으로 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는데 로델은 20세기에도 여전함을 상기시켰다. 로델의 책이 나온 지도 85년이 지났다. 그리고 미국에는 로델의 외침을 이어받는 법학자들이 계속 나온다.
텍사스주 서던메서디스트대 로스쿨 교수인 브라이언 가너(1958~)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2020년 방한한 적도 있다는데 그의 방한시 인터뷰 기사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서 옮겨본다.
가너 교수는 “미국 법정은 여전히 ‘격식 언어’가 난무한다. 법조인들이 자신들만의 성을 쌓기 위해 특정 은어를 쓴다는 해석도 있지만 실은 법조인들이 게을러서 관행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가너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 법조인들은 관행을 중시한다. 법조문이 난해하고 비문법적이어도 관행이 자기들에게는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불편할 줄 모른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게으른 것이다. 피해는 일반 국민과 처음 법을 배우는 신진 학도들이 입는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 차이가 없다. 법이 만인{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말까지 나온 판이다. 이런 말이 사라져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