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가 아니라 '저지'다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라도 공무집행방해란 말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공무원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죄가 된다. 그리고 벌을 받는다. 이 죄는 형법에 규정되어 있다. 형법 제136조가 공무집행방해에 관한 규정이다. 공무원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음과 같다.
그런데 제136조는 제1항과 제2항으로 돼 있다. 제1항은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을 폭행 또는 협박한 범죄에 대한 규정이다. 예를 들어 경찰관이 음주 단속을 하고 있는데 이 경찰관을 폭행하면 제1항에 해당한다. 그럼 제2항은 어떤 경우인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강요다. 구청 인허가 담당 공무원에게 인허가를 해달라며 폭행 또는 협박하면 제2항에 해당한다. 둘째, 공무원의 직무상 행위를 못하게 막는 거다. 검사가 자기를 기소하려는 것을 못하게 할 요량으로 폭행 또는 협박하면 제2항에 해당한다. 셋째, 사퇴 요구다. 공무원을 직에서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경우다.
여기서 두번째 경우에 주목한다. 공무원에게 직무상 행위를 못하게 하기 위해 폭행 또는 협박한 경우다. 검사는 기소권을 갖고 있다. 검사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기소하려고 하는데 이를 막고자 폭행 또는 협박하면 제2항에 해당하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 법조문이 어떻게 되어 있나?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이다.
'직무상의 행위를 조지하거나'가 무슨 말인가? '직무상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라는 뜻이다. 즉 '하지 못하게 하다', '막다'의 뜻으로 '조지하다'를 썼다. 그런데 '조지하다'라는 말이 있기는 있나? 없다. 국어에 '조지하다'라는 말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서 '조지하거나'가 우리나라 형법 조문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사정은 이렇다.
1953년 9월 18일에 형법이 제정되었고 보름 뒤인 10월 3일에 시행되었다. 그때 조문은 이랬다.
'阻止하거나'였다. 그런데 阻는 음이 조다. 험할 조 또는 막을 조다. 그러니 '조지하거나'일 수밖에 없다. 왜 국어에는 '조지하다'라는 말이 없는데 형법에는 '阻止하거나'가 들어오게 되었을까. '막는다'는 뜻의 일본어가 '阻止する'였고 우리말보다는 일본어에 익숙한 당시 법률가들이 阻止를 썼던 것이다. '막는다'는 뜻의 우리말은 저지(沮止)다. 따라서 沮止(저지)를 써야 마땅한데 그만 阻止(조지)를 썼다.
우리말에는 阻止라는 말이 애초에 없었다. 얫날부터 沮止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막는다'는 뜻으로 沮止는 선조실록에도 나오고 인조실록에도 나온다. 그러나 阻止는 조선왕조실록에 없다. 저지(沮止)의 뿌리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막는다'의 뜻으로 沮止를 써왔는데 일본의 영향을 집중적으로 받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대한제국 시기의 문헌에 阻止가 등장한다. 일본어 阻止가 우리말에 침투한 것이다.
그리고 이 阻止가 1953년의 형법 조문에까지 들어갔고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조지'라는 말을 요즘 한국사람 중에서 아는 사람이 없다. 쓰는 사람이 없다.
阻止는 사실 일본이 만든 말은 아니다. 중국에서도 阻止라는 말이 있다. 일본어 阻止는 일본사람들이 중국어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송대에 阻止가 쓰였다 한다. 어쨌거나 우리 조상들은 阻止(조지)를 쓰지 않았다. 沮止(저지)를 썼다. 그런데 1953년에 만든 형법에 들어간 阻止가 아직도 그대로다. 지금은 물론 한글로 바뀌어 조지다. 그러나 조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
중년 이상 법조인들은 한자로 된 형법 조문을 봐왔고 阻止를 보면서 그 음이 조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阻止를 저지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법조인들이나 로스쿨생들은 한자로 된 법전을 보지 않는다. 한글로만 적힌 법조문을 대한다. 조지를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George를 떠올릴까. 아니면 입에 담기 뭣한 속어 '조지다'를 떠올릴까.
필자는 작년 봄 검사 출신의 한 60대 법조인을 만난 적이 있다. 형법 제136조에 '조지하거나'가 있다고 하니 그럴 리가 없다며 법전을 찾아보았다. 법전을 확인하고서야 필자의 말이 맞음을 인정했다. 요컨대 기성 법조인들은 형법 제136조 제2항을 덩어리째 이해하지 단어 하나하나를 새기지 않는 듯하다. 통째로 공무원에게 직무상 행위를 강요하거나 막거나 직을 사퇴하게 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阻止하거나'는 '저지하거나'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편의상 법전을 한글로 제공할 뿐이지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한자인데 이는 국어기본법 위반이다. 형법을 개정해서 모든 조문의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차제에 '조지하거나'가 아닌 '저지하거나'로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