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_ep 02. just some thoughts.
분명 피곤이 쌓일 틈이 없었는데도 어느 날은 잠을 12시간 넘게 자기도 했다.
뜨거운 샤워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물 부자가 된 것 마냥 하염없이 쏟아지는 샤워헤드 아래 내 정신을 맡기기도 했다. 이제는 가을 동안 못 입었던 옷들을 마음껏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대도 불구하고 매일 똑같은 재킷, 한 두 개의 바지 그리고 후드가 내 옷장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내일도 글피도 비슷한 옷들만 입을 거 대충 의자 뒤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는 먹구름과 같은 우울로 흐릿해진 후였다.
그 사람의 말이 옳았다. 배가 고픈 때를 놓쳐 결국 배가 고파도 음식을 향해 돌진하지 않았다.
그저 배고픔을 잊은 채 굳이 빠진 끼니를 애써 챙기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그 날 이후로 규칙적인 식사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고, 그 생각은 곧 습관이 되었다.
떠나간 것에 미련을 두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나는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미 지나간 것에 눈을 못 떼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마치 거른 끼니처럼
애써 잠을 청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밤은 너무나 길고도 깊다는 것을 막상 어두워지니 알게 되었다.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고요한 밤.
다시 일어나서 부엌 불을 켜기엔 너무나도 늦은 밤.
지금 내가 가야 하는 길이 그렇듯,
뒤 돌아보는 것이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하는 시기라고 속을 단단히 하고 잠을 청했다.
내일 어김없이 듣게 될 뻐꾸기 소리처럼.
나에게는 또다시 끼니를 거를 기회도 챙길 기회도 어김없이 올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