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_ 원동력, 때론 책임감.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결국엔 없었음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사랑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최근 가족 가운데 약간의 불화가 있었다. 그 불화는 9,946km 나 떨어진 뉴질랜드 땅까지 불똥이 튀었고 물론 가족의 일원으로써 이번 사건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기보다 오히려 나 자신이 낯설 정도로 차분함을 느꼈다.
그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사랑의 대해.
언젠가는 들어야 하는. 대화에도 성장통이 있다면- 사람대 사람의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써의 대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결국 부모의 사랑에도 한계가 있더라.
본인은 모성애의 대해 누구보다 자신 있게 역할과 책임을 다 했노라고 고백했다.
나는 유학생활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대한 사랑을 항상 확신하며 살았다.
매사에 헌신적인, 인간의 따뜻함의 원천인듯한, 나를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도 이젠 누려야 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언제까지 자식만 보며 살 수 있냐며 말이다.
가족이란 공동체는 사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이 아닌 가족이란 두꺼운 울타리 안에 무조건 적인 사랑이 여태껏 요구되어 왔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너무 섭섭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엄마와 오히려 자유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마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평행선에 서 있는 듯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독립이라는 걸 하는구나. 더 이상 누구를 투영한 사랑이 아닌 독립된 사랑을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 되어가겠구나.
이 글을 쓰는 찰나의 순간에도 무조건 적인 사랑에 맹신한다기보다 일부의 아주 작은 부분의 사랑도 나의 무조건 적인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지만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행성 같은 것임을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