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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May 03. 2024

1킬로 찌는데 20년이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공유해 달라는 원장님의 요청대로 지낸 지 얼마 후 어느 날 원장님이 슬쩍 톡을 보냈다.


"근데 회원님, 애기 입맛인 건 알고 있죠?"


아니 이 무슨. 비건 아니냐는 오해도 가끔 받고 사는 나인데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어 "제가요?" 하고 반문했다. 그러고선 내가 일주일간 보낸 식단을 살펴봤다.

기본이 마른 체형이라 쌓이는 내장 지방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그때 그때 먹고 싶고 생각나는 것 위주로 먹어 밀가루가 덮인 튀긴 음식, 소스, 가공된 식품, 주 에너지원인 초콜릿바, 커피 등이 나의 주식이었다.

몰랐다. 이렇게 하나하나 적어서 기록하고 객관적으로 보기 전까진 그래도 몸에 안 좋은 건 나름 피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인정. 애기 입맛.


그리고 하루의 끝에 저녁과 곁들인 맥주 한 컵, 와인 한 잔에 대해서도 원장님이 입을 뗐다.

"회원님, 그 몸에 맥주 한 잔은 치사량이에요. 이렇게 와서 운동을 하는데 알코올은 근손실의 가장 큰 주범이라고요 일단 세 달만 참아 보세요."


그렇다. 나는 pt를 시작하면서 추가로 4월부터 6월까지 세 달간 '근육왕 챌린지' 에 도전했다. 총 상금 30만 원에 지원자 중 온리 원, 1등 만을 뽑는데 4월 첫 주에 인바디를 재고 6월 마지막 주에 인바디를 재서 근육이 가장 많이 늘은 사람이 우승을 차지한다. 원장님은 나를 강력 추천했는데 그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였기 때문에 나같이 근육이 0 인 사람 늘리기가 쉽지, 애매하게 근육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기서 더 많이 늘긴 훨씬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생전 처음 닭가슴살을 장바구니에 담아 봤고, 계란을 삶고, 단백질 가루, 단백질 음료, 견과류 100봉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내 식단의 첫 시작이었다.


내게 내려진 처방은 닭가슴살과 현미가 들어간 밥, 온갖 채소 등을 기본으로 균형 잡힌 삼시 세끼를 시간 맞춰 먹되 중간중간 산양유 단백질 스틱 5개, 삶은 계란 먹을 수 있는 만큼, 견과류 3봉을 챙겨 먹는 거였다.

커피도 하루 두 잔으로 제한하고 물도 신경 써서 마시기.


사실 출근하면 근처에 한 끼 제대로 먹을만한 식당이 적어 매번 대충 혹은 과하게 몰아서 끼니를 때웠었는데 아침에 닭가슴살 한 봉과 코스트코 모둠 냉동채소를 기름에 휘리릭 볶아서 도시락으로 싸 가니 더 이상 메뉴 고민도 하지 않아도 되고 돈도 절약되고 건강도 챙기니 일석삼조였다!


그리고 요즘 닭가슴살은 시키면 쿠팡보다도 빠른 총알배송으로 당일 저녁이면 도착하니 핑계로라도 거르고 싶어도 거를 수 없고, 수비드, 훈제, 시즈닝도 수 십 가지에 달해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떡볶이맛 닭가슴살을 시키면 될 정도로 진화해 있었다. 엄청난 시장이었고 그야말로 나만 몰랐던 세계였다.


평생 살면서 한 번도 다이어트를 해 본 적이 없고 아기 때부터 몸무게를 늘리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살찔 수 있는 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친구들이, 주변의 거의 모든 여자들이 입버릇처럼 '요즘 다이어트  해'라는 말을 하고 그에 따른 노력을 하는 걸 봐 오면서 한 번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던 내 고민.


어떻게 하면 살이 찔 수 있을까

 

여기 16살 때부터 몸무게가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몸무게가 평균에서 쪘다 빠졌다 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가 1킬로 찌우기가 힘들까, 후자가 1킬로 빼는 게 더 힘들까.

여자들 세계에선 아무도 감히 "자기 살쪘네"라고는 웬만큼 상대를 미워하지 않고서야 삼간다. 반면 나는 어느 자리에서든, 누구에게서든 내 외모에 대한 얘기들을 매우 쉽게 들어왔다.

듣고 나면 칭찬인지 비꼼인지 모를, 마음에 박히는 얘기들도 수없이 들어왔고 그때마다 "너는 날씬하니까" (그냥 듣고 있어)로 일관 됐고 나도 매번 그냥 넘어갔다.




정말 신기한 건 식단을 저렇게 바꾼 지 2-3주 만에 몸무게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거다. 주 3회 필라테스도 하고 있고, 이렇게 열심히 꾸준히 운동을 나간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몸무게는 계속 늘어 기존에 샀던 XS 운동복 중 몇 개는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래도 되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 싶어서 원장님께 살짝 걱정을 내비쳤다.


"회원님, 지금 너무 좋고요. 하루 5식은 해야 하는데 당장은 어려우니 1일 4식부터 해요. 드세요, 더 드세요."

  

사실 몸무게 200그램, 300그램을 늘리기 위해 삶은 달걀을 주머니에 사탕처럼 넣고 집을 나서고, 운전할 때 신호에 걸리면 새우깡에 손이 가듯 견과류 한 봉을 입에 털어 넣고, 숨 쉬듯 단백질포를 하루 5번 뜯기란 정말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다. 요즘의 나를 보면 끊임없이 뭔가를 입에 넣고 있다. 그래야 저걸 하루 안에 다 먹는 게 가능하다. 살찌려는 사람도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안 먹는 게 쉬울까, 많이 먹는 게 쉬울까. 둘 다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태생을 거스르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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