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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Apr 25. 2024

타인과 내 입을 공유한다는 것

2월 7일에 수술을 한 이후, 정확히 36일 만에 필라테스를 하러 갔다.




당일 퇴원이 가능한, 수면마취에서 깨어나는 시간까지 30분이 채 안 걸리는 간단한 수술, 이라고 의사에게 들었다.

성인의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발병, 전 세계 인구의 10%가 걸린다는 흔하다면 흔한 외과적 질병인 탈장을 서른 중반을 살아가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와 몇 달 차이로 태어난 사촌형제는 남자아이고 생식기와 관련된 부위여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수술을 시켰고 여자아이들은 굳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문의의 의견에 따라 나는 내 몸의 일부로 여기고 함께 해왔다. 통증이 있진 않았지만 일상에서 약간의 불편함은 늘 있었고, 부모에게 들은 내용이 저것인지라 살면서 탈장을 검색 한 번 하지 않고 지내 왔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래 서 있거나 무리를 하면 탈장이 튀어 나오는 정도가 잦고 심해졌고 아랫배에 묵직한 압박이 느껴지더니, 작년 추워질 무렵엔 조금이라도 딱 맞는 바지를 입고 나가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과 압박이 몸 전체를 지배해 결국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내 첫 번째 해석은 살이 쪄서였다.

평생 1킬로 내에서 쪘다 빠졌다를 유지하는 내 몸무게가 1킬로 더 찐 상태로 유지됐고 그 사실이 꽤나 신기했다. 나도 살이 찌는구나, 나잇살인가, 배도 좀 나왔네.

당장 문제는 1킬로 전의 허리 사이즈로 바지를 수선해서 입어 왔는데, 이젠 그 모든 바지의 허릿춤이 배를 압박해서 입을 옷이 없다는 거였다. 바지를 전부 다시 살 순 없었기에 항상 가던 수선집에 가서 사장님과 의논한 결과, 줄인 바지를 다시 늘리긴 쉽지 않고 몇 미리 정도만 늘리면 되니 물리적인 힘과 스팀다리미로 일단 해결했다.


결정적으로 수술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어느 일요일 한낮의 명동 거리에서였다.

애인의 옷을 사러 간 매장에서 나는 다시금 아랫배의 압박을 넘어선 온몸에 전해지는 찌릿찌릿함과 옥죄는 통증에 사로잡혀 급하게 허리가 고무줄로 된 츄리닝 바지를 샀고 계산하자마자 바로 갈아입었다. 그럼에도 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애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나를 보고 당장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나는 그때서야 탈장이 문제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차피 지금 당장 수술을 할 게 아니라면 그저 집에 가서 편한 옷을 입고 누워있고 싶었다. 그래서 급하게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서부터 탈장 수술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날 낮동안 일어난 급격한 몸의 변화,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 애인에게 부축받고 한 손은 난간을 잡고 겨우 걸음을 떼는 내 자신을 보며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한 발을 못 떼겠다고? 말도 안 돼. 내가 왜 이러지.


그 후 산부의과도 가봐서 다른 원인은 없는지도 살펴보고, 탈장수술로 유명한 외과병원도 갔는데 그 정도의 통증이 느껴진 거라면 실제 장이 빠져나왔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응급 수술을 해야 했을 텐데 다행이 초음파를 찍어보니 일반적인 서혜부 탈장이랐다. 그러니까 정확한 고통의 원인이 탈장이 아닐 수 있지만 전문의가 '언제부터 탈장이 생기셨어요?'라는 물음에 '태어날 때부터요' 라니 '왜 이제까지 수술을 안 하셨어요? (이 간단한 걸)'로 사회 분위기는 바뀌어 있었다.


검색해보니 탈장은 맹장이나 담낭 수술처럼 꼭 대학병원이 아닌 이것만 전문으로 하는 외과 병원을 가도 될 것 같아, 하루에도 탈장 수술만 여러 건을 하고 몇 안 되는 인공막을 넣지 않는 자연주의 수술 방식을 택하는 병원을 찾아 설 연휴 전 날로 수술 날짜를 잡았고 연휴 내내 쉬면 쉬면 금방 회복하겠거니 했다.


 



그렇게 그전 주에 다녀온 운동을 다시 갈 수 있게 결심하고 몸이 간단한 스트레칭 정도의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데 꼬박 36일이 걸렸다. 처음 수술 후 삼일은 침대에서 꼼짝 못 했다. 몸통과 다리를 잇는 사타구니 쪽을 절개한지라 하반신마비 환자 수준이었다. 밥상도 침대에서 비스듬히 누워 받았다. 이 삼일 동안 내가 다시금 거실 복도를 가로질러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4,5일 차에 가능해졌고 그 후로도 2주 가까이 십 분 이상 걷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갔다. 무서웠다. 다시 걷고 뛸 수 있을까. 살을 갈라 근막을 꿰매고 의료용 풀로 봉합해 놓고선 무통주사 하나 없이 작은 진통제 몇 알로 버티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킬러들의 쇼핑몰>에 나오는 칼 맞는 고통에 심하게 이입이 될 정도, 살면서 처음 겪어 본 날카로운 통증에, 첫 날 병원에서 수술 후 퇴원하려 처음 몸을 일으키다가 실신했었고, 집에 와서도 새벽에 화장실 가려 일어날 때 또 눈이 아득해지며 실신하려 하는 걸 엄마가 붙잡아줬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몸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정도의 고통을 느끼면 퓨즈를 끄듯이 그냥 실신하는구나. 극 중에서 민혜가 왜 칼 맞고 하루 넘게 기절해 있었는지, 너무 알 것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삼주차에는 앉아서 일도 하고 운전도 했는데 그런 동작들 사이사이엔 알싸하게 오는 통증을 가만히 누워서 참고 가라앉혀야 했다. 하루는 호기롭게 장을 보러 갔는데, 매번 가던 마트가 왜 이리 넓은건지.. 꼭 소고기를 먹고 힘을 내야겠어서 갔던 건데 십 분이면 볼 장을 앞서 가던 할머니보다도 걸음이 느리니 삼십 분 걸려서 봤었다.


이 맘 때 눈에 들어오던 풍경이, 신호가 바뀐 걸 보고 저 쪽에서부터 종종걸음으로 뛰어서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도, 어르신들도 곧잘 뛰었다. 나로선 아직 상상도 못 할 일이어서 새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었다.


한 달 째엔 수술 부위가 안팎으로 날카롭게 당겨 자연스레 몸이 접히고 걸음이 느려지는 그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환자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냥 앉아 있으라며 도움의 손길을 받아 감사한 동시에 아픈 사람 취급받는 게 싫고 내 몸의 한계밖에 느껴지지 않아 무력하고 혼란스러운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한달 일주일 째 드디어 강아지 산책도 가능해지고 대중교통도 탔다. 

몸이 아프고 불편해져 보니 대중교통을 타는데 이렇게 큰 용기가 필요한 줄 몰랐다. 너무 아파 누워야 하는 상황이 오면 붐비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이 기세를 몰아 필라테스 원장님이 새로 개설한 '저강도'반 수업에 들어갔는데 웬걸, 기본 동작 하면서도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고 머리가 핑 도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이번주 예약해 둔 일반그룹 수업을 전부 취소했다. 3년째 나를 봐 온 원장님이 나와, 나만큼 힘들어 한 옆의 회원님을 따로 불렀다.


'두 분, 이 몸이면 여름 나기 힘들어요' 하고 단톡방 개설해서 오늘부터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건 여기 적어주시고요, 언제 시간 돼요? 셋이서 시간 맞는 날마다 pt 해요, 수강료 나중에 줘도 되니 일단 살고 봅시다 랬다.

나는 반갑고 감사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년 전에 pt를 받으며 수영까지 병행해서 최고로 탄탄하고 건강한 몸이 됐었던지라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식단 관리는 처음해 봐서 단톡방 개설하고 처음 몇 끼니를 올렸을 땐 그저 재밌었다.


그런데 원장님과 다른 회원님의 건강하고 군더더기 없는 식단을 보고 나니 내가 그저 배를 채우려고 음식을 먹었구나 싶고 심지어 내 몸에 너무 성의가 없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길로 생전 처음 닭가슴살과 현미밥을 주문했다. 거기에 엄마가 사 온 대저토마토, 브로콜리, 고구마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니 다른 두 사람의 식단과 비슷해졌다. 추가로 물 많이 마시기와 건강한 지방과 단백질 섭취를 위해 계란과 견과류도 먹으라는 원장님의 요청이 있었다.


운동보다 더 중요한 게 식단이라며 우리 둘의 식단을 보면 이미 너무 심한 다이어트식이라고, 하루에 다섯 끼 먹기를 목표로 힘들면 세끼 사이사이에 간식을 꼭 껴 넣는 것부터 시작하랬다.


어차피 운동 가선 무리하긴 커녕 스트레칭 정도만 하는 수준이니 하루 한 번은 6층 우리 집을 계단으로 오르기도 했다.


물의 양, 사탕 하나까지 다 알려달래서 정말 내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매일 '점심 뭐 먹지' '저녁 뭐 먹지'에 굉장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고 여겼는데 막상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맛과 값에만 초점을 맞춰 메뉴를 결정해 왔던 것 같다. 요즘 나온 닭가슴살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도시락 메뉴로 싸 가면 점심값도 절약하고 건강도 챙기는 좋은 대안인 것 같다.


처음으로 내가 먹는 것을 타인과 공유하고 또 남들은 어떤 음식들을 먹고 사는지 볼 기회가 생기니 덩달아 좋은 자극을 받아 원재료 위주의 간단하지만 건강한 식사를 하려고 한다. 원장님이 말한 단톡방의 함께하는 효과가 이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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