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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May 25. 2024

손흥민처럼 금주 vs 김종국처럼 닭가슴살 스무디

3월 16일 토요일 식단 


9:51 피자 한쪽, 아메리카노, 물 한 잔

10:56 밥 나물반찬 떡국 


원장님 : 회원님 단백질.... 많이 부족 

            지방도 부족^^ 

            닭가슴살과 브로콜리 데친 걸 락앤락통에 넣어서 들고 다니면서 먹기로 해요^^


14:17 삶은 계란 두 개

19:28 단백질음료 동동주 보쌈 (짜릿한 표정 이모티콘)


22:11 맥주 통닭구이 


듀엣 pt 받는 회원님 : (맥주 통닭구이에 답장) 앗 회원님!! 넘 귀여우세요 ㅎㅎㅎㅎ


22:12 ㅋㅋㅋㅋ 막 나가네요 주말이라 



3월 18일 월요일 pt 


센터 실장님, 선생님, 듀엣 pt회원님 모두 깔깔대며 날 놀리기 바빴다. 

회원님 술을 그렇게 좋아하신다면서요. 

-맞아요. 근데 한 잔이에요. 가소롭죠? 호호

모두 : 뭐야 뭐야~ 마신 것도 아니잖아. 그래놓고 무슨 일탈이에요 너무 웃겨 까르르


- pt 중 -

원장님 : 회원님, 손흥민이 팀을 승리로 이끌고 거기에 큰 상까지 받은 날이었어요. 좋은 날이잖아요. 샴페인 한 잔 할 법하잖아요? 그런데도 손흥민은 샴페인 한 모금조차 참았다고 해요. 그리고 김종국 역시 철저하게 금주해요. 그렇게 운동 열심히 하는데, 알코올은 근손실의 가장 큰 주범이에요. 


(묵묵히 운동) 


손흥민이라니.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수인 그 쏘니를 말하는 건가? 김종국이라니. 언젠가 닭가슴살을 뜬금없이 믹서에 넣어 갈아 마시는 걸 보고 사람도 아니라고 혀를 찼었는데. 


센터를 나와서 혼자 신호를 기다리며 풉 하고 웃었다. 날 손흥민이나 김종국에 비교한 게 어이없을 정도로 웃겨서. 그런데 저 말이 머릿속에서 묘하게 맴돌았다. 

3월 중순, pt를 막 시작하고 식단을 하려고 닭가슴살을 주문했을 이때만 해도 나는 운동 중에 

"회원님 자기 팔도 이렇게 무거워하면 어떡해요" 하는 소릴 들으며 기구 필라테스에 가서 맨손운동을 겨우 하고 있던 때였다. 그마저도 땀을 뻘뻘 흘렸다. 눈앞이 핑 돌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나 살아 보겠다는데, 삶은 계란을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배가 불러서 물도 안 마시는 내가 단백질 음료와 견과류 3봉을 입에 우적우적 넣고 있는 중에 이렇게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막걸리 한 잔을 홀짝홀짝하면 이게 다 도루묵이 된다는 얘기였다. 


특히나 수술 후 두 달을 집에서 쉬어서 주머니 사정도 빠듯해졌는데 살아 보겠다고 원장님 pt를 결제까지 한 터였다.

정신이 차려졌다. 


원장님은 남들이 보면 우스울 수 있는 양이지만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도 내 작은 몸집엔 치명적일 수 있됐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탄산음료는 몸에 안 좋으니까라며 대신 술 한 잔을 곁들였다. 


원장님, 저 챌린지 하는 세 달동 안 만이라도 한 번 금주해 볼게요. 


이렇게 결심이 서니, 의외로 식사 시간은 순조롭게 풀려 나갔다. 이걸 어떻게 술이랑 안 먹어? 하는 음식들에 정말 물 한 잔 떠놓고 같이 먹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회원님 닭가슴살은요?"로 모든 게 통할만큼 원장님의 식단 지론은 매우 단순하고 명확했다. 

계란, 두부, 견과류, 단백질음료 등 부수적인 요청도 있었지만 닭가슴살만큼 근육을 만들어내는데 확실하고 빠른 건 없다고 했다. 



5월 25일, 내 일생에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다닌 적이 없다. 주 2회 그룹, 1회 pt. 

이렇게 꾸준히 뭔가를 하고 앞으로도 관둘 생각을 안 하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괜찮은 거니? 대체 왜? 이렇게까지'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니까 난 손흥민처럼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될 것도, 김종국처럼 근육왕이 될 상은 더더욱 아닌데도 말이다. 요즘 좀 많이 해이해져서 '오늘은 닭가슴살 좀 먹어볼까?' 하고 별식처럼 먹고, 카톡엔 묵음 처리하고 저녁에 못 이기는 척 술도 한 잔씩 했다. 


예전과 달라진 건 내 식단을 스스로 돌아보고 "이거 이거 요새 좀 빠졌다?" 셀프 인식을 한다는 거다. 어젯밤에도 저녁을 배불리 먹고 산책하러 나와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서 고심해서 남자친구의 아이스크림을 골라 주고 한 두 입 뺏어먹는 걸로 그쳤다는 거다. 


장을 보러 가서도 "원장님이 이건 몸에 안 좋다는데" 하고 머뭇거릴 때가 잦아졌다. 


이 정도가 현실판 챌린져가 아닐까 싶다. 

한 번은 엄마친구, 사촌오빠, 엄마와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를 구우며 셋은 막걸리 짠을 하고 나는 물 잔을 들이밀며 자랑스럽게 "저 요새 식단하거든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랬더니 아주머니께서 


어이구, 그러지 말아라. 지금 나이니까 술도 마시고 너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을 수 있는 거야. 이렇게 자유롭게 먹을 수 있을 때에 참지 말고 먹고 마시렴

이라고 하셨다. 

당뇨니, 혈관 문제니, 치아 문제 등 나보다 곱절의 세월을 겪고 난 어른이 해주는 매우 일리 있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매일 닭가슴살의 여부를 묻는 어른 옆에 있다가 "그러지 말아라 그럴 필요 없다"는 어른을 만나니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도 나는 물 잔으로 받아쳤다. 원장님의 말만큼이나 아주머니의 말도 길게 와닿았다. 

그렇지만 6월 챌린지가 끝날 때까진 느슨하게나마 내 태도를 고수하려 한다. 


그나저나 나는 예전엔 대체 뭘 먹고살긴 한 건지, 몸무게가 주에 몇 백 그램씩 늘어 어제 새벽 운동에선 바나나 하나 먹고 땀 흘려 운동하고선 인바디를 쟀는데 웬걸,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가을겨울 옷을 정리했는데 설마 설마 하며 작년에 입던 바지들을 입어 봤는데 대부분이 허리가 커서 수선해 놓은 옷들이었고 이젠 채워지지가 않아서 그 옷들을 결국 전부 버리기에 이르렀다. 원장님께 "저 이 방향이 맞나요? 정말 걱정돼서요"라고 물으니


지금이 맞아요

가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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