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없지만 매주 아이들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로 가장 오랫동안 해 온 일이다. 여러 공간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 수업을 하는데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적게는 몇 번, 길게는 한 해 정도를 함께 한다. 반면 동네 학원은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어려워져 몇 개월 쉬었던 걸 제외하곤 몇 년째 다니고 있다. 유일하게 정기적이지만 애매한 액수의 돈을 벌고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 하원 시간에 맞추기 때문에 서울에서 다른 일을 보다가도 오후 3시엔 꼭 맞춰서 돌아와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항상 가장 먼저 관둘까 생각하는 것도 이 일이다. 왠지 이 일을 관두고 꽃 일이나 내 작업에 시간을 더 쓰면 경제적으로 훨씬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가 가장 큰데, 정말로 관둔 적은 없다. 그건 분명 애매한 액수나 황금 같은 오후 시간대를 써야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거다. 말은 ‘애들 상대하는 거요? 아휴 힘들죠’ 하지만 정말로 이 일이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다. 여전히 아이들끼리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같이 깔깔거리는 걸 좋아하고 1시간 진을 빼놔도 교실을 나서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고 갑자기 꾸벅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면 수업시간에서의 힘듦은 금방 사라진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모두 ‘아이잖아요’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도 기억했다가 ‘지난주엔 이거 하기로 했잖아요’ ‘일찍 끝내고 모래놀이하게 해 준댔잖아요’ 같은 약속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혹은 가끔 안경을 쓰고 가면 5, 6세 아이들은 ‘선생님 왜 안경을 썼어요?’ 하고 꼭 물어본다. 처음엔 안경을 쓰는데 ‘왜’가 들어가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하다가 ‘너희를 더 잘 보려고’라는 대답을 했다.
이렇듯 아주 작은 변화도 어른들보다 더 잘 알아채기도 한다. 아이들 사이에 내 평판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커트머리에 아주 강렬한 펌을 하고 학원에 갔었다. 옆 반 아이들도 세면대에서 나를 마주치면 ‘선생님 파마했네요’ 하고 말을 걸 정도로 눈에 띄는 엄청난 변화였다.
미묘한 건 모두가 ‘선생님 파마하셨네요’ 하고 그 뒷 말이 없다는 거다. ‘어머 선생님 머리 하셨네요~?’ 대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무척 의미심장한 눈길로 그것도 조금은 느린 어조로 ‘선생님 파마하셨네요’ 하고 만다. 개중 몇몇 아이들은 당돌하게 ‘선생님 파마를 왜 했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아니 코멘트였으려나.
그래서 ‘예쁘려고 했지! 난 마음에 들어!’라고 응수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아이들이 그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적당히 긴 머리에 엄마가 좋아하는 꽃무늬 치마를 입혀주는 게 대부분이다. 유치원 선생님들이나 다른 주변 어른들도 여성은 통상적인 여성성이 강조된 모습으로, 남성 또한 일반적인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 가운데 나의 겉모습은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게 보였을 거다. 그래서 아이들이 붙인 별명으로는 삐에로, 도우너, 등 우스꽝스러운 혹은 남성 캐릭터 위주였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했던 것 같다. 예쁘다고 말하기에는 평소 그들이 가진 인식에서의 예쁜 여자 어른 이미지와는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몰스킨 매장을 구경하고 있는데 직원분이 옆에 오시더니 ‘저희 예술가용 노트가 두꺼운 용지로 따로 나와요’ 하며 그쪽 코너로 나를 데려갔었다. 나름의 유쾌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이상한’과 ‘특이한’이라는 형용사를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의 느낌적인 정의로는 ‘이상한’은 어딘지 모르게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을 동반하는 반면 ‘특이한’ 은 내가 늘 보던 것과는 다른, 그러나 그것이 어떤 꺼림칙하거나 뭐가 뭔지 모르겠는 느낌을 준다기보다 ‘새로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특이한 어른, 예외적인 어른이 주변에 한 둘 있는 것도 괜찮다 생각한다. 꼭 겉모습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부모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봐주거나, 스파이더맨이 왜 좋아? 어몽어스는 뭐가 재밌는 거야? 분홍색이 왜 여자색이야?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아이가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여자’도 있구나, 혹은 나같이 이런 꼬불꼬불한 머리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기호를 가진 어른도 있다는 정도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