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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발라드 Sep 26. 2022

파리 발라드 11. 몽파르나스 묘지

관점에 대한 생각

2022년 7월 21일  몽파르나스 묘지


 요즘 출근하는 사무실이 파리 14구에 있어 하루는 산책 간식 타임을 위해 근처 몽파르나스 묘지에 갔다. 한국에서공동묘지하면 괜히 무섭고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굳이 찾아가는 일이 없었는데 이곳에 살면서 변한 것 중 하나가 묘지를 즐겁게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프랑스 공동묘지는 공원처럼 조성되어 다양한 꽃과 나무가 가득하여 산책하기 좋은 장소다. 정확한 명칭도 그에 걸맞게 '공원묘지'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처럼 어딜 가든  여행객으로 북적이는 관광 시즌에는 도심 속 아지트 같은 느낌을 주어 더 매력적이다. 벤치에서 독서를 즐기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심지어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마주칠 수 있다. 공원을 조금 걷다 보면 지킴이 역할을 하는 고양이들도 하나 둘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는데 이쯤 되면 이곳이 묘지인지 공원인지 어느새 잊힌다.


 나도 챙겨간 사과 크럼블과 커피를 마시러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원을 둘러 경계벽이 영혼들이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도시 소음을 막아주어 조용하니 멍 때리기 제격이었다. 시선 따라 벽 너머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도 보이는데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져 묘한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가까이 있어 보고 싶을 때마다 와서 볼 수 있으니 더 오래 행복하겠구나 싶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속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하늘에서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공원묘지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유명인들의 묘지다. 코코의 상상력을 빌려 몽파르나스 하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혼(?)을 짐작해보면 아마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커플일 듯싶다. 이곳에 안치된 3000 여개의 묘 중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아온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무덤 위에는 사람들이 두고 간 지하철 티켓이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묘석에는 연인들의 성지처럼 붉은 입술 자국, 하트 표시가 숱하게 찍혀있는데 그들의 저서가 철학자로서 영원히 살게 한다면 그 둘을 불멸의 연인으로 살게 하는 곳이 바로 이 묘지가 아닐까.


 브랑쿠시의 작품 '키스'가 조각된 Rachewskaïa의 무덤 또한 놓칠 수 없는 장소 중 하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23살의 딸을 위하여 그녀의 가족들이 당시 무명작가이자 로댕의 제자였던 브랑쿠시에게 의뢰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젊은 연인의 사랑, 그리움, 애틋함이 녹아든 이 조각은 지금도 처음 그 자리에서 무덤을 지키고 있는데 이들도 우리의 기억을 통해 하늘에서 다시 만나 그때 다하지 못했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모더니즘 대표 조각가의 작품답게 그 가치가 55억 원을 호가하여 최근 프랑스 정부와 Rachewskaïa 자손들의 소유권 분쟁으로 나무판으로 조각을 가려두어 직접 볼 수 없는 점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이런저런 상상과 생각 속에 산책하다 보면 금세 묘지는 친숙하고 편안한 곳이 된다. 묘지가 사색에 좋은 공간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타지 살이 중에 넋두리하는 일도 많지만 그만큼 배우는 점도 참 많다. 같은 묘지라는 공간도 관점에 따라 무섭고 어두운 곳에서 따뜻하고 밝은 곳이 될 수 있다는 , 그만큼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한지 그리고 그 선택은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도 새삼 다시 느낀다.

 파리 여행 중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조용한 공간을 찾는다면 좋아하는 예술가가 묻혀있는 공원묘지를 찾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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