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근하는 사무실이 파리 14구에 있어 하루는 산책겸 간식타임을위해 근처 몽파르나스 묘지에 갔다.한국에서는 공동묘지하면 괜히 무섭고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굳이 찾아가는 일이 없었는데 이곳에살면서 변한 것 중 하나가 묘지를 즐겁게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프랑스공동묘지는공원처럼 조성되어다양한 꽃과 나무가가득하여 산책하기 좋은 장소다.정확한 명칭도 그에 걸맞게 '공원묘지'이기도 하다.특히 요즘처럼 어딜 가든 여행객으로 북적이는 관광 시즌에는도심 속 아지트 같은 느낌을주어 더 매력적이다.벤치에서독서를 즐기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심지어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마주칠 수 있다.공원을 조금 걷다 보면 지킴이 역할을 하는 고양이들도 하나 둘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는데 이쯤 되면 이곳이 묘지인지 공원인지 어느새잊힌다.
나도챙겨간 사과 크럼블과 커피를 마시러 자연스럽게의자에 앉았다.공원을 둘러싼 경계벽이 영혼들이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도시 소음을 막아주어조용하니 멍 때리기 제격이었다. 시선따라 벽 너머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도 보이는데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져 묘한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가까이 있어 보고 싶을 때마다 와서 볼 수 있으니 더 오래 행복하겠구나 싶었다.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속 이야기처럼누군가의기억 속에 남아 하늘에서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공원묘지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유명인들의 묘지다. 코코의 상상력을 빌려 몽파르나스 하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혼(?)을 짐작해보면 아마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커플일 듯싶다. 이곳에 안치된 3000 여개의 묘 중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아온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무덤 위에는 사람들이 두고 간 지하철 티켓이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묘석에는 연인들의 성지처럼 붉은 입술 자국, 하트 표시가 숱하게 찍혀있는데 그들의 저서가 철학자로서 영원히 살게 한다면 그 둘을 불멸의 연인으로 살게 하는 곳이 바로 이 묘지가 아닐까.
브랑쿠시의 작품 '키스'가 조각된 Rachewskaïa의 무덤 또한 놓칠 수 없는 장소 중 하나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23살의 딸을위하여 그녀의 가족들이 당시 무명작가이자 로댕의 제자였던 브랑쿠시에게 의뢰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젊은 연인의 사랑, 그리움, 애틋함이 녹아든 이 조각은 지금도 처음 그 자리에서 무덤을 지키고 있는데 이들도우리의 기억을 통해 하늘에서 다시 만나 그때 다하지 못했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다만 지금은 모더니즘 대표 조각가의 작품답게 그 가치가 55억 원을 호가하여 최근 프랑스 정부와 Rachewskaïa 자손들의 소유권 분쟁으로 나무판으로 조각을 가려두어 직접 볼 수 없는 점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이런저런상상과 생각속에 산책하다 보면 금세 묘지는 친숙하고 편안한 곳이 된다. 묘지가 사색에 좋은 공간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타지 살이 중에 넋두리하는 일도 많지만 그만큼 배우는 점도 참 많다. 같은 묘지라는 공간도 관점에 따라 무섭고 어두운 곳에서 따뜻하고 밝은 곳이 될 수 있다는 것,그만큼 어떤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한지 그리고 그 선택은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도 새삼 다시 느낀다.
파리여행 중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조용한 공간을 찾는다면 좋아하는 예술가가 묻혀있는공원묘지를 찾아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