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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완 Feb 15. 2016

'육지 것'들이라 부른 것에 관한 변명

제주 토박이들이 뭍에서 온 사람들을 하대해서 부르는 말 ‘육지 것’. 사람을 사물과 같이 업신여겨 부르는 나쁜 말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제주에 살며 그런 호칭을 듣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고 반응도 제각각이다. 진정한 ‘제주 것’이 되려는 사람도 있고 제주에 온 지 십 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육지 것’ 취급한다고 제주 사람들을 욕하며 아예 제주 사람대접 받는 걸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 더 오래된 이야기를 하면 내 고향 대한민국 최남단 항구 모슬포는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 주둔지로 비행장과 고사포대, 자폭 어뢰정을 숨기기 위한 송악산 인공 굴이 있고 그 옆으로는 6·25 동란이 발발하자 북한군이 남하했을 때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미리 검거한 ‘예비 검속’ 희생자들의 묘가 있는 섯알오름이 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어느 날 없어진 가족들을 찾다 섯알오름 구덩이에 있는 유해를 수습하려 하는 유가족들의 접근을 총을 쏘아 막았다. 일본군이 물러간 자리에 미군이 들어섰고 미군 클럽이 생겼다. 내 할머니의 시선을 빌리면 항상 누군가 왔고 빼앗아 갔고 그 자리를 다른 ‘육지 것’들이 와서 채워 갔을 뿐이다.


6·25 동란 때에는 제1군 국군 훈련소가 모슬포에 설치되었고 전쟁을 피해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모슬포에 살았다.


그래서 모슬포에는 중국 공산화 과정에서 대만으로 가지 않고 제주로 온 중국인도 있었고 북한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전국 각지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온전히 제주 사람이 되었을까? 알다시피 제주의 삼무는 거지와 도둑과 대문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제주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섬의 특징일 것이다. 먹을 것 없어 빌어먹는 거지를 그냥 놔둘 리 없고 도둑은 무엇인가를 훔치면 그것을 가지고 가야 한다. 섬에서는 그걸 가지고 갈 데가 없으므로 도둑이 없다. 다만 자전거 도둑은 있었다. 읍내에 나와 술 마신 김에 길가에 놓인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경우는 드물지 않게 있었다. 잡혀서 혼쭐이 나기도 하고 새 자전거로 물어내기도 했었다. 대문도 도둑과 마찬가지다. 땅을 파면 돌이 나오기 때문에 그걸 쌓으면 담이 되기는 했어도 부러 문을 만들어 출입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육지에서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육지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대문도 없는 집 마당에 쓸 만 한 것이 있으면 가져다 쓰게 되었다. 그다지 도둑질이라는 걸 당해 본 적이 없는 제주 사람들은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그리 탐탁지 않게 된 하나의 이유다. 그들의 고향에서 어떤 이유로든 떠나온 사람들은 넉넉지 않았고 집도 마을 안이 아닌 사람들이 살지 않던 마을 외곽이었으며 그들의 일가친척들을 하나씩 불러 모아 둥지를 이루어 살게 되면서 그들만의 마을을 이루는 경우도 많았다. 외지인촌락은 제주 사람들과는 다른 결속력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부분에서 단체 행동을 하곤 했다. 품앗이 품삯을 일괄 올려달라고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집에는 아예 일 해주지 않거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의 백제와 통교했던 일과 현재의 오키나와인 류큐 왕국과의 일부터 이야기했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섬의 역사는 ‘육지 것’들을 달갑게 받아드리기에는 아픔이 너무 컸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 오래 살 것 같이 제주에 와서 몇 년 살다가는 힁허케 돌아가 버리면 못 다 준 정은 부채처럼 쌓이고 이미 줘 버린 정은 가슴에 돌담을 만든다. 마음을 쉬 열면 다치기 십상이라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득하니 오래 살다보면, 제주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제주 사람들도 마음을 연다. 내 생각에는 이게 한 삼 년 걸린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따뜻한 말을 건네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생각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육지 것’으로 부른 것에 관한 한 토박이의 변명이다. 이제 나는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부르면서도 섬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망은 항상 있었다. 섬에는 없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나 동경 같은 것이고 받아들일 만한 것이 있으면 빨리 받아들인다. 제주의 언어나 음식 문화가 유배 문화의 영향이 가장 컸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제주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제주에는 없던 많은 문화가 생기고 있다. 주말이면 작은 콘서트가 이곳저곳에서 열리고 수작업으로 만든 알뜰한 것들을 파는 시장이 곳곳에 열리고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이 생겼다. 그런 곳에 가서 주위를 둘러 보면 제주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온통 이주민이라 불리는 사람들만 있는 때도 있다. 또 다른 이주민촌락이고 그들만의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다.


이제 이런 말은 더는 필요 없는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대한민국 헌법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개발 특별법에 따라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비자 입국이고 얼마간 투자하면 영주권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제주는 제주다워야 하고 제주다움에는 제주에 오래 살아 제주 풍경에 녹아든 제주 사람들이 있다. 제주가 좋아서 왔으니 제주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며칠 전 TV에서 제주 전통 도기에 관한 프로그램을 봤다. 제주도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아 투박하고 항아리를 세로로 올려 구워 입구에 표식이 남는다. 그 전통 도기들이 예쁜 사발도 되고 커피잔도 되어 있었다. TV에서 팔순의 장인과 스무 살의 여학생이 함께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제주의 것을 발굴하고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은 공존을 떠올리게 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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