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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완 Jan 28. 2016

제주 이주민 이야기 1

제주로 이주하시려는 분들에게···

긴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제주에 새로운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아마 ‘문화 이주민’이라고 불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문화’는 어느샌가 떨어져 나가고 ‘이주민’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신제주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는 전에 ‘새 입도조들’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무엇을 하고 살까?


알다시피 제주로 아예 삶의 터전을 바꾼 이주민들은 카페, 게스트 하우스, 식당, 농사 등을 한다. 무턱대고 파라다이스로 향하듯 와서 제주에서의 직업의 가짓수를 보고 당황해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방송 미디어 탓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용감하게 결정하고 이주해서 아주 잘살고 있다’라고 하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별 생고생하는 이야기를 끝에 꼭 담는다. 그래야 제법 이야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 담당 PD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곧이곧대로 다 믿어서는 안 된다. 의도된 결론과 과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에서 직업의 가짓수는 서울보다 상당히 적다. 예전에 서울에서 새우 수입업을 하는 매형이 제주에서 같은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장 조사를 했다. 그때, 새우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내가 먹는 새우를 생각해보니 그걸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매형은 호주나 동남아,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수입해 파는 새우 수입상이었다. 그런데 제주에서 같은 일을 하려고 하니 새우 하나 가지고는 사업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제주에서 하려면 새우 이외에도 해산물 일체를 취급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다못해 꽃게라도 같이 취급해야 하는데 새우에서 남고 꽃게에서 밑지는 장사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


이주민들이 만들기 전에도 카페, 게스트 하우스, 식당, 농부가 있었다. 새로 생긴 카페들은 독특한 인테리어와 컨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예전에는 농담으로 제주에는 전 세계가 다 있다고 하고 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펜션이나 LA 모텔이니 하는 간판을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짜 산토리니의 하얀 집을 그대로 옮겨 온 것 같은 숙소도 있고 빠에야와 타파스를 파는 스페인 레스토랑도 있다.


예약을 받아 저녁 식사만 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갔었다. 이 레스토랑의 주인이며 동시에 셰프인 사람과 소물리에 한 명이 전부다. 제주에 와서 지인들과 함께 토지를 구매해서 지었다는 건물은 단순하지만 세련되었다. 아마도 70년대 만들어졌을 리시버와 같은 시기의 AR 스피커에서 고즈넉한 음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이런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주 맛있었다. 엔초비가 보였는데 혹시 하는 마음에 물었더니 “대정에 멸치 철이 되었을 때 싸게 사서 만들었어요.” 라고 했다. 다른 음식재료도 다 제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로컬 푸드는 멀리 이국에서 온 재료들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트에서 휘어지거나 두 갈래로 자란 당근을 본 적이 있는가? 밭때기로 당근을 팔면 중간 상인들은 올곧은 것들만 걷어가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린다. 당근 스튜를 파는 플리 마켓의 젊은 요리사와 흑돼지 패티를 넣은 제주 밀 햄버거는 삼 천 평 당근 농사를 지어 일 년 삼 백 만원을 버는 제주 할망에게는 정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고, 사라졌던 제주 밀을 되살렸다는 것도 역시 대단하다. 수입 밀보다 성분이 아주 좋다고 한다.


이제 몇 년이 지나고 아직도 제주 열풍은 지속되고 있지만, 제주말로 ‘오소록’한 곳에 있는 이 가게들은 더는 특별하지는 않게 되었다. 게스트 하우스 수가 천 개소를 넘었다고 하고 아마 카페나 식당도 그럴 것이다. 제주 토속 음식을 판다는 올레길 코스에 있는 식당에 가면 제주에 온 지 채 얼마 되지 않은 분이 제주 자랑을 하며 식사를 낸다.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제주 토속 음식을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제주 시내 보다 싸고 푸짐했던 음식은 사라지고 비싼 가격의 정체불명의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올레길 주변으로 게스트하우스가 생기면서 제주 할망은 자식이 떠나버려 빈 밖거리를 정비해서 ‘올레꾼 민박’을 만들었다. 민박 손님들은 심심치 않게 들었고 삼 천 평 당근 농사보다 쉬웠고 수입은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의 커피숍이 그들을 밀어내고 처음 그곳에 카페를 차린 이들의 눈썰미로 발견한 경관 좋은 스팟들은 대자본의 통일된 채색으로 하나둘 물들어 가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는 아직도 건재한 곳도 많겠지만 제주 전통의 민가들이 시내 빌라보다 더 비싼 경우가 많다. 안거리와 밖거리 두 채로 이루어진 제주 민가들은 더는 남아있지도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새로 생겨나는 숙소마다 화려하고 독특하고 세련되었다. 기존에 먼저 제주에 와서 소박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이들도 조금씩 숙박비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조금씩 변해간다. 초심은 무색해질 판이다.


젠트리피케이션[1]은 서울의 어느 골목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했듯 언젠가는 이 열풍도 사그라들 것이다. 다만 그 꽃이 더는 아름답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1] https://ko.wikipedia.org/wiki/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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