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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완 Jan 29. 2016

제주 이주민 이야기 2

제주에서 다시 만난 옥상 친구들

‘공짜라고 해도 너무 비싼’. 인도 콜카타 서더스트릿에 있는 숙소를 평가한 어느 여행 안내서에 적혀 있던 말이다. 프론트라고 부르기에는 참혹한 입구는 마치 감옥의 면회소를 방불케 한다. 창살 안의 사내에게 침대를 배정받고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으로 정방형의 방들이 감방처럼 늘어 서 있다. 일교차가 큰 인도 서북부의 날씨에 죄다 방문을 열어젖혀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드레드 머리를 한 서양 아이들이 시타르를 켜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문신과 수염, 헐렁한 옷은 그들의 제복처럼 보였다. 밤이 되면 천정에서 똑똑 물이 떨어진다. 어디서 무엇이라도 새는 듯이 천정에서는 이슬이 맺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밤새 들었고 그래서 뇌수라도 빠져 나간 듯이 항상 멍한 아침을 보냈다.


좁다란 계단을 오르면 마침내 옥상이다. 옥상에도 몇 개의 방이 있는데 대부분 장기 체류자들이다. 아래층보다 더 추레해 보이지만, 옥상에 침대를 배정받을 때까지 일 층의 축축한 침대를 전전했을 것이다. 그래도 옥상은 시원찮은 회색의 공기 사이로 햇빛이 조금이라도 비치고 빨래를 널 공간도 있고 가운데에 탁자와 의자도 있다.


그곳에서는 쉽게 친구가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밥을 지어 타국의 여행자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음을 약속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때로 연락처를 주고 받기도 했지만, 여행이 끝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연락이 쉽지 않았다. 옥상에서 함께 어쭙잖은 김치를 만들고 찌개를 끓여서 밥을 먹었다. 그 중 누구는 어두워지면 닫는 리큐어 가게 창살 사이로 술을 조달해 오는 것도 잘했다. 지휘하는 건 수십 년간 인도를 다닌 시인 형이었다. 난 그에 비하면 그저 거저먹는 입이었다.


그런데 그 옥상의 식구들을 제주에서 만났다. 신기하게도 그 옥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긴 여행을 마치고 어딘가에 정착할 생각으로 제주를 골랐고 아주 싼 땅을 사 두기도 했고 여행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리를 배워두기도 했던 모양이다. 몇 년이 지난 후 그들은 정말 제주에 살고 있었다.


유독 바다를 좋아하던 한쌍의 다이빙 커플은 바다만 있으면 살 것 같았다. 산에 들어가 살라고 하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추운 겨울에도 바다에 들어가 문어를 쉬 잡아 올린다. 방 하나를 꾸며 주로 오래 머물 사람을 손님으로 받는데 꽤 인기가 좋은 것 같다. 작은 민가의 마주 보는 방 하나를 꾸몄으니 손님이 들면 혹시 방해될까 까치발을 들고 다니고 화장실마저 자제한다고 했다.


‘제주에 왔으면 형한테 인사를 해야지.’라고 으름장을 놨더니 어느 날은 초대를 받았다. 어디서 배웠을 리도 없는데 비 새는 걸 막으려 지붕에 올랐던 일이며 집안 습기와 싸우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 말을 하며 직접 만들어 끼웠다는 창틀 밖으로 초록의 밭이 보였다. 그럴싸하다. 모든 걸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한 것 같다. 손님방은 정갈했지만 부부 침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마살라 짜이라며 인도 밀크티를 만들어 플리 마켓에서 판다. ‘오늘도 완판’ 했다고 자랑하는 글을 봤다.


인도에서 만난 옥상의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다시 여행을 떠난다. 점점 더 오지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한다. 아마도 봄이 완연해야 다시 제주로 돌아올 것이다. 누구의 삶도 심판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은 부유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가지는 자유의 가벼움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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