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다르다면 이주민이 있다는 거다
“입도 몇 대입니까?” 제주에만 있는 이 질문은 이 섬에 산지 몇 대손이냐를 묻는 것이다. 오래된 토박이는 그 지역을 잘 알고 사람들과 연이 많으니 그건 때론 강한 권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고 그저 우스개 소리일 뿐이다. 어째든 찾아보니 나는 입도 21대 손이었다.
태어나보니 섬이었고 어느날 문득 어떻게 내가 여기에 살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집안 어른들이 이야기했던 것을 근거로 조선왕조실록[1]과 양천허씨 대중회 자료실[2], 제주학 아카이브[3] 등을 찾았다.
이성계의 조선이 건국되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 도저히 새 왕조에 충성을 맹세할 수 없는 고려의 개국 공신들은 관직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제주에는 대규모 귀양이 보내졌다. 내 본관인 양천 허씨는 지금의 서울 양천구, 강서구와 김포평야 일대에 사는 일족이었는데 왕건에게 군량미를 대어 후백제와의 전투에 공을 세웠고, 고려의 건국 공신이 되었다고 한다. 허선문이 양천 허씨의 시조가 되었고 왕건은 왕가에만 허락되었던 한 글자 이름을 허락했다. 허씨들이 외자 이름이 많은 이유다. 그 후 고려 조정에 여러 관직으로 등용되었다. 허씨 집안에 장군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양천 허씨는 허난설헌, 허균, 허준 같은 분이 알만한 분이다.
한 가족이 있었는데, 조선 개국과 함께 고려의 대제학 벼슬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자진해 순국한 허흠이고 그의 아들 형제 중 형은 북으로 가서 두문동에 칩거하게 된다. 두문동 72인 중 한 명인 허징이다. 그의 동생 허손은 ‘불복신의 동렬’이라는 이유로 제주로 보내진다. 이 분이 내 제주 입도조 할아버지다. 허손은 세종 때 복권되어 벼슬을 받았으나 지조를 굽히지 않고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제주로 가며 구슬픈 시를 한 수 적었다고 한다.
공락남시(公落南時)
遯兄雲北凄凉雨 형님이 가시는 북쪽 길은 하늘도 서글퍼 비를 뿌리고,
送弟海南鳴咽波 아우를 보내는 남쪽 바다는 물결도 성내어 목메어 우는구나.
從此弟兄南北去 이다음에도 형과 아우가 남과 북으로 쫓겨 간다면,
海波霜雨客思多 성낸 물결과 서글피 내리는 비에 나그네 시름 어이하리.
조선 개국에 항의하며 두문동에 들어가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고려 충신들의 행동을 일러 ‘두문불출’이라고 했고, 이방원이 왕이 되어 이들에게 향후 백 년간 과거 응시를 제한했는데 출셋길이 막힌 이들의 자손들은 장사를 시작했다.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 ‘개성상인’이다.
인천 제물포에서 배를 띄우면 제주까지 제대로 오면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그것도 어디에 내릴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북쪽 조천에 내리기도 하고 남쪽 남원에 닿기도 했다고 한다. 입도조 할아버지는 구좌읍 종달리에서 서당을 열어 은거하셨다고 한다. 그의 손자는 표선으로 옮기셨고 몇 대 후에 서귀포 색달동으로 자리를 잡으셨다. 그 이후에 다시 대정에 일파가 생겼다. 용천수와 농사 짓기 좋은 땅을 찾아 이동했으리라.
요즘은 제주에 입도조가 유사 이래로 많이 생겼다. 순 유입인구, 즉 전입에서 전출을 뺀 인구가 한 달에 1,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인도 여행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이제 제주에 살고 태국에서 만난 이들은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한다고 했다. 언젠가 제주에 살거라 내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제주를 어떤 형태로든 변하게 할 것이고 그 변화에 기대가 있다.
하와이에는 본토의 대자본가들과 하와이를 사랑한 일본인들과 원주민들이 있다. 원주민들의 춤과 노래는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이 만들고 불렀던 ‘알로하오에’는 언젠가 하와이를 다시 찾으리라는 애절한 사연이 있는 노래다. 제주는 위정자들이 말했듯이 동양의 하와이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원주민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다만 다르다면 이주민들이 있다는 거다. 많은 유배인들이 제주 문화의 바탕을 이루었듯이 새로운 입도조들이 제주의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
[1]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2] http://www.heo.or.kr/note7/board.php?board=gman&sort=user_add4&indexorder=2&search=%C7%E3%BC%D5&shwhere=tbody&command=body&no=30
[3] http://www.j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