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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 합격했나 봐.

도전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

새벽 4시면 잠에서 깬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나 동부에 위치한 기업들과의 채용 인터뷰도 이젠 습관이 되어 갈 때 즈음, 생체리듬조차도 PST(서부 표준시)나 EST(동부 표준시)에 적응을 해버려서인지 휴대폰 알람 설정도 필요 없을 만큼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다.


게다가, 몇 가지 루틴도 생겼다. 침대에 걸터앉아 잠에서 덜 깬 초점도 맞지 않은 눈을 비비며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휴대폰을 열어 이메일부터 체크한다. 밤사이 인터뷰 일정에 변경은 없는지, 또 다른 기업으로부터 채용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온 것은 없는지.


무엇보다도... 며칠 전 마친 인터뷰의 결과를 알리는 메일이 도착했는지를 체크하는 일. 별일이 없음을 확인하곤, 곧바로 링크드인(LinkedIn) 앱을 열어 새로이 뜬 채용 공고나 DM(Direct Message)로 들어온 헤드헌터 메시지는 없는지를 잠시 훑어본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 바탕화면의 이메일 앱 아이콘과 링크드인 아이콘 오른쪽 귀퉁이에 빨갛게 붙은 '노티' 아이콘이 제일 반가운 새벽 소식이 되어버렸다.



한 통의 이메일


한 일 년 즈음되었으려나? 처음엔 몇 개월 만에 한 두 기업만을 골라, 겁먹은 초보 특유의 섬세한 준비 후, 한 땀 한 땀 매듭을 짓듯 인터뷰에 임했던 듯하다. 긴장감으로 바싹 얼어붙은 채 앞뒤가 뒤엉켜버린 영어로 '어버버'... 하던 그 흐릿한 시절까지 더하면 2년은 다 되었을 법하다. 몇 개월 전 미국 영주권을 얻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구직을 하게 되면서 일주일에 두세 건의 새벽 인터뷰는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의 경기 부양을 위한 양적완화 덕분에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면서, 채용기회도 줄었음을 피부로 느꼈다. 채용은커녕 빅테크 여기저기서 해고(Layoff) 뉴스가 지면을 채우며 그렇게 이어지던 어느 새벽, 두 눈이 번뜩 뜨였고 그 초점이 카메라의 오토 포커싱 기능이 동작하듯 갑자기 맞아떨어진다. 밀려오는 기쁨을 누르며 내용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3년여의 시간 동안 준비를 거친 짧지 않은 여정의 첫 번째 성과이자 첫 번째 최종 합격 통지 이메일을 그날 새벽 그렇게 받았다. 가족 모두가 아직은 잠든 이른 시간이어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혼자 오른 주먹을 조용히 움켜쥐며 나 스스로에게 '이게 되긴 되는구나.'라고 중얼거린다.


잠에서 막 깨어난 아내에게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알렸다.


"나 합격했나 봐."



'불확실성'이라는 캔버스에 그림 그리기


그 후로 몇 군데와 더 성사가 되면서 최종 오퍼(최종 합격 후, 기업 측에서 지원자에게 연봉 등 근무 조건을 제시하는 마지막 단계)들을 받아두고, 이 중 '한 곳'이라는 까다로운 선택을 했다. 인생 제2막의 시작과 또 그다음은 무엇이 될지 '불확실성'으로 자욱한 허공에 그림이라도 그리려는 듯, 나와 가족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말이다.


물론, 처음에 꿈꿨던 화려한 빅 테크는 아니다. 그랬으면 더 좋았겠지만, 오랜 나의 대기업 직장생활 속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는 탄탄한 기본기와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전문성이 모든 걸 말해준다라는 사실이다. 물론, 큰 조직 생활에서는 소위 '줄타기'라는 신공도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나는 젊은 시절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기억도 어렴풋하지만 '상사'보다는 '일'을 보고 직장생활을 해야겠는 다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그 다짐을 바꾸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잘 아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오퍼를 받은 회사들은 보수가 두둑한 빅테크 기업들도 아니다. 가족들의 견해도 들어보고,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했기에 한 군데를 골라 최종 수락을 했다. 무엇보다 내 가슴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나머지 기업들에는 정성스레 거절 메일을 써서 보내며 아쉬움이 적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처음 겪어보는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는 내 모습에 만족했다.  어제는 공식 업무 시작일을 확인했고, 현지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감안해 조금 더 일찍 미국에 입국하는 날짜를 골라 나의 입국 일정을 통보했다.



도전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


이제부터는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지난 3년여의 시간을 돌아보며, 또 한 가지 크게 깨달은 것은,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먼 길을 나서지만, 정작 목적지에 도착해서 얻는 것보다는 그 여정에서 보게 되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로부터 새로운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게 되듯이, 길을 나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도전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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