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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기보다 완주하기

첫 1킬로미터를 헤엄친 날 알게 된 것.


자전거 라이딩에 열심이다 보면, 상체운동이 아쉽다. 그 균형을 찾기 위해 체육관을 찾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따로 하기도 하지만, 주말엔 수영도 곁들이기로 한다. 집 가까운 곳의 가성비 좋은 스포츠센터 덕분인데, 소싯적 국대급 수영실력과 선수 경력을 자랑하는 아내와 주말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점도 있기에.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영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나에겐 어렵고 귀찮은 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수영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나 흥미가 없었다. 그저 어쩌다 한 번 씩 수영장을 찾는 정도였는데, 25미터 실내수영장을 한 번 되돌아오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대어 서서 쉬어야만 했던 저질 수영실력이다. 느리기만 한 속도에몇 미터만 헤엄쳐도 여지없이 차오르는  탓에 물을 먹기 일쑤이고,  아무리 배운 대로 팔과 다리를 휘저어 봐도 한번 차오른 숨에 자세마저 흐트러져 버린다.  


오늘만큼은  다소 색다른 목표를
세워 보는데,


어느 일요일 오후, 그저 옛날 얘기고 어릴 적 일이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아내는 안정된 자세로 수영장 문 닫는 시간까지 헤엄칠 것처럼 물길을 가른다.   평형, 자유형, 배형, 접형까지 골고루 섞어가며, 물 위에서 너무도 편안한 듯 아내의 그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아님 부러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25미터 풀 한쪽 끝에 다달아 쉬지 않고 다시 물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다소 색다른 목표를 세워 보는데, 물 위에 뜨려 하지 않고, 반대편 지점에 빨리 닿으려 하지 않으며, 그냥 편안한 호흡만을 목적으로 수면 위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는 오랜 세월 배워온 손짓과 발짓은 기계적으로만.


일 회전, 이 회전,,, 오 회전,,, 그리고는 세는 것을 잊어버렸다.   까짓것 거리 셈은 손목의 '컴퓨터'에게 맡기면 되니, 호흡만 생각하자.


두어 개월 전, 해마다 갖는 건강검진에서 여느 때와 같이, 폐기능 테스트를 했었다.  기계에 연결된 튜브에 이어진 둥글게 생긴 플라스틱 관에다 있는 힘껏 숨을 불어넣고, "더, 더, 더, 더, " 라며 새빨개진 피검진자를 다그치며 모니터를 응시하는 간호사의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견디는 그런 테스트였는데, 지난번 것과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던 이번 테스트 후에, 조금은 색다른 코멘트를 들었다.   "폐기능이 좋으시네요.  이 정도면 상위 7% 안에 드세요." 자전거를 탈 때면, 숨이 차오르는 것을 견뎌야 할 때가 워낙 잦은 터여서, 자전거 때문이려니 했다.


그 덕분이었던지, 한 번 시작한
그 편안함을 위한 수영이
예상을 뒤엎고 지속된다.


또 한 번 나를 보란 듯 앞지르는 아내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25미터 수영장 한쪽 끝이 보여도 빨리 가서 닿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리에 멈추기라도 하려는 듯, 더욱 호흡을 가다듬고 몸짓의 균형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물속의 중력이 희미한 탓에 체력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분명 많은 땀과 체력이 충분히 소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쳐서라기 보다는 지겨워질 즈음, 멈추기로 한다.  손목에 찬 그 컴퓨터는 "1,400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내를 따라 긴 수영을 해보기로 했을 때 이미, 400미터를 띄엄띄엄 헤엄친 시점이었으니, 1킬로미터를 1 랩(Lap)으로 그렇게 헤엄친 것이다. 인생 첫 1킬로미터 수영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어이없게도, 생각과 의도의 전환 만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물론, 자전거 라이딩 덕분에 호흡이나 폐활량이 다소 좋아진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가라앉지 않으려 하거나 스피드만을 위한 몸짓은 근육을 필요 이상 활성화시킨다. 때문에 산소를 빠르게 태워버리고, 숨은 더욱 빨리 차오른다. 남들은 저토록 부드럽고 자연스러운데, 내 몸은 천근만근 모래주머니라도 찬 듯,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근육의 힘으로 물속에 잠기는 몸을 떠 받드는 꼴이니, 25미터 풀의 1회전이 그렇게 어려울 수밖에.              


목표에 집착하게 되는 순간,
마음과 몸은 귀신처럼
스스로 살 길이라도 찾는 듯 긴장하고 빨라지나보다.


수영장 밖에서의 내 삶에서도,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판단력과 스킬은 충분히 써먹지 못한다.  한시라도 빨리 반대편 벽에 닿지 못하면 가라앉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숨이 차오르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듯, 이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서둘러 '성공'을 확인하고자 하는, 강박관념 때문인가 보다. 모든 것이 똑같은 이치일 수는 없겠지만, 물 밖에서도 '무엇'인가에 임하는 나의 호흡을 가다듬어 봐야겠다. 그 하나하나에서 언젠가는 만끽하게 될 완주의 기쁨을 상상하며.


끝.


맥주병이나 다름없었던 나는 그렇게 완주의 미를 알게 된 후 지금 철인 3종 경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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