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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슬 May 21. 2021

1998 05 21

만 65세가 넘은 것이다

불과 100m 걷기가 어렵다. 아내랑 세브란스 병원에 8시 50분경 도착하였으나 예약이 아니라서 기다리다가 10시 39분쯤 의사와 상담하다. 예상보다 더 심하다면서 척추 전이증을 설명하면서 부득이 수술할 수밖에 없단다. 틀린 자리를 바로잡아 고정시키면 95% 이상 다리 통증이 없어진단다. 약도 안 주고 내주 중에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조처를 해서 연락해 주겠단다. 아내는 집으로 가고 나는 TAXI로 홍대입구에서 셔틀버스로 당산역으로 해서 전차를 이용 출근하다. 


T의 말을 따라 지난 6일부터 전철권을 증명을 보여주고 그냥 공짜로 타기 시작해서 이제는 퍽 익숙해졌다. 만 65세가 넘은 것이다. 표를 파는 쪽에서 하얀 노인 무임승차권을 내주면서도 증명 똑바로 보고 얼굴 유심히 쳐다본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오히려 좋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이보다 얼굴이 젊어 보인다고 상대가 봐준다는 엉뚱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1998년 5월 21일 맑음



23년 전 할아버지가 너무 귀엽다. 마치 술집 갔는데 민증 보여달라고 해서 신이 난 나처럼 기뻐하고 있다. 그럴 때 화를 내면 미성년, 미소를 감출 수 없으면 성년이라는데... 심지어 65세까지도 이어지는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다만 술집에서나 담배 살 때 민증 검사하는 에피소드가 지하철 무임승차권 유심히 쳐다보는 에피소드로 바뀔 뿐. 화 내면 중년, 기분 좋으면 노년.


남들이 무슨 이정표처럼 여긴다는 나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편이다. 스무 살이 됐을 때도, 서른 살이 됐을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스무 살인데 어떻다든가 서른 살까지 이러고 있다든가. 그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스무 살이 되면, 서른 살이 되면 하는 상상을 아예 안 해서 그런 것 같다. 선명한 비전이나 뚜렷한 야망에 취미가 없다. 지금도 여전히 한 치 앞을 계획할 의지 없이 오늘을 어떻게 살 지만 생각한다.


그렇지만 늙는 나이는 아무래도 다르다. 사회 제도의 경계를 떠나 신체의 임계점이 있다. 무임승차권이 익숙해졌을 때쯤, 할아버지의 허리뼈도 한계에 닿았다. 그림책에 나오는 조선시대 양반들 같았던 팔자걸음이 평생을 쌓여서.


나는 65세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괜히 견갑골을 뒤로 땡겨 본다. 그 때를 대비해 요즘 매일같이 복근 운동을 200개씩 하고 있다.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 '내가 나이에 비해 근육이 있어 보이나봐' 착각하는 노인이 되고 싶다. 복근아 잘 부탁해. 우리 65세까지 함께 하자.


2021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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