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통해 보내온 지구의 메시지
2026년은 한글날 제정 100돌이자 훈민정음 반포 580돌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말'과 그 말을 담는 '그릇'인 종이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종이는 '식물성 섬유를 원료로 하여 만든 얇은 물건'입니다. 주로 기록을 위해 쓰인다고 하지만, 작가로서 제가 마주하는 종이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식물의 생명력이 응축된 시간의 결정체입니다.
현대 국어 '종이'의 옛말인 '죠히' 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1446년 기록된 용례(죠히 爲紙)에서 확인할 수 있듯, 종이는 우리 민족의 기록 문화와 그 궤를 같이해 왔습니다. 600년 전의 '죠히'가 17세기의 '죵히'와 '죵희'를 거쳐, 19세기의 '조희'에 이르기까지 겪어온 음운의 변천사는 그 자체로 종이가 가진 유연하고도 질긴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조히의 정확한 표기를 위해 [우리말샘]의 자료를 이미지로 대신합니다)
ㅣ 변화 속에서 지켜온 식물성의 가치ㅣ
종이라는 단어는 세기마다 치열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16세기 이래로 'ㆍ'가 소실되는 언어적 격변기 속에서도 종이는 '죠희'와 '죵희'라는 이름을 거치며 자신의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심지어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는 '됴희'라는 과도 교정의 오해를 받는 시기도 있었으나, 이 모든 혼란을 뚫고 20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습니다.
단어의 역사가 이토록 역동적인 것은 종이라는 소재가 우리 삶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직조되어 왔음을 증명합니다. 닥나무와 같은 식물성 섬유를 물에 풀고, 건져내고, 말리는 과정은 언어가 정제되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식물의 몸에서 온 섬유질이 인간의 손길을 거쳐 기록의 바탕이 되듯, '조이'라는 단어 또한 민중의 입술을 거치며 가장 편안하고 단단한 '종이'라는 소리로 빚어진 것입니다.
종이는 때로 연약함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쉽게 구겨지고, 찢어지며, 소모되는 것이 종이의 숙명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쉬운 기능 이면에는 '비벼 꼬았을 때 결코 끊어지지 않는' 인내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신문지 한 장을 펴놓고 수많은 실험을 거치며 깨달은 것은 종이에도 엄연히 '결'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로와 세로, 어느 방향으로 찢느냐에 따라 매끄럽게 꼬이는 길이 있는가 하면, 손길이 닿기도 전에 맥없이 끊어져 버리는 방향도 있었습니다. 이 정직한 저항은 종이가 결국 나무에서 온
섬유질(Fiber)이며, 생명이었던 시절의 결을 몸속에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이 성질을 경이로운 지혜로 승화시켰습니다. 글씨를 쓴 뒤 소임을 다한 휴지(休紙)를 버리지 않고, 손바닥으로 비비고 꼬아, 시집가는 딸을 위한 종이 요강을 엮고, 종이 소반을 짰으며, 물건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박다위'를 만들었습니다.
종이나 삼노를 꼬아 만든 이 질긴 멜빵은 보부상의 무거운 짐짝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2018년 하동 박경리문학관 초대전에서 "이게 정말 종이냐"며 감탄하던 관람객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말도 안 되는 단단함'은 바로 식물이 가진 본연의 성품을 인간이 정성으로 엮어냈을 때 탄생하는 경지입니다.
저는 종이를 단순히 펼쳐진 면으로 보지 않습니다. 종이의 본질인 '식물성 섬유'에 집중하여, 이를 다시 가느다란 실로 만들고 직물로 짜 내려가는 '직조(Weaving)'의 과정에 도입합니다. 한지실은 연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씨실과 날실로 만나 엮일 때 그 어떤 인공 소재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식물성 소재인 종이로 직물을 짜는 행위는 15세기의 '죠히'를 오늘날의 예술로 다시 불러오는 의식과 같습니다. 종이 직물은 가공된 인공물이 아니라, 땅에서 온 식물의 인내심을 인간의 손길로 다시 배열하는 일입니다. 낱낱의 섬유가 서로를 붙들고 견디는 이 직조의 구조는,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변해온 종이의 역사적 의의와 맞닿아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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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동 박경리문학관 초대전 당시, 예상치 못한 귀한 손님이 전시장을 찾으셨습니다. 바로 정호승 시인님이셨습니다. 시인님은 한지와 대마가 얽혀 만들어낸 박다위와 종이 직물들을 한참이나 응시하셨습니다. 종이실 한 가닥 한 가닥에 깃든 작가의 고단한 노동과 그 안에 담긴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신 시인님은 "무척 감동받았다"는 말씀과 함께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의 고독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에도, 낱개의 섬유가 연대하여 이룬 종이의 단단한 '성품'이 깊은 울림을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인의 언어가 마음을 적시듯, 저의 종이 직조 또한 누군가의 삶에 질긴 위로가 되기를 바랐던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ㅣ보일링 지구, 지구가 보내온 숙제ㅣ
지금 우리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이 선언한 '지구 비등(Global Boiling)'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구가 단순히 따뜻해지는 단계를 넘어 끓어오르고 있다는 이 처절한 경고 앞에서, 저는 종이라는 소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다시 읽습니다.
어쩌면 지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종이라는 소재의 가치를 통해 인간에게 생존의 열쇠를 건네왔는지 모릅니다.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화려한 신소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제 몸을 내어주는 종이의 삶입니다.
종이는 나무에서 오고,
종이를 귀하게 쓰기 위해서는
다시 나무를 키워야 합니다.
이 지극히 당연한 순환의 논리는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온
가장 절박한 '순환 의지'라고 믿습니다.
나무가 종이가 되고, 그 종이가 다시 인간의 손에서 실이 되어 직물로 엮이는 과정은 파괴가 아닌 확장입니다. 낱개의 섬유가 연대하여 끊어지지 않는 박다위가 되듯, 우리도 지구에서 온 이 정직한 소재의 성품을 연구하고 그 결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끓어오르는 지구의 온도를 낮추고, 훼손된 자연의 무늬를 복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종이는 과거를 기록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습니다. 15세기의 '종이'가 600년의 시간을 이겨내고 우리 곁에 남았듯, 종이는 시대를 관통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식물성 섬유가 가진 유연함과 강인함, 그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그 정직한 마침표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일'의 모습입니다.
저는 오늘도 종이의 결을 만지며 지구의 안부를 묻습니다. 손끝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종이실의 긴장감은, 자연과 인간이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과도 같습니다.
종이는 지구에서 온 선물이며,
우리가 반드시 열어보아야 할
내일의 지도입니다.
이 질긴 종이의 결을 따라, 저는 오늘도 지구가 보내온 숙제를 묵묵히 엮어 내려갑니다. 아마 저의 이번 생은 끝나지 않는 종이 직물을 짜고 가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
참고 자료 및 용어 정의
박다위: 종이나 삼노를 꼬아서 길게 엮어 만든 멜빵. 짐짝을 걸어서 메는 데 쓴다. (표준국어대사전 발췌)
보일링 지구(Global Boiling): 2023년 7월 UN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사용한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