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그리고 업사이클링

종이 그 자체가 업사이클링이다.

by 종이소리


2020년 가을이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장악하고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지옥 같은 시절, 공모전 사이트도 한산한 시장처럼 조용할 때였다.

한 지자체 로터리회에서 업사이클링 공모전을 공지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업사이클링 공모전이 가장 많이 열리던 해가 그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업사이클링에 대한 모순에게

무릎을 꿇었던 나는,

별로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니어서

사이트를 막 벗어나려는데,

식탁테이블 위에 있는 택배 박스가

눈에 훅~ 하고 들어왔다.

"가만... 택배박스?"

몇 년 전 집에서 만들어 쓰던 코바늘 꽂이가 생각났다. 잘만하면 전기도 쓰지 않으면서 물도 많이 안 쓰는 마땅한 새활용,

업사이클링 과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였다.

그래서 바로 택배 박스를 열고 내용물을 뺀 다음 박스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버려지지 못할, 종이박스 업사이클링"에 담긴 '새활용'의 불편한 진실.


​브런치북 연재 제목은 "종이, 지구에서 온 내일"인데, 따로 연재 중인 '업사이클링, 무엇이 문제일까'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종이라는 물성을 소개하고 그 물성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업사이클링에 가장 많이 쓰이는 종이 새활용에 관해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연재에서는 2020년 업사이클링 공모전에 출품했던 [초대 2020]을 소개하며 그 작업 과정에서 발견한 영상물로서의 2차 저작물, [왜곡]을 함께 기록하기로 한다.


업사이클링과 조각: 왜곡에 대하여》를 통해,

현대의 업사이클링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함께,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의 본질적인 가치가 잘 전해지면 좋겠다.



1. 제작 과정과 물질적 왜곡


​작품 [초대 2020]은 폐기된 골판지 박스를 주재료로 하여 탄생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과정을 남깁니다.


​재료 준비: 폐골판지 박스를 2cm 간격으로 균일하게 재단하여, 좁고 긴 종이 바(bar) 형태로 만든다.

(■자녀가 어린 경우, 이 작업은 부모님이나 보호자가 대신해야 하는 과정이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결합 및 조형: 이 종이 바를 목공용 풀로 꼼꼼하게 이어 붙이며, 중심부부터 나선형으로 단단하게 돌돌 말아 원하는 크기가 될 때까지 말아 올린다.


말아 올리다 보면 상당히 재밌는 연출이 많이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웃는 일이 무척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골판지에 노출된 부분을 햇빛이나 조명에 대고 돌려보면 하루 종일 "빛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재밌는 장면은 유투브에

따로 올려두었으니 하단에 있는 링크를 통해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결과:

이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 일시적인 쓰레기에 불과했던 골판지는 그 내부의 파형(골)이 그대로 노출되는 독특하고 영속적인 무늬를 지닌 원형의 조각 작품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제작 행위는 폐기물의 존재 목적과 형태를 완전히 뒤바꾸는 물질적인 '왜곡(Distortion)' 과정이다.


2. 개념적 왜곡과 사회 비판

​작품의 부제인 "왜곡하는 것에 대하여(Think about the distorting)"는 단지 재료의 변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현시대의 업사이클링이 가진 개념적인 왜곡에 대한 한 개인의 비판적 선언이다.


​많은 이들이 행하는 업사이클링은 결국, "어차피 버려질 쓰레기를 예쁘게 포장하는 의미밖에 안 되는" 피상적인 행위에 머물러 있다.


근본적인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 채, 단지 '착한 일'이라는 이미지로 개념이 왜곡되어 소비자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모습이랄까.. 씁쓸하다.


나는 이 작품을 "버려지지 못할 보물"이라 강조했다. 재료는 버려진 것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날카로운 비판적 메시지와 엄청난 노동력의 가치 때문에 쉽사리 폐기될 수 없는, 역설적인 영속성을 표현했다.


3. 종이, 그 자체가 업사이클링이다


​그러나 나는, 이 비판적 작업의 재료로 쓰인 '종이'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금 강조하고자 한다.


종이는 그 자체로 자연에서 온, 가장 순환적인 업사이클링의 결과물이다.


​옛 선조들이 나무와 목화 같은 자연 소재를 활용하여 생필품을 만들어 쓴 것, 즉 목화가 면이 되고 옷이 되었던 것처럼, 나무에서 기원한 종이 역시 지구의 순환 고리 안에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업사이클링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연 유래 소재를 활용한 업사이클링은 자연으로 돌아갈 때 지구 환경에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종이 역시 그러한 친환경적인 순환의 이점을 지니고 있다.


[종이, 지구에서 온 내일]


​결국, 내가 폐골판지를 가지고 조각을 만든 행위는, 잠시 폐기물로 변질되었던 종이라는 재료를 그 본질, 즉 '자연에서 온 순환 가능한 소재'로 되돌려 놓으려는 예술적 시도이다.


​이것이 바로 제 브런치북 연재 제목인 《종이, 지구에서 온 내일》이 의미하는 뜻이다.


우리는 재료의 포장된 미학이 아닌, 재료가 본래 왔던 '지구의 순환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안에 해를 끼치지 않는 진정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나의 작품이 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어느 가슴에게 폐기물, 예술, 그리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종이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함께 토론할 시간도 기대해 보자.


택배박스를 잘라 종이 막대, 즉 바(bar)를 만들고 돌돌 감아올린 후 골판지의 무늬가 보이는 부분에 우리 한지, 순지를 풀로 발라 조명으로 연출했다.


아쉽게도 조명이 마땅한 것이 없어서 휴대폰 손전등으로 대체한 결과이다.


그런데 나름 운치 있는 무늬가 나왔고 조각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결론은 [왜곡]이란 영상작품으로 승화된 실험이었다. 우리 한지, 순지 덕분이다.


종이, 그 무한한 가치는 [지구에서 보낸 우리들의 내일] 즉, 지구 온난화, 끓는 지구에 대한 답을, '지구가 미리 보내왔었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다.


[종이, 그리고 나무]가

그 답이 아닐까.


왜곡, 업사이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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