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0
‘모려(牡蠣)’. 굴 조가비를 뜻하는 한의학 용어입니다. 익숙한 우리말을 두고 굳이 이 한자를 꺼내 든 이유는 이름이 가진 ‘가치’ 때문입니다. ‘껍데기’나 ‘조가비’라 부를 땐 버려진 쓸모를 고민하게 되지만, 약재인 ‘모려’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귀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가 됩니다.
옛 선조들은 이 모려를 곱게 빻아 화장품으로 썼고, 한의학에서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을 보하는 치료제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귀한 자원은 극심한 악취를 내뿜는 ‘처리 곤란한 쓰레기’로 전락해 우리 곁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바닷가 곁에 살며 자연 자원을 활용한 공예를 해온 제게 모려는 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는 숙제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처리 비용과 현실적인 한계 앞에 작가로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늘 미안했습니다.
다행히 최근 화력발전소의 탈황 원료로 활용 가능하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식당과 가정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패각을 제도적으로 수거하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자연 자원 업사이클링이라는 이름 앞에 수차례 실패하며 주눅 들기도 했지만, 저는 여전히 이 ‘요원한 숙제’를 놓지 못합니다.
"모려(牡蠣)"
굴 껍데기는 90% 이상이 탄산칼슘(CaCO_3)으로 이루어져 있어 석회석 대체재로 가치가 높습니다.
현대제철 & 삼성중공업: 굴 껍데기를 석회석 대신 제철소 소결 공정이나 선박 탈황 장치에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 중입니다.
관련 기사: 굴 껍데기, 제철소 석회석 대체 자원으로 재탄생
블루오션(Blue Ocean): 굴 패각을 활용해 친환경 건축 자재(타일, 벽돌)를 만드는 소셜 벤처입니다. 악취 제거 기술을 통해 실내 인테리어 자재로도 활용합니다.
"해당 기술과 제품의 시각적 자료를 공유하고 싶지만,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제가 직접 촬영하지 않은 이미지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업사이클링 자원의 가치를 혁신적으로 보여주는 해당 사례는 아래 링크를 통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관련 보도 기사 (이미지가 잘 정리된 기사): 굴 껍데기의 변신, 친환경 건축자재로 재탄생 (YTN 사이언스)
프로젝트 링크: Billion Oyster Project (영문)
https://www.billionoysterproject.org/
업사이클링 작가이자 컨설턴트로서 마주했던 어촌 현장은 이상과 괴리가 큰 전쟁터였습니다. 숭고한 자원 순환을 이야기하는 저의 제안에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소였습니다.
"하루하루 생계가 급급한데, 무슨 쓰레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나!"
주민들에게 패각은 아름다운 소재가 아니라, 당장 내 집 앞마당의 악취이자 치워야 할 짐이었습니다. 창작자가 바라보는 ‘미래 가치’와 배출자가 느끼는 ‘현재의 고통’ 사이의 간극은 거센 파도처럼 높았습니다. 현실적인 유인책 없이 가치만을 내세웠던 저의 시도는 ‘한가로운 소리’로 치부되었고, 저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제도적 뒷받침의 부재: 과거 굴 껍데기는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되어 재활용이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2022년 ‘수산부산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수산부산물법)이 시행되면서 비로소 자원화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나, 가정과 식당에서 발생하는 소량 패각의 체계적 수거 시스템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거대한 담론과 산업화는 국가와 기업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업사이클링의 본질은 쓰레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데 있습니다. 산업화가 수만 개의 벽돌을 찍어내는 것이라면, 작가가 제안하는 업사이클링은 쓰레기를 자원으로 인식하게 하는 ‘문화적 씨앗’입니다.
비록 당장 어촌의 문제를 해결하는 산업적 대안이 되지 못하더라도, 내 곁의 작은 조각을 닦아 일상의 오브제로 만드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그 작은 인식의 변화가 모일 때, "쓰레기에 돈을 왜 쓰느냐"는 차가운 시선을 "어떻게 되살릴까"라는 따뜻한 관심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했던 2019년의 기억을 뒤로하고, 이제는 산업화라는 무거운 강박 대신 누구나 일상에서 만질 수 있는 ‘모려의 기적’을 응원합니다.
기업 사례: 블루오션코리아 (굴 패각 활용 친환경 건축 자재 개발)
주의사항: 본문에 언급된 외부 기업 사례의 상세 이미지는 저작권 준수를 위해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니므로 위 참고 링크로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