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부모 상담이 있었다.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이 '한글 교육'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주변 부모들은 아이들 한글 교육을 위해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학습지나 과외 같은 교습 선생님의 도움은 물론이고, 태블릿과 세이펜 같은 학습 도구들도 갖춰 놓은 집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아이 한글 교육 얘기만 나오면 대부분 씁쓸한 표정을 짓는 걸로 봐서는 기대한 만큼 성과가 크지는 않은 듯 보였다.
신기하게도 내 아들 한울이는 한글을 빨리 깨쳤다. 3살에 글자를 읽었고, 4살에 글자를 썼다. 받침이나 겹모음 있는 글자를 읽고 쓰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 막 5살이 된 지금은 성인과 비슷한 속도로 책을 혼자 읽고, 완성된 문장으로 그림일기를 쓴다. 이 즈음에는 다 이렇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보통 5-6살부터 한글 배우기를 시작한다는 얘길 듣고는 놀랐다. '한울이한테 한글을 따로 가르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얘는 어떻게 한글을 배운 거지?'라는 의문과 함께.
한울이는 글자를 통째로 외웠던 것 같다. 보통 ㄱ,ㄴ,ㄷ부터 차근차근 한글을 배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었다. 한울이가 42개월 되었을 무렵, 평상시와 같이 한울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일어줬다. 갑자기 한울이는 "아빠! 책에 있는 대로 읽어줘야지!"라며 내가 말하는 내용과 책에 적힌 글자가 다르다는 걸 지적했다. 당연히 한울이가 한글을 못 읽는 줄 알고 있던 나는 당시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그 뒤로도 계속된 한울이의 지적에 한동안 책을 읽어줄 때에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책에 적힌 글자 그대로 읽어줘야 했다. 아마 그때 한울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한글을 배웠던 것 같다. 내 말소리와 글자모양을 비교해 가면서 말이다.
뒤늦게나마 부모로서 한울이가 한글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5가지 방법을 정리했다. 최근 어린이집 부모 상담 이후로 주변에서 한글 교육 방법에 관한 문의가 많아졌다. 한울이가 또래보다 일찍 한글을 읽고 쓴다는 소문이 퍼진 여파였다. 막상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제대로 답변을 못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라는 하나마나한 답변 밖에 해줄 말이 없었다.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부모로서 우리의 행동이 한울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분석을 할 필요는 있었다. 앞으로 마주할 더 많은 일들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1.'영상 보여주기' 보다는 '끊임없이 대화하기'
식당에 가면 아이들에게 영상을 틀어주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아이의 관심을 돌려서 얌전히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시간만큼 가족에 평화는 유지될 수 있지만 아이와 부모 간 대화는 단절될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 부부는 집에서 놀이를 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등 상황에서 아이의 관심을 돌리려고 영상을 보여준 적은 없다. 한울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울이와 대화로 연결된 상태를 유지해 왔다.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상황 여건 상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애초에 아내도 나도 영상을 거의 보지 않는 사람이고, 집에 TV도 없이 지내 왔다. 게다가 아내는 전형적인 수다쟁이에, 나는 전형적인 설명쟁이로 둘 다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울이는 자연스럽게 엄마아빠와 대화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을 테고, 덕분에 한글에 대해서 쉽게 익숙해지게 되었을 것 같다.
2. '세이펜 쥐어주기' 보다는 '책 직접 읽어주기'
많은 아이들이 세이펜이라는 책 읽어주는 도구를 사용해 책을 읽는다고 알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참 편리한 도구이다. 그렇지만 녹음된 파일이 재생되는 세이펜의 특성상 내용 전달은 가능하지만 아이들과 교감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 부부는 (특히 아내는) 한울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20권이든 30권이든 직접 읽어줬다. 감정표현이 풍부한 아내가 읽어주는 책은 옆에서 내가 들어도 참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아내는 책 읽어주는 동안 한울이의 표정과 몸짓을 살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에 설명을 덧붙여 주거나, 한울이가 질문하는 내용에 답변을 해주기도 했다. 공연으로 치자면 무대와 관객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엄마아빠가 교감하면 아이 입장에서도 책 읽기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아마 이런 경험들이 쌓인 덕분에 한울이도 책 속 이야기는 물론, 말소리와, 글자 모양 하나하나까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3. '먼저 알려주기' 보다는 '질문에 답해주기'
대개 부모들은 먼저 나서서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싶어 한다. 한글 교육을 시킨다며 자료를 준비하고, 책상에 앉히고, 교재 내용에 따라 차근차근 아이들이 배우도록 지도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정석적인 교육법이라 생각하지만 나도 그런 교육을 받았던 입장에서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다.
반면 나 같은 경우는 한울이가 가진 질문들을 듣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려 했다. 한울이는 한글을 익히면서 "아빠~ 이 글씨는 뭐라고 읽어?" "아빠~ '웠'은 어떻게 쓰더라?" 같은 질문들을 했다. 그때는 딱 질문에 대한 답만 알려줬다. 한울이가 궁금해할 때 더 많은 걸 알려주고 싶은 욕심도 생겼었다. 그렇지만 필요한 건 나중에 다시 질문할 것이라고 믿으며 질문할 때까지 기다렸다. 보통 자기가 궁금한 질문에 답을 얻었을 때에는 더 쉽게 이해하고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울이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방식이 한글 교육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4. '숙제 검사하기' 보다는 '뿌듯함 느끼게 해 주기'
간혹 아이를 가르치는 부모들을 관찰해 보면 숙제 검사하듯이 아이를 대하는 경우를 보곤 했다. 몇 개 중에 몇 개를 맞췄는지, 틀린 것은 왜 틀렸는지, 정답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식이다. 대개 이런 부모들은 얼마나 잘했는지 그 결과에 따라서 아이를 칭찬해 주는 데에 익숙한 것 같았다.
반면 우리 부부는 한울이가 만든 결과보다는 그 결과를 내기 위한 마음을 잘 헤아려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한울이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스스로 해낸 걸 자랑하거나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설명하기 좋아했다. 혼자서 책을 읽다가도 신기한 내용이 있으면 흥분한 목소리로 달려와서 설명해 주거나, 책을 읽다가 종이에 혼자 글자를 썼다며 가져와 보여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치 미지의 생명체를 처음 발견한 것 마냥 놀라운 마음으로 반응해 줬다. 덧붙여 그렇게 혼자서 책을 읽고 글씨를 쓰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설령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굳이 바로잡아 주진 않았다. 한울이는 스스로 해냈다는 뿌듯함에 엄마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런 뿌듯함 덕분에 한울이가 스스로 한글 읽기와 쓰기를 더 배우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5. '영어 공부' 보다는 '한글 하나에 집중하기'
요즘은 부모들이 유치원 때부터 영어 배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아니 어릴수록 더 빨리 가르치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어유치원 보내기 위해 어린이집을 떠난 한울이 친구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아이에게 일부러 영어 단어를 섞어 말하는 부모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나는 한울이에게 가급적 영어를 알려주지 않으려 했다. 한글을 충분히 배운 뒤에 영어를 공부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글을 배운다는 것은 표면적인 글자를 아는 것을 넘어, 한글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한 단어로 정의하고,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더 나아가 어떤 개념을 세부적으로 나누거나 통합하는 등 고차원적인 사고 활동이 가능하도록 말이다. 이 같은 사고 체계를 형성하려면 하나의 언어를 중심으로 오랜 숙련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너무 이른 시기에 영어 교육은 오히려 한울이의 사고 체계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한울이는 한글을 기반으로 더 많은 표현과 단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과정에 더 집중해 왔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 부부는 한울이가 스스로 한글을 배워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던 것 같다. 게다가 이러한 방식이 한울이에게는 적합했던 것 같다.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울이에게 그 흔한 학습지나 학원 하나 보내지 않았다. 아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주변 아이들이 이것저것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편에는 우리가 아이 교육에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부모인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줬더니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 필요한 걸 배웠다. 그것도 상당히 빠르게.
누군가 다비드 조각상을 만든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그런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미켈란젤로는 "이미 대리석 안에 그 조각상이 있었다. 나는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분야는 다르지만 한울이를 키우면서 미켈란젤로가 어떤 마음으로 이 같은 답을 했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한울이도 자기한테 필요한 자질을 이미 다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로서 내 역할은 그 자질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것을 걷어주는 것이면 충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