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차라떼샷추가 Nov 07. 2024

우울함을 유쾌함으로 바꾸는 그림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

자식보다 부모가 더 좋아하게 되는 매력을 가진


아들보다 아빠가 더 좋아하게 된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



지금까지 아들한테 읽어 준 그림책만

1,000권은 족히 넘을 것 같다.

그중에 내가 꼽은 최고는 단연

'요시타케 신스케'의 작품들이다.

내가 읽고 싶어서 책을 살 정도였으니...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을 읽고 나면

기분 좋으면서도 짠한 여운이 남는다.

그의 작품 속에 묘사된 어린아이들의

엉뚱한 행동과 상상을 보다 보면

코미디 영화를 보듯 깔깔 웃음이 나지만,

책을 덮고 돌아서면 '죽음'과 '외로움' 같은 

중요한 질문에 빠져들게 되기도 한다.


아들에게 몇 권의 책을 읽어준 후에 

작가 본인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디서 이런 유쾌함이 나온단 말인가?'

'그는 어떤 삶을 꿈꾸고 있나?' 등등

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자

인터뷰와 취재 기사를 뒤졌다.





어린아이들의 진지한 고민에서

묻어 나오는 '피식' 웃음 포인트가 특징



요시타케 신스케는 잘 짜인 스토리로

감동을 주는 작가는 아니다.

그보다는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발칙한 상상력으로 허를 찔러

독자들의 웃음을 이끌어 낸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엉뚱한 행동과 상상,

아이와 부모의 일상적인 대화 맥락에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를 잘 살려낸다.



일례로『오줌이 찔끔』의 주인공은

팬티에 오줌을 찔끔 지리는 어린이다.

그 일로 엄마에게 혼나곤 한다.

하루는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

팬티에 오줌 자국이 생긴 걸 발견하고는

오줌을 말리기 위해 바깥으로 산책을 나선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은 오줌을 찔끔하지 않는데,

왜 자신은 오줌을 찔끔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멀리 바다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서

그 고민은 절정에 이른다.

"하늘은 이렇게 파란데. 나는 오줌이 찔끔 새고."

"바다는 이렇게 넓은데. 나는 오줌이 찔끔 새고."


이처럼 요시타케 신스케의 작품을 보면

어른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오줌이 찔끔』내용 중





혼나는 게 두려워 꿈도 목표도

갖지 않았던 소심한 아이



요시타케 신스케는 다소 늦은 40살에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10여 개 국에서 600만 부 이상 판매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인기를 얻은 이유는

심각하지만 웃기고 공감되는 장면을 그려내는

작가 자신이 가진 독특한 관점 덕분이다.


통상 유명 작가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취향과 믿음을

발전시켜 왔을 것 같지만,

요시타케 신스케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향의 영향으로

자신의 취향을 이해하고 드러내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한 잡지사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1]

"혼나는 게 두려워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따랐던 아이"

"하기 싫은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동시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던 아이"

이러한 성향 때문에 그는 항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부족한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그러다 보니 학창 시절부터

꿈이나 목표를 갖기는커녕

자기 취향을 드러내기조차 두려워했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작업실





'취향을 드러내도 괜찮다'라는

안도감에서 피어난 작가의 개성



다행히도 극내향형인 작가에게도

자신의 취향과 관점을 드러낼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었다.

요시타케 신스케가 미술대학에서 공부하던

1990년대 말, 당시 일본 미술계에는

'야베노 겐지'라는 현대미술가가 인기였다.

그는 '야베노 겐지'의 작품이

특정 주제를 다루었던 이전 흐름과는 달리

작가 개인 취향에 가까워 보였다고 느꼈다. [2]

개인 취향대로 작품을 만들었음에도

사람들이 좋아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당시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덕분에 '자기 취향을 드러내도 괜찮다'라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야베노 겐지의 1991년 초창지 활동 작품들


이후 요시타케 신스케는 자신의 취향이 담긴,

이상하지만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작품들을 주변 동료들에게

간간히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야베노 겐지'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작가 자신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자신의 관점을 드러낼 용기를 얻었다.



그렇지만 단단히 뿌리내린 내성적 성향 때문에

첫 그림책을 내기까지는 15년이 넘게 걸렸다.

작가는 대학 졸업 후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틈틈이 삽화 등 간단한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그런데 하루는 이를 본 직장 동료들이

"바보 같다"라며 무시하는 바람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만 이때부터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재빨리 그림을 숨길 수 있도록 

'작은 종이'에 '작은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오히려 요시타케 신스케만의

독특한 그림체를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다.



역설적이게도 요시타케 신스케가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계기 또한

주변 동료의 작은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작가의 그림을 보게 된 동료가

"귀엽네!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줘 봐"

라며 응원하는 말을 해줬는데,

그 말에 요시타케 신스케는 용기를 얻어

첫 삽화집을 만들게 되었다.

이후 삽화집을 좋게 본 그림책 편집자가

그림책을 그려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렇게 첫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첫 작품인 『이게 과연 사과일까?』일본어판 본문





스스로 우울해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세상의 흥미로움을 발굴



국내 일부 매체들에서 요시타케 신스케를

'천재적인 작가'라며 소개를 했는데,

적합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를 천재라고 표현한 사람들은

아마도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결과물만 보고 상투적인 표현을 골랐을 것이다.

요시타케 신스케 작품의 특징인

'피식-' 웃음을 주는 장면들은

작가 자신이 사람들의 행동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포착한 노력의 결과이다.

어느 날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아니다.


작가는 항상 노트와 펜을 가지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흥미로운 장면들을 기록한다.

이 습관은 20년 이상 이어져 왔다.

그동안 기록한 노트만 해도 73권 이상이다.

작가는 일본국영방송과 진행한 세미나*에서

작가 노트의 일부를 공개한 적이 있다.

그 노트에는 개똥을 피하는 두 명의 여학생,

길에서 만난 이상한 머리스타일을 한 사람,

나리타 공항 식당에서 만난

하네다라는 이름의 종업원 같은

'피식-'하고 웃을 수 있는

일상에서 발견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다.


요시타케 신스케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그림 노트



요시타케 신스케가 이처럼 꾸준히

세상의 흥미로운 장면을 발굴하는 이유는

사실 작가 자신의 우울한 기질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작가는 자신이 가진 우울한 기질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뉴스를 보고도

하루 종일 우울감을 느끼곤 한다.

어떤 날에는 땅에 있는 바위를 보고도

세상의 종말을 상상할 정도라고 한다.

이럴 때에는 우울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흥미로운 장면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면서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기운을 내도록 격려한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한 인터뷰에서

"예술은 자신을 격려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우울함에 맞설 용기를 주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작가



이번 기회에 작가에 대해 찾아보려고

여러 자료들을 뒤졌지만, 유명세에 비해

공개된 자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마도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성향 때문에

요시타케 신스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쉽진 않을 것이다.

작품 홍보 활동도 포함해서.


그렇지만 2022년과 2024년에는

인터뷰 기사와 공개 세미나 등을

상당히 활발하게 진행한 것을 발견했다.

인터뷰와 세미나 주제를 살펴보고는

작가의 인간적인 따스함에

한층 더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먼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작가는

집 안에서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한

재미난 놀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4]

프로젝트명은 '놀라운 숙제'였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온라인 영상을 통해

'자기만의 비밀을 그림으로 그려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버려라!'라는

숙제를 아이들에게 내주었다.

3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비밀임에도)

요시타케 신스케에게 회신을 보내 줄 만큼,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게도 비밀로 하는

자기만의 생각을 그린다'라는 상황에 대해

상당한 흥미와 즐거움을 느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집 안에서 힘들어할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같이 있는 어른들에게는 용기를 주고자 했다.


NHK Japan Prize 2022 세미나 중 영상 캡처


또한 요시타케 신스케는 2024년 3월,

자살 예방 NPO와 함께 웹사이트

'여기 숨으세요'(카쿠레가)를 개설했다.

심한 우울증으로 도움을 받고 싶지만

도와달라는 말 조차 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웹사이트이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아바타가 되어

커다란 나무 안에 마련된 은신처 곳곳을

게임하듯이 돌아다닐 수 있다.

은신처는 9개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게임을 하거나, 단편소설을 읽는 등

깊은 고민 없이 시간을 보내도록 해놨다.

또한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다른 아바타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는 자신처럼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자기 비난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장치이다.

작가는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들이

돌아올 수 없는 저 세상으로 가기보다는

잠시 여기 숨어 있다가 돌아오면 좋겠다"라며

웹사이트를 개설한 이유를 설명했다. [5]

웹사이트는 개설 6개월도 되지 않아

페이지뷰 1,000만 건을 돌파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우울함을 품어 주고 있다.


카쿠레가 홈페이지





우울함을 유쾌함으로 만드는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

그에게 배우는 삶의 태도 3가지



한때는 어른들에게 혼나는 게 무서워

꿈도 목표도 갖지 못했던 어린아이가,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쾌함을 전해 주는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성장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우울한 사람들에게도

맞설 용기와 안식처를 제공하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요시타케 신스케에 대해 알아보면서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 측면에서

얻게 된 교훈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자기만의 취향을 이해하고

이를 용기 있게 드러내기

요시타케 신스케는 내성적인 성향 탓에

자신의 흥미와 관점을 뒤늦게 이해하고

이를 드러내는 데에 두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선배 미술가와 동료들의 응원에

자기 관점을 조금씩 드러낼 용기를 가졌고,

지금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급변하는 트렌드를 쫓아가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기만의 취향으로도 가치를 만들 수 있다.


둘째,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기

요시타케 신스케는 20년 넘게

세상의 흥미로운 장면들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수집해 왔다.

이 같은 꾸준함과 노력이 있었기에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한

독특한 장면들을 포착해 낼 수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다 보면

어떤 대상일지라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면을

발견하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무엇인가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면

쉽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 보자.

그러다 보면 남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따스한

위로의 말과 용기를 전하기

요시타케 신스케는 작품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와 활동을 통해

자신과 같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고 있다.

작가는 좌절해 있는 사람들에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라는 말을 건넨다.

통상 사용하는 '다 거야'라는 말은

사실 불가능한 거짓말에 가깝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라는 말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지지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우울한 소식이 가득하지만

우리 삶까지 우울해질 필요는 없다.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다 보면

우울함이 짓누르는 상황을 함께 버티며

조금씩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작가 소개 - 요시타케 신스케

1973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쓰쿠바대학 대학원 예술연구과 종합조형코스를 수료했다. 사소한 일상 모습을 독특한 각도로 포착해 낸 스케치집과 어린이책 삽화 및 표지 그림 등 다방면에 걸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첫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로 제6회 MOE 그림책방 대상과 제61회 산케이아동출판문화상 미술상을 받았다. 『이유가 있어요』로 제8회 MOE 그림책방 대상, 『벗지 말걸 그랬어』로 볼로냐 라가치상 특별상, 『이게 정말 천국일까?』로 제51회 신풍상을 받는 등 여러 작품으로 수많은 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그동안 그리고 쓴 책으로 『결국 못 하고 끝난 일』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더우면 벗으면 되지』『도망치고, 찾고』 『심심해 심심해』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이게 정말 나일까?』 『있으려나 서점』 등이 있다.
요시타케 신스케






참고 자료 (인터뷰 & 세미나)

[1] Sendenkaigi (2018.4)

[2] 季刊『進路指導』

[3] LIFEBook (2019.1)

[4] NHK (2022.11)

[5] NNN News (2024.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