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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시간을 낭비하는 리더 (2편)

권력에 취한 리더

by 녹차라떼샷추가

인사관리의 핵심이

'인정투쟁'이라고?


운이 좋게도 인사 전문가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어요. 언젠가는 경영자가 되고 싶었기에, 인사 전문가를 만나면 인사관리의 핵심이 무엇인지 묻곤 했어요. '인사가 만사'라고 하던데 그 핵심이 궁금했거든요. 질문했던 분 중에는 임직원 20만 명 조직을 관리하는 최고인사책임자(CHO)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무려 30년 경력의 베테랑이었죠. 그분에게 들은 답변을 여러분에게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인사관리의 핵심은 인정투쟁이야." 그분의 답변이었어요. 인정투쟁이라는 표현이 생소할 수 있지만 직관적으로 떠오른 그 내용이 맞아요. 부하 직원들이 상사의 인정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도록 만든다는 말이에요. 상사에게 평가 권한을 몰아주게 되면 직원들이 상사의 말에 충성하게 된다고 설명하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적은 수의 리더로도 많은 수의 직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했어요. 설득력 있더라고요. 뜬구름 잡는 교과서 속 이론이 아니라 조직 관리의 현실을 꿰뚫는 통찰이라고 느꼈거든요.




상사에 충성하는

똑똑한 직원들


대기업에서 만난 동료들은 앞에서 언급한 인사관리의 핵심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던 것 같아요. 특히 조직에서 인정받는 동료일수록 상사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예를 들어 상사가 말도 안 되는 의견을 내더라도 반대하는 법이 없고, 상사가 시키는 일이면 식당 예약 같이 사소한 일이라도 최우선으로 진행하는 모습 말이에요. 일부 동료들은 상사가 어딜 가든 쫓아다니기까지 하더라고요. 상사가 커피 마시거나, 담배 피우거나, 술 마시거나 정말 어딜 가든지 말이에요. 아마 그렇게 상사와 딱 달라붙어 있으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줬을 거예요. 다른 동료들이 정치질한다며 손가락질해도 거뜬히 무시하면서요.


상사에 충성했던 동료들의 행동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상사한테 인정을 받으면 빠른 승진 기회와 엄청난 보너스처럼 명확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잖아요. 직장인한테 승진과 연봉보다 중요한 게 있겠어요? 동료가 뒤에서 아무리 욕하더라도 결국 평가권을 가진 사람은 상사니까요. 상사한테 잘하는 게 훨씬 이득이죠.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회사에서 동료들한테 잘해봐야 이득이 될 건 별로 없잖아요. 동료들과 정신적 유대감 정도는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일이 줄거나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에요.




충성경의 부작용,

회사 자원 낭비


인정투쟁은 동료를 협력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요. 어떻게든 다른 동료보다 돋보여야 상사의 인정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이 같은 경쟁 구도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욱 치열해져요. 승진의 보상은 더 커지는 반면 자리는 훨씬 줄어들게 되니까요. 어느 순간부터는 몇 년을 동고동락한 동료 사이라도 서로를 원수처럼 대하는 관계가 되어 버리기도 해요.


이제야 밝히지만 저는 인사관리의 핵심이 인정투쟁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오랜 기간 곱씹어 보며 저만의 경영 원칙으로 받아들여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조직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거든요. 인정투쟁이 직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리더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점에는 동의해요. 그렇지만 회사 자원 활용 측면에서는 심각한 비효율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회사라는 조직이 발명된 목적 자체가 여러 부서와 개인이 유기체처럼 얽혀서 공동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잖아요. 인정투쟁이 유도하는 직원 간 충성 경쟁은 오히려 협력을 방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례 하나를 들어 볼게요. 한 부서에 A 부장과 B 부장이 있었어요. 둘은 입사 동기였어요. 평가 시즌이 다가오면서 내년에 A와 B 중에 한 명은 임원으로 승진할 것 같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부서장인 C 전무가 노골적으로 A와 B를 경쟁시키려고 분위기를 잡고 있었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A 부장은 회사 차원의 중요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되었어요. 성공시키기만 하면 엄청난 실적이 될 프로젝트였죠. 마침 B 부장이 유사한 프로젝트를 이전에 수행한 경험이 있었어요. 만약 B 부장이 A 부장을 도와준다면 프로젝트는 어렵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A 부장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승진 경쟁에서 위기감을 느낀 B 부장은 온갖 사유를 들며 도움 요청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켰어요. 어쩔 수 없이 A 부장은 팀원들과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로 인해 프로젝트 진행은 상당히 더뎌지게 되었어요. 그러자 B 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C 전무에게 가서 A 부장을 깎아내리기 시작하더라고요. "A 부장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할 겁니다. 그러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제게 맡겨 주세요"라고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B 부장은 회사 성과를 인질로 삼아서 승진 경쟁의 도구로 사용하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제가 봐도 어처구니가 없었죠. 결국 A 부장과 B 부장 모두 C 전무에게 찾아와 평생 충성을 맹세할 테니 자신을 한 번만 도와달라고 매달리게 되더라고요. 아마 이와 유사한 상황들이 많은 조직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을 거예요.




가장 큰 문제는

권력에 취한 리더


위 사례에서 가장 비난받아야 마땅한 사람은 C 전무예요. 직원들을 과도한 경쟁으로 몰아넣어 회사의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 장본인이니까요. 이기적으로 행동한 B 부장 특별히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자기 이익을 벗어나서 조직과 공동체를 위해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건 성인군자에게나 기대할 법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이기적인 건 A 부장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만약 A 부장이 B 부장의 도움을 얻어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더라도, A 부장은 B 부장이 도와주지 않았어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임원으로 승진해야 하니까요.


리더들이 이런 부작용을 모르진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인정투쟁의 구도로 몰아넣는 이면에는 권력욕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인정투쟁의 구도는 직원들을 상사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요. 상사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짜릿하겠어요. 본인이 무슨 말을 해도 직원들이 맞장구를 쳐주잖아요. 회사 다닐 기분이 나겠죠.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느낄 것 같고요. 그러다가 본질이 흐려지게 되는 거죠. 회사 전체 성과를 올리는 건 뒷전이 되고, 자기가 누렸던 권력을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는 방향으로 말이에요. 제가 대표인 회사에서 회사 자원으로 권력 놀이하는 리더가 있다면 아무리 일을 잘하더라도 그냥 두고 보기 어려울 것 같네요.


리더는 회사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 중 하나일 뿐이에요.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에요. 직원들에게 충성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급에 맞는 의전을 기대할 필요도 없고요. 다른 직원들이 그렇듯 리더도 자기 역할을 하면 되는 거예요. 직원들이 업무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업무의 틀을 만들어주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면서요. 그리고 회사와 동료에게 더 많이 기여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보상을 주고, 반대로 회사 성과를 인질로 삼아 돋보이려는 직원에게는 과감한 인사조치를 취하고요. 이런 것들이 리더에게 필요한 역할이라 생각해요.




충성경쟁할 시간에

후딱 퇴근합시다


문득 10년 전에 신입사원 교육받았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수 천 명의 똑똑한 신입사원들 모아놓고 가장 먼저 가르친 내용이 "직장 생활 예절"이었어요. 임원과 자동차를 같이 타게 되면 어느 위치에 앉아야 하는지, 임원실에 용무가 있어서 들어갈 때에는 노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내용들이요. 교육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상사와 임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방법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본격적으로 충성경쟁을 시키기 위한 사전 준비 같은 느낌이네요. 지금도 이런 교육을 하려나요? 이런 걸 배운다고 회사에 별로 도움 될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회사에서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이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각자의 자리에서 업무 상 시간 낭비 요소를 발견하고 하나씩 바꿔나가기를 응원할게요. 적게 일하고 돈은 더 많이 벌고 싶지 않나요? 그리고 후딱 퇴근해서 삶의 아름다움도 만끽해야죠. 우리 그렇게 조금씩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룬 회사, 그리고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 보자고요!



다음 주에는 '조직의 시간을 낭비하는 리더' 시리즈 3편으로 찾아뵐게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상사는 왕? (제작: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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