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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지 Dec 19. 2020

본가만큼 자취방이 편해졌다

1인 가구의 다주택(?) 이야기

한 달 만에 본가에 들렀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 도착했는데, 얼마나 걸렸을지 궁금해 출발 전에 타임워치를 켜 두었습니다. 도어 투 도어로 딱 2시간이 걸렸어요. 이걸 8년 동안 매일 했다는 게 새삼스러워졌습니다. 집에 도착해 엄마가 차려주신 집밥을 먹었습니다. 메뉴는 프라이팬에 바삭히 구운 가자미와 엄마표 김치찌개였습니다. 생선구이는 1인 가구에게 일종의 특식 같은 존재라 평소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이때까지는 본가가 제 진짜 집이고,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 푹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녁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뭔가 불편했어요. 자취방에 있는 베개는 폭신한 솜 베개이고, 본가의 베개는 플라스틱 충전재로 채워진 약간 딱딱한 베개인데 이 차이점이 가장 불편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독립 시작하고 첫 저녁에 딱 반대의 상황이 있었다는 겁니다. 독립 초반에는 남의 집에 온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잠자리도 편치 않았습니다. 베개도 본가에서 쓰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어서 베개를 주먹으로 퍽퍽 치면서 솜이 한쪽으로 모이게 한 뒤 단단한 상태로 만들어 베고 누웠습니다. 본가의 딱딱한 베개처럼 만들고 싶어서요. 그렇게 개운한 맛 없는 수면으로 평일을 보내고, 마침내 주말이 되어 본가에 내려가 10시간 이상을 푹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찌뿌둥했어요. 중간에 몇 번 깨기도 했습니다.


이제 너 아니면 잠을 못자.


본가에 살 때도 식사시간에만 거실로 나오고, 대부분의 시간은 방에만 있었던 터라 이번에도 역시 방에만 있었습니다. 원래 같았으면 집에 온 기념으로 가족끼리 둘러앉아 식사를 했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혹시 몰라 가족과의 겸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방에만 있다 보니 할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누워서 영화 보고, 핸드폰 하고, 잠깐 자고. 예전 같았으면 평일에 대한 보상으로 허리가 아플 정도로 침대 위에 누워 뒹굴거렸겠지만, 이제는 누워있어도 밀린 집안일이 떠오르고 혼자서 고요히 즐기는 독서시간도 그리워졌습니다. 이때 느꼈습니다. 가족이 있는 본가도 제 집이고, 저의 일상이 있는 이곳도 제 집이라는 것을요. 비록 남의 집이지만 다주택자가 된 기분이 이런 걸까요. (잠시 눈물 좀 닦겠...)


우스갯소리로 '이젠 자취방이 더 편한 것 같아'라고 말하니 엄마는 서운하다고 했습니다. 방에만 있어도 좋으니 집에 왔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씀이 신경 쓰여 내려가긴 했습니다만, 제가 있건 없건 부모님은 부모님 나름대로 한 사람의 성인이자 (자식으로부터 독립된) 개인으로서 성실히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1인 가구로서 낯선 타지에서 무던(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처럼, 부모님 또한 같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좀 서운할 정도로요. 당분간은 서로의 안녕을 위해 또다시 거리를 두어야 하겠지요. 얼른 이 사태가 마무리되어 저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원 없이 만나고, 원 없이 대화를 나누며, 원 없이 함께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곧 다가올 그날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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