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버터>
저는 오늘도 노가리 클럽, 제 덕질 메이트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외칩니다. “아, 이거 증말 맛있는데 한 번만 잡숴봐.” 근데요. 내 입맛에 맞는 걸 남의 입에 집어넣기란 꽤 어려운 일이에요. 심지어 나 때문에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어느 날 최애가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오는 것만큼이나 기적 같은 일이죠.
소설 <버터>에서는 그런 기적이 가장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펼쳐집니다. 주간지 기자 ‘리카’가 남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가지이 마나코’를 만나 버터의 맛에 제대로 영업 당하는 이야기거든요. 가지이 마나코는 세 남성에게 거액의 돈을 받아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이제는 그들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을 독점 인터뷰하고자 면회를 신청한 리카에게 가지이는 미션을 주죠. 명란 버터 파스타, 버터 시오라멘, 가지이의 방식대로 만든 버터 간장밥 등 자신이 평소 좋아했던 음식을 대신 먹어달라고요.
가지이는 프랑스 산 에쉬레 버터를 고집하고,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된 요리를 즐기는 ‘탐닉적 미식가’입니다. 반면 리카는 식사를 때우는 것에 익숙해요. 버터와 마가린도 구별하지 못했죠. 그런 그녀가 가지이의 지시에 따라 난생처음 버터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고 만들기 시작합니다. 혀에 녹아드는 진한 풍미가 익숙해질 때쯤 리카는 깨닫습니다. 나를 먹이고 기쁘게 하기 위해 시간과 돈, 정성을 더한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에 대해서요. 그냥 씹어 삼키는 삶 말고 때때로 음미하는 시간을 누릴 필요와 권리가 있다는 걸요.
가지이의 욕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록 그녀의 곁에 있었던 남자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더욱 명징해집니다. 가지이의 풍만한 몸과 외모를 조롱하며 ‘꽃뱀답지 않다’고 떠드는 세상을 비웃으며 그녀는 이렇게 말하거든요. 여자가 여신으로 군림할 수 있는 방법은 “남자를 용서하고, 감싸고, 긍정하고, 안심시키고, 절대 능가하지 않는 것”이라고요. 가지이는 가부장 사회가 자신에게 원하는 역할, 요리 잘 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철저하게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취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남자들은 삶을 음미할 수 있었고요.
이 소설의 탁월한 점은 가지이를 호떡처럼 납작하게 눌러 희대의 악녀로 그리지도 않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구구절절 늘어놓지도 않는 균형 감각입니다. 이 건조한 시각이 빌런을 끝까지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힘이 되더군요. 달거나 짜거나 마라맛이거나. 확실한 맛에 열광하는 세상이지만, 결국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요리는 여러 가지 맛이 오묘하게 섞여 상상의 지평을 넓히는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버터>는 그런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잡숴 봐요! 후회하지 않으실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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