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나는 살면서 참 다양한 구덩이에 빠진다. 그것도 같은 구덩이, 같은 지점에서 자주.
문제는 빠지고 난 후 자꾸 내 탓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니가 그러면 그렇지'
'또 실수를 했네'
'어쩜 매번 똑같은 실수를 하냐'
'넌 그래서 안 돼'
등등
오늘 코칭을 받으며 내 고민 주제는 '앞이 안 보이는 이 깊은 안개 같은 무기력증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였다. 내가 번아웃이라는 구덩이에 빠진지는 올해로 네 번째.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은 이젠 뭐 구덩이라기엔 너무 커다란 공간 처럼 자주 드나들어 문과 길이 생겨버린 정도? 민망하긴 했지만, 대나무 숲에 고해성사 하는 기분으로 내 속마음을 그냥 털어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코치님께 내 현재 상태를 이실직고 하다 보니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상.상.초.월!
왜 그럴때 있잖은가,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입 밖으로 그 말이 나가면서 머릿속으론 '세상에 나 왜 이런 말 하고 있어?' 당황하게 되는 순간. 오늘은 그 순간들이 참 수시로 오갔다.
"지금 저에겐 두 가지 감정이 느껴지네요. 처음엔 무기력증이 심한 상태라고 하셨는데, 그 다음엔 하고 싶은 걸 못해서 답답하다고 하셨어요. 지금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
"맞아요, 저는 하고 싶은게 사실 너무 많은데 아이들도 어리고, 남편도 집에서 쉬고 있고, 생계형 강사/코치 이다 보니 들어오는 일 거절도 못하고 정작 제가 시도해보고 싶은 일은 못하고 생각만 하다 실천 못한 나에 대한 비난은 거세지고, 사회생활 시작을 대행사에서 하다보니 자꾸 '을'의 저자세가 뿌리 박혀서 다 들어주고 있나봐요. 사실은 에너지도 없고 그 일을 해낼 힘도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대행사를 퇴사한지 벌써 11년이 넘었고, 내가 일하는 업계에서도 11년 이상 뼈가 굵은 상담사이자 코치인데 왜 나는 자꾸 나를 '을'로 보고 있는가? 이 부분을 코칭 대화 속에서 깨닫고 깜짝 놀랐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의 위치. "갑, 을, 병, 정 중 을도 아니고 '정' 이었어요~" 라는 말을 왜 난 우스갯소리처럼 반복하는가? 실은 내 마인드 셋팅 자체가 이미 나를 너무 내어주는, 아니 헌신하는 위치로 포지셔닝 되어 있었던 건 아닌가.
남들에게는 늘 최고,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정작 내가 일평생 함께 가야할 내 자신에게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못했다. 나는 애초에 왜 커리어코치로서 일하고 싶었는가? 시작할 즈음에는 다음과 같은 소명이 있었다.
'현실에서 꿈으로 어떻게 가는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처음 브랜딩도 '라이프 모티베이터(Life Motivator) 즉, 살아가는데 동기부여를 해 주는 사람' 이었다. 그 후 11년, 처음 가졌던 내 모토처럼 나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현실을 실질적으로 이어주었다.
정작, 나의 꿈과 현실은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작금의 상황.
나의 니즈보다 타인의 니즈에 우선적으로 맞춰주느라 내가 아플 때, 힘들 때 내 자신이 나에게 절실히 보내오는 시그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철저히 무시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힘을 내요, 도전해보세요, 시도해보세요, 실패는 좋은 겁니다!" 라고 외쳤으면서 나 자신에게는 '조금 더 참아, 아직 안 돼, 왜 벌써 힘이 빠졌어, 더 달려야지!' 이런 채찍질만 해댔다.
Win Win 이라는 표현은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서로 혜택이 주어져야 맞아떨어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나에게 Lose 라는 타이틀을, 남에게는 Win 이라는 타이틀을 거저 쥐어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죽하면 나랑친한(나를 아끼는) 사람 입에서 "더 이상 이용당하면 안 돼! 이젠 서브 말고 메인으로 서야지~ 언제까지 퍼주기만 할거야!" 라는 직접적인 조언까지 들었을까.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이라는 표현 뒤엔
'저 사람은 이용하기 쉬운 사람, 무조건 내 뜻대로 따라올 사람,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다 받아줄 사람' 이라는 시선이 담겨있다.
나는 이제 나를 헐값에 팔아넘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의 머리를 수많은 지식과 지혜로 채워넣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액수만큼,
내가 밤을 새가며 의뢰받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
내가 참 사나운 꼴을 당하고, 다 퍼주고, 난감한 상황에 처했어도 버텨온 필드에서의 내공만큼,
나는 나의 가치대로, 정당하게 일할 것이다.
사실 나는 무기력한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내 스스로가 나를 옥죄고, 다른 이들이 나를 마음껏 활용하도록 뒀던 대가로 받은 에너지 소진 상태였으므로...앞으론 나도 위하고, 상대도 동등하게 위하는 Win Win 방향으로 힘차게 선회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조건 Yes 보단 일단 STOP 하고,
이게 정말 나도 그도 위하는 일인가 단 5분만이라도 생각해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꿔봐야겠다.
은희, 할 수 있겠지? 널 헐값에 팔지 말아~너는 훌륭한 강의 교안 하나, 획기적인 아이디어 하나, 근사해보이는 SNS의 좋아요 갯수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존재야!
(책 '마음가면' p.88 쪽 표현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