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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Oct 20. 2019

그 날, 그의 날

Music: 이하이 - 한숨

Essay#22


그 날을 기억한다. 

그 날은 4주 기초 군사훈련이 끝난 날이었다. 공익근무요원이다 보니 훈련소 퇴소와 함께 바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 날은 그저 내겐 단순한 통과의례 같은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훈련받아 고생 좀 했다고 훈련소 입구 앞은 마중 나온 가족들로 북적였다. 하긴 훈련병 모두가 어쨌거나 스무 살 초반의 얼굴들이었다. 앳되고 어린 혈기왕성했던 아들들. 그런 아들들을 데리러 입구 앞 주차장은 왁자지껄 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로 나를 반겨주는 낯익은 얼굴 하나 없었다. 올 때도 갈 때도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예상은 했지만 비교되니 서운했다. 한 훈련병 동기 녀석의 배려로 해운대 버스터미널까지만 차를 얻어 탔다. 그동안 차 안에서 반가움과 정겨움이 교차하는 대화의 흐름을 미묘한 눈빛으로 담으며 씁쓸히 웃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가는 버스는 경쾌하게 내달렸다. 토요일 늦은 오후라 그런 걸까 버스 안은 열 명도 채 안 되는 인원만이 자리를 듬성듬성 채웠다. 버스 타기 전 했던 엄마와의 통화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무뚝뚝하긴 해도 엄마답지 않았달까. 퇴소 며칠 전 꿨던 꿈이 절로 떠올려졌다. 그 꿈에서 엄마는 한없이 울고 있었고 아버지는 화를 내며 집을 부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큰일이라도 난 걸까. 에이 설마. 눈을 감았다. 괜한 망상이라며 나를 책망하면서. 버스는 어느덧 울산 시가지로 들어섰다.


초인종을 눌렀다. '엄마!'

엄마가 나왔다. '왔나~'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수고했다.'

외할머니가 방에 계셨다. '주야.'

집에 들어서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차려주신 저녁 상 앞에서 정신을 놓았다. 날 보시는 세 분의 눈빛이 어땠는지도 모른 채. 배가 어느 정도 차고 잠시 꺼놨던 눈치도 돌아오자 방 안의 공기가 다르다는 걸 그제야 감지했다. 생각해보니 외할머니가 왜 지금 딸네 집에 와 계신 걸까.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혼자 먹는 저녁도 이상했다. 상을 물리고 안방에 네 사람이 앉았다. 켜져 있던 TV가 꺼졌다. 엄마가 입을 열었다. 


- 야야... 큰외삼촌 돌아가셨다.


무슨 말이지? 그 찰나 감정은 아직 인지하지 못했다. 조금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 이노무 자슥아, 들어가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전화해주지. 니한테 알리려고 해도 훈련소 있는 놈한테 어떻게 연락할 수가 있나.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그 뒤에 무어라 말씀하셨는지 들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큰외삼촌이 왜? 그분이 왜? 도대체 왜?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의문이 울렸다. 납득할 수 없는 죽음에 생각이 멈췄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리고 뭘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비되었다. 몸도, 입도, 귀도, 그리고 마음까지도.


이듬해 그 날이 돌아왔다. 


형이 향을 올리자 제사가 시작된다. 

어둠 속 촛불 아래 차려진 상 앞에 건장한 아들들이 번갈아 술잔을 올린다.

향 위로 술잔이 돌 때마다 아들들은 담담히 두 번 엎드린다. 

개가 짖고 애기가 칭얼대는 소리만이 들린다.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작은 한숨들.

아들들의 차례가 끝나자 여인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울음이 터졌다. 그 공간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슬픔이 터졌다. 나 자신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이.



Introduction of Song
이하이, 한숨(Breathe) M/V

내가 아는 누군가가 세상을 스스로 떠날 때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톡으로 전달된 소식은 농담같이 들렸고, 초록색 검색 페이지 우측 상단에 뜬 그녀의 이름을 누르자 농담같던 소식은 현실이 되었다. 한숨이 나왔다. 내뱉은 숨이 채 가라앉기 전에 이미 기분은 내려앉았다. 착찹한 마음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자리를 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의 죽음에 흔들리지마라.'

또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잘 살았잖아. 왜 죽어? 나도 안죽는데.' 혹은 '죽을 일도 많다.'

그 이상의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십 년도 더 흐른 일이라 해도 아픔이 잊힐 리가 없다. 세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 본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일. 자살은 당사자에게는 지독한 상처나 아픔에 견디지 못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그것도 그에게 가졌던 애정만큼. 


큰외삼촌이 선택하신 죽음은 외가 전체에 큰 상흔으로 남았다. 알아주지 못했던 마음, 괜찮겠지하며 지나쳤던 무신경, 그리고 지켜주지 못했단 자책에 모두가 충격이었다. 그는 외가의 가장 웃어른이자 가장 높은 직책을 가졌고 가장 명예로웠으며 가장 현명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몰랐다. 그가 가장 외로운 사람이란 것을. 그가 떠난 후 모든 것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없이도 잘 돌아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다. 나도 몰랐다. 그 분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 분을 바라보았는지를.


설리가 떠난 그 날 저녁 클럽 에반스를 찾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이 멍한 마음에 음악이 그냥 듣고 싶었고 기왕이었으면 그게 재즈였음 싶었다. 그녀를 좋아한 적도 싫어한 적도 없었고 그녀의 가십에 딱히 흥미를 보인적도 없었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린 한 생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괜히 미안했다. 여느때처럼 앉던 자리에 앉았다. 월요일치고 꽤 많은 이들 앞에서 연주자들은 음악을 풍겨냈다. 쓸데없이 경쾌하게. 첫 곡을 마치자 늘 그랬듯 피아니스트 윤석철씨가 멘트를 했다. 


- 오늘 많은 일이 있었네요. 제가 지금 멍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왠지 위안이 됐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나만 청승맞게 구는게 아니구나. 낮은 한숨을 내뱉고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었다. 




'한숨'.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이하이의 곡 소화력에 놀랬고 작사/작곡을 종현이 했다는 것이 더 놀랬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지만 얘(종현) 우울증이라도 있는거 아닐까'.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 같은 거지만 천성적으로 밝고 건강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영역이다. 그래서 방치되기 쉬우며 심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쉬운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맨정신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때가 내게도 있었다. 우울감에 한 번 사로잡히면 도저히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든데 다행히도 그때마다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옆에 누군가 아무말없이 있어주기만 해도 그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이 곡은 우울한 내면에서 울리는 노래다. 단순한 말들이지만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글들. 그는 그렇게 이 곡을 통해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어루만져주려 한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그가 끝내 삶의 끝을 선택했다는게 지금도 안타깝다. 아무튼 내게 가장 큰 분이셨던 큰외삼촌처럼 스스로 생을 마친 이들을 떠오르면 괜히 이 곡을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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