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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Jan 20. 2019

츤데레 양아치 형

두 번째 Pop 이야기 : Why Not?

Pop Memory #002

형은 양아치였다. 공익 근무지 첫 배치일 날부터 첫인상 참 강렬했다. 간만에 온 신입 둘을 환영하려 아침 9시 조례에 모든 공익들이 모였다. 40대 중반의 인상 좋고 배두둑한 공무원 아저씨가 웃으며 우릴 보다가 갑자기 이맛살을 찌뿌렸다.


"임마 또 안왔나? 야 어데 있노?"


제일 나이 많고 왕고였던 형이 반대쪽으로 고개 돌려 귀찮음을 감추고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야, 왔나? ... 신참 왔다. 인사는 해야지. 얼릉 나온나. (고개를 돌리며)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이 새끼는 하여간 맨날 ..."


이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무소 입구로 신경질 가득한 인상을 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귀 덮은 긴 머리에 갈색 가죽 자켓을 걸친 마른 몸, 키는 한 183 정도 되었나. 안경을 썼지만 잘못하면 베일 듯한 눈매가 뚜렷이 선명해 형의 욱하는 성격을 가릴 순 없었다. 형은 나와 내 동기를 본체만체 공무원 아재의 잔소리를 피해 열의 끝으로 우릴 지나갔는데, 소주 지린내에 담배 쩐내가 났다. 조례가 파하고 선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형이 말했다.


"X발. 마, 서로 좋게 있다 조용히 나가자. (큰 형을 보며) 햄, 내 술때매 속 안좋아서 먼저 들어가 잘게요."



정말 첫인상이 딱 이랬다. 그리고 담배 피며 날 꼬라보는 건 덤.           (처음엔 삥 뜯기는 줄)


형은 어지간히 말썽 부렸다. 이미 우리가 오기도 전부터 수차례 무단결근했었다. 대부분은 전날 마신 술로 심한 숙취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들어온 후에도 더했으면 더했지 별 반 다를 바 없었다. 거기다 시크하다 못해 반항적인 말투 탓에 공무원들 사이에선 이미 기피대상이었다. 게다가 공무원 고인물 나부랭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에 욱하고 욕을 랩 하듯 나불대니 말 다했다. 나이 지긋한 꼰대들이 뒷자리에서 이 놈을 무단이탈 처리해야 하니 마니 얘기를 하길 수차례였고, 그때마다 사람 좋은 큰 형과 마음 약한 공익 담당 아재가 유야무야 무마해 양쪽을 달랬다. 그래서 형은 종종 외근 나갔다. 바깥으로 물품이나 우편물 보낼 일 있거나 누군가 출장 갈 일 있으면 형을 보냈다. 그래서 나머지 공익들은 사무소 주차장에 그레이스 관용차가 주차되었는지를 보고 형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외근 나가면서도 형의 입에선 그놈의 'X발', 'X같네'가 끊이지 않았지만, 외근을 핑계로 자기 시간을 챙길 수 있어 더는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형은 맨날 내게 시비 걸었다. 양아치 같은 건 자기 자신이면서도 범생이인 날 보고 하는 짓이 양아치 같다고 '아치'라고 불렀다. 그럼 나도 지지 않고 '양형'이라 대꾸했다. 그리고 담배 한 타임에 가만히 있다가도 날 쳐다보면 지치지도 않고 같은 패턴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치야, 니 내 싫재? 싫어하재? 맞재?"

"내가요? 왜요? 뭐하러요, 귀찮게."

"안다 임마. 니같은 놈들이 낼 디게 싫어해."

"내 같은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요?"

"공부 많이 한 놈들. 공부 많이 해서 서울로 대학 간 놈들."


내가 어처구니없어 웃고 있으면 형은 늘 그랬다.


"내 싫어하지 마라. 난 니 좋다, 임마."

"아따~ 안 싫어한다니까 이 형 또 이카네."


내가 그렇게 대꾸하면 형은 맛있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아 내뱉으며 흩어지는 자신의 한숨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형은 이따금 외근 나갈 때 날 강제로 데리고 나갔다. 워낙 소문이 안 좋으니 외근에 사람 필요하다고 날 데려가면 공무원 형, 누나들은 별소리 않고 보내줬다. 잡일에 민원 전화를 도맡아 받아주는 내가 없으면 업무에 민원에 전화까지 시달려야 하니 불편했겠지만, 형과 불편한 상황을 전개하기는 더 싫었을 거다.


"아치야, 할 일 없재? 외근가자. 나온나."

"내까지 필요해요?"

"(성질내며)그라믄 내가 쓰잘데기 없이 니캉 외근 가자 하겠나. 시끄럽고 어여 주차장으로 나온나."

"(옆에 앉은 누나에게)누나. 저 좀 다녀올게요."

"(못내)쟈는 말을 해도 꼭 저라노. 니가 맞춰주느라 힘들겠다. 잘 다녀온나."


그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 나가면 그 길로 그 날 남은 하루는 종친 셈이었다. 형은 어렵지도 않은 일들을 재빨리 끝내버렸다. 일이라고 해봤자 서류나 물품 전달 혹은 물품 구매 업무가 다였고 어쩌다 어려우면 쓸데없이 힘쓰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일이 빨리 마무리되면 형은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느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마, 니도 한숨 자라.'라며 퉁명스레 말하고는 뒷좌석에 몸을 구겨 넣어 잤다.


그러던 언제인지도 기억 안나는 어느 하루, 형은 웬일로 전날 술을 안 마셔 그날따라 쌩쌩했다. 그리고 그 날 외근 업무는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공공기관에 물품과 공문만 전달하는 단순한 일이었다. 일이 끝나고 차에 오르자 형이 말했다.


"아치야, 여까지 온 김에 감포나 가서 회나 한 사발 하자. 어떻노? 괘안나? 오늘도 과외 가나?"

"전 괜찮죠. 저녁에 수업 없어요."

"경대야, 니는?"

"나야 햄이 가자고 하면 가지. 당연한 거 아니가. 말라 묻노?"

"올 땐 경대 니가 운전하래이. 먼 말인지 알재?"

"와. 난 술 못 묵게 하고 야랑 한잔 할라꼬? 햄 넘하네."

"니캉은 그만 묵자. 인자 지겹따. 아치랑도 회 한사바리에 소주 한 잔 해야지. 새꺄."

"내가 언제 술 마신대? 난 허락한 적 없는데."

"새끼. 응가이 비싼 척하네. 내가 사끄마, 임마. 내 나갈 날 얼마 안 남았다. 걍 가자."


감포로 가는 길에 이어지는 연안 풍경


감포로 가는 길은 푸르렀다. 무룡 터널을 지나자 평탄하게 내뻗은 31번 국도로 차가 경쾌하게 내리 달렸다. 차의 우측과 좌측 창 너머로 서로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듯했다. 좌측 창 너머에는 부드러운 곡선과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황금빛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우측 차창 밖으로 하늘과 바다가 수평선을 경계로 서로 다른 채도의 푸른 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와 밀당하는 연안은 보이지 않는 저 너머로 구불구불하게 이어 진채 우리들 옆을 유유히 지나쳤다. 형이 말했다.


"아치야, 귀 심심타. 신나는 음악 아무거나 함 틀어봐라."


나는 가지고 있던 네모난 아이리버 MP3 player를 꺼내 들었고, 곡 하나를 선택했다. 스피커에서 기타가 같은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나직이 내뱉더니 몇 마디 후부터 djing으로 그럴싸한 효과음이 투여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적당한 빠르기의 비트로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한다. 그러자 형이 반응했다.


"오~ 아치. 니 이런 거도 듣나? 괜찮은데? 이거 노래 제목 머꼬?"


나는 고개를 숙여 MP3 player의 LED Display에 뜬 뮤지션과 노래 제목을 알려줬다. 형은 배운 놈들은 역시 다른 걸(?) 듣는다며 형답게 실 쪼개며 얘기했고, 감포로 가는 동안 차는 이 뮤지션의 음악으로 가득 찼다.


형의 언행은 매우 거칠었지만, 정작 형은 속 깊은 사람이었다. 소주 한 잔에 꽤나 화려했던 십 대 이야기를 나는 형의 입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누구나 힘들었던 시기, IMF 전후 사이의 간극에 형은 끝내 자퇴를 선택했었고 그로 인해 누구보다 일찍 사회로 나왔다. 이른 사회의 경험에 현실에 대한 좌절과 체념으로 막연히 대학 생활을 부러워했었다. 또 이른 사회의 경험으로 내가 일한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공익 복무 중에도 형은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서 형은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만 했다.

그래서 형은 좌절감에 늦은 밤에 술을 들이켰다.

그래서 형은 쓸데없는 부당한 지시에 대들었다.

그래서 형은 돈이 안 되는 공익 업무 따위로 시간 낭비하는 게 싫었다.


그래도 형은 양아치 같은 말투와 달리 마음 약한 츤데레였다. 표현이 거칠 뿐.



Song Introduction


<Why Not?>의 뮤직비디오 (야시시해서 좋아한 건 아니지만...)


어떤 일에도 반항적이고 퉁명스러웠던 형과 이 곡의 제목이 너무 잘 어울려서였을까. 나는 지금도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면 '양형'이 생각나는 이 노래는 <Why not?>이란 노래였다. 일본 시부야케이의 대표 뮤지션 Fantastic Plastic Machine의 대표곡 중 하나로 2002년 싱글로 발매되었다. 이름도 참 괴상한 Fantastic Plastic Machine(이하 FPM)이 우리나라에 서서히 알려진 계기는 각종 방송 매체에서 소개되면서부터다. 대표적으로 MBC FM 유희열의 올댓뮤직의 오프닝 시그널로 사용된 <Philter>와 KB카드 CF 중 보아편의 BGM으로 사용되는 <Dance Dance Dance Dance>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 곡의 제목과 뮤지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  


FPM은 사실 유희열의 '토이'와 같은 솔로 프로젝트 명이며 뮤지션의 본명은 다나카 도모유키이다. 장르가 시부야케이답게 음악 스타일이 대중적인 편이며 일렉트로니카, 라운지,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를 버무렸다. 그러다 보니 시부야케이라고 해도 뮤지션마다 스타일도 완전 다른 경우도 있고, 장르로 구분하기도 상당히 모호하다.  FPM의 곡들이 CF, 광고, OST 등에 많이 사용된 편이라 뮤지션을 모르는 경우는 있어도 어디서 들어봤는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200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꽤나 얻어 방한도 꽤 자주 했다.


내가 기억하는 보아의 최전성기 시절의 KB카드 CF. BGM은 <Dance Dance Dance Dance>


예쁘다 한!지!민! *___*


내가 이 뮤지션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 건 KTF 매직N CF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한지민이 너무 예뻐서 인상 깊었고 다음에는 아기자기한 BGM이 좋아 노래 제목을 찾아봤고 나중에는 곡 때문에 Fantastic Plastic Machine의 팬이 되어 버렸다. 이 CF에서 나온 곡은 <Pura Saudade>으로 보사노바 풍의 일렉트로닉 음악이다. 장르는 정확히 나도 콕 찍어 얘기하기 힘들다ㅠㅜ 이 곡이 담긴 앨범이 바로 FPM의 1집 <The Fantastic Plastic Machine>으로 무려 22년 전에 나왔는데 아직도 세련된 스타일이다. 그 밖에도 꽤나 알려진 곡들이 많지만, 유튜브에 많으니 한번 찾아볼 것을 권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곡 <Pura Saudade>와 <On a chair>를 하단에 추가하였다.


<Pura Saudade>

표지가 예쁜 1집 <The Fantastic Plastic Machine>


<On a 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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