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썸머 돌 지나고 쓴 글인데 리뷰한다고 해놓고 두 달이 지나도록 발행을 안 눌렀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이렇게나 정신이 없다.
거의 일 년 반 전에 쓴 글(나는 내 삶에서 얼마나 성장했나)이 내 사적인 영역의 마지막 기록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왜 글을 쓰지 못했는가 하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지.
책 한 권을 온전히 읽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처럼, 글쓰기도 글감이 떠오르고 거기에 살이 덧붙어 한 편의 글이 되기까지는 그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할 여유(몸과 마음의)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글쓰기가 다 뭐람.. 그 시간에 잠이나 좀 더 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작은 사람을 키우는 엄마들은 안다. 아기가 어릴수록 잠도 편히 못 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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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동안 임신-출산-양육의 삼단 콤보를 맛보았다.
여담이지만 LG전자 시절의 내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기가 출생한 직후 카톡 프로필과 페북에 올렸던 아기 사진을 보고는 정말 놀랐다고 했다. (당시엔 소식을 전하는 목적으로만 올렸고, 그 이후로는 아기 사진을 공개된 공간에 올리지 않고 있다. 물론 지금이 훠어어어어얼씬 예쁨)
백미진이 아기 엄마라고??????????
백미진은 백미진으로 일만 하고 살 줄 알았는데!!!!
결혼도 안 할 줄 알았는데 임신에 출산에 아기라니???????????????
뭐 이런 반응.
뭐 그러한 반응이 그다지 놀랍지만은 않았던 건 스스로도 얼마 전까지 애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해서 살다 보면 아이는 낳을 수도 있겠다' 정도의 가벼운 생각은 해봤지만, 꽤 오랫동안 비혼의 마음가짐으로 살았기에 결혼 자체를 생각 안 하고 살았던 터였다. 그래서 스스로도 내 인생에 언젠가 생길 수도 있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때부터 오은영 선생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근래엔 강형욱 훈련사가 나오는 프로그램들도 즐겨본다. 얼핏 보면 아이와 개를 훈육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엔 부모와 보호자에게 그들의 아이에게 적절한 양육 방법을 가이드해 주는 프로그램들이고, 내 일에도 도움 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들이 나중에 내가 아이를 키울 때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아이가 돌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베이비스, 눈부신 첫 해라는 다큐멘터리이다.
나는 이걸 임신 초기부터 썸머 출산 후 백일정도까지 틈틈이 보았다.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큐 초반에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졌고 그에 대하여 실험에 기반한 과학적인 근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시점에 그 메시지가 유독 강하게 박힌 이유가 따로 있다.
회사에서 개인과 조직을 코칭하는 일을 하다 보니 결국엔 회사 차원의 평가나 인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쪽으로 귀결된다. 하여 관련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임신 중에 사람의 역량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때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최동석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독일식 경영의 인사론 강의를 듣게 됐다. 그때 공적인 일을 할 때 필요한 역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공적인 어떤 자리(예를 들면 대통령, 회사의 임원, 팀장 등)에 맞는 사람을 뽑는 방법(어떤 종류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일들을 하려면 어떤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등 연결 짓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게 동작하는 이유는 독일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 역량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 씨앗을 아이가 자라는 동안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잘 관찰하고 찾아내서 얼마나 잘 발현시키느냐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 갖추는 역량의 종류가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이 뭐든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는 미국식 경영학과의 차이점이다. (우리나라 자기 계발서 또한 대체로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는 내용이 많은데, 미국식을 따라서 그렇다)
평소 독일식 교육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역량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이 더 와닿았고, 베이비스에서 던진 메시지-"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다"-가 더 머릿속에 박혔다.
사람이 살면서 중요한 것들이 참 많겠고 중요도에 대한 가치관은 모두 다를 테지만, 내 경우엔 내 옆에 있는 친구들보다 조금 더 공부를 잘하는 게 뭐가 그리 중한가 싶다. 인간은 본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태어났고, 부모가 자식 하나만 낳아 애지중지 잘 키워도 결국엔 사회로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내던져진 사회라는 곳은 모두가 스타플레이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곳도 아니며 누군가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이 꺼리지만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일도 하며 살아간다.
내 아이는 자라는 동안 사회가 그런 곳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며, 이 아이는 어떤 역량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을지 매 순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봐주려고 노력한다.
아이의 월령이 높아져 더 잘 움직이게 될수록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신기하고,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14개월에 들어선 지금은 거의 반나절 단위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업데이트된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놀랍다.
1-1. 우리 집 식탁은 2.2미터 우드슬랩이다. 한쪽은 아일랜드를 등지고 벤치가 놓여있고 반대쪽엔 등받이가 있는 의자 세 개가 놓여있다. 그동안 아기는 의자 세 개 중 한 좌석에 식탁에 고정하는 아기 의자에 앉아 식사를 했는데, 얼마 전부터 갑자기 바닥에서 돌아다니다가 의자 위로 올라오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하루이틀은 시도를 했으나 올라오지 못했다. 그런데 팔을 이리 붙잡고 저리 붙잡으며 각을 재더니 어느 날 갑자기 두 다리를 끌어올려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닌가? 신이 나서는 의자 위에 서서 춤을 추고 있었다.
1-2. 그 광경을 본 나는 기함했다. '저기서 떨어지면 어쩌지?'하는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서 아이가 올라가면 내려놓고, 또 올라가면 또 내려놓길 반복했다. "여기 올라가면 떨어져, 위험해"라고 말하며 또 내려놨다. 아이는 지치지 않고 또 올라갔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이번엔 나도 좀 다른 방법을 썼다. 내려놓는 대신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썸머, 의자에서 내려올 때는 일단 앉아서 뒤로 돌아가지고 다리부터 내려와야 해. 앞으로 내려오면 꿍-해서 다쳐."
아이는 내 말을 이해했는지 내 눈앞에서 뒤로 내려오는 걸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의 불안함도 조금은 가셨다.
1-3. 그다음 날엔 아이가 의자에 올라가서 다시 식탁 위로 올라갔다. 식탁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 뛰어다녔다. 나는 "썸머, 위험해. 여긴 더 높아. 떨어지면 큰일 나." 하며 바닥에 내려놨다. 하지만 아이는 의자에 올라가서 식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의자-식탁 코스를 계속 밟고 있었다. 마치 의자에 올라가는건 미션 클리어했다는 듯 자신만만해 보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식탁 위에 아이가 호기심을 가질만한 것을 올려두지 않는 일이었다. 식탁 위에 올라가 있던 것들을 모조리 치웠다.
1-3. 그다음 날엔 아이가 벤치에 올라갔다. 유아 의자를 설치하느라 등받이 의자를 하나 빼서 식탁의 짧은 면쪽에 두었더니 그 의자를 자주 타고 올랐는데, 그 바로 옆에 벤치의 한쪽 끝으로 올라와 벤치 위를 뛰어다녔다. 그래서 벤치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내가 앉았더니 도도도도 뛰어가서 반대편 벤치 끝으로 가서는 타고 올라왔다. 와... 집착과 끈기가 대단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면 정말 인정. 그래서 벤치 위에 길게 누워버렸다 ㅋㅋㅋ 양쪽 모두 못 올라온다는 걸 알게 되니 울기 시작했다.
1-4. 하지만 집에 어른이 둘 이상 있을 때라면 몰라도 아이와 둘만 있을 때는 계속 누워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그래서 벤치 반대쪽을 막을 수 있는 가림막을 주문하고는 그게 오기 전까지 임시로 막으려고 책상 상판에 고정시켜 쓰던 커다란 스탠드를 가져와서 벤치 끝에 달아두었다. 그러면 다른 자주 쓰는 쪽엔 어른이 앉아있으면 못 올라오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썸머는 식탁 밑으로 들어와서 벤치 중간으로 올라왔다. 어떻게든 올라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다.
1-5. 이쯤 되니 계속 막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지금 한참 호기심이 왕성할 때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궁금할 때인데, 올라와서 떨어지는 게 무서워 모조리 치우고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식탁 근처에서 놀고 싶어 한다면 내가 좀 더 아이에게 집중하면서 떨어지기 전에 받아줄 수 있으면 되고, 그게 싫다면 놀이터에 간다든지, 산책을 나가 아이의 호기심을 풀어낼 수 있게 해 주면 되지 않을까.
타고나길 몹시 예민하다 보니 안전과 관련해서는 타협을 안 하는 편이다.
불안할만한 요소를 눈앞에 안 둔다고 하는 쪽이 더 맞겠다.
거의 일 년간 안팎의 문제 때문에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때문에 지난 일 년간 아이가 내 눈앞에서 보여주는 성장 과정은 몹시 흥미로웠지만, 그저 반짝이는 눈으로만 봐주질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어떤 광경이 훗날 유발할 수 있는 더 큰 위험을 떠올리며 나의 불안을 키워내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썸머 덕분에 불안이 나아졌다.
위에 영상까지 첨부했던 저런 행동을 포함하여 돌 무렵부터 아이와 소통이 되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안전하게 내려오라는 나의 말에 반응하여 뒤로 내려오는 아이를 보며 내가 매 순간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깨닫고 나니 다른 사람의 행동에서 찾아내던 불안함의 요인들도 '저게 영영 지속되진 않겠지'라고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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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멘탈이 안 좋을 때면 상담을 받으러 간다. 전문가를 찾아가는 게 최고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상담을 갔던 날 위에 쓴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는 자랄수록 엄마에게 더 불안한 존재라고, 그런데 나 스스로의 불안을 컨트롤하며 아이도 성장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고 아이에게 신뢰를 주는 모습이 매우 놀랍다고 했다. 보통은 불안하면 그 불안을 생각하면서 더 불안해지게 마련인데, 예민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불안 감지 센서를 좀 낮추고 컨트롤하는 것은 참 어려운 걸 하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매 순간 못하는 일 투성이었는데 오랜만에 잘한다는 얘기도 듣고, 예전의 안정적이었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스스로 대견했다.
나는 나의 예민함때문에 산후우울증을 호되게 겪었지만, 나의 예민함덕분에 아이가 보여주는 작은 행동조차 잡아냈고 그 사이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불안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단점을 장점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강점이었는데, 이런 순간에도 빛을 발하다니 놀랍군 백미진. 후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듯하다.
나를 키울 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런 순간에 엄마가 이렇게 했던 건 그런 이유였겠구나..
내가 항상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던 게 있는데, 내가 자라는 동안 일하는 엄빠여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이는 부모의 빈 틈에서 자란다고 한다. 내가 타고나길 예민한 것처럼 엄마 또한 예민하고 꼼꼼한 편이신데, 그 예민함과 꼼꼼함이 많은 부분 일로 갔기 때문에 내가 비집고 나와볼 빈틈이 많았던 것 같다.
일하는 부모님이셨지만 자영업을 하셔서 내가 유치원을 갔다 와도, 학교를 갔다 와도 늘 가게에 가면 계셨기 때문에 나는 가게에서 엄빠 옆에서 숙제도 하고, 같이 밥도 먹으며 항상 붙어있었다.
그랬던 순간들이 부모님은 나에게 늘 미안하고 아쉬운 시간으로 남아있는 듯 하지만, 나에게는 항상 부모님과 붙어 있는 시간들로 기억나서 뭐가 미안한지 모르겠다.
대신, 그 시대에 일하면서도 살뜰히 나를 챙겨준 내 엄마 덕분에 나도 백미진으로서의 인생도 살며 썸머에게 과하게 개입하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앞으로 썸머의 성장 과정에서 내가 개입하고 싶은 많은 순간들이 있을 텐데, 그때마다 숨을 고르며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저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