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승패지만, 누구의 승리일까?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는 '결혼을 안 하면 다 얘다'라는 말이다.
그런 세상 억울한 말이 또 어디 있나 싶었다.
대화중에 그런 비슷한 말이라도 나올라치면 고슴도치 마냥 가시를 세워 ‘그래서 댁은 어른이세요?’했다. 하지만 이젠 그 말이 어떤 의도인지 알 것도 같고 ‘그렇게 말하니까 발끈하지’하며 내 나름 재해석하곤 한다.
문구의 주체를 바꿔 정확히 말하면, 결혼을, 아니 아이를 낳아 길러 보면 어른이 된다는 말이 바른 표현일 것이다.
조카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운다.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 틀에 박힌 사고만 하는 고모와는 달리 엉뚱하지만 기발한 그들의 시선들 등등... 은 개뿔!!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아이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참는 법, 기다려 주는 법, 뭐 그런 거다. 도를 쌓는 거지.
한창 미울 나이 5살, 까꿍이 나이가 딱 5살이다.
까꿍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는 아이다. 어렸을 때는 다른 관심거리로 전환을 유도해 주면 그 상황을 잊곤 했었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그중에 하나가 누군가와 전화 통화 후에는 꼭 본인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쯤이야 하겠지만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가령, 며칠 전과 같은 상황이 딱 그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또 휴원에 들어간 아가들이 갑갑해해서 정원 있는 할머니네로 소풍을 가는 중이었다. 아가들은 물론 고모와 할머니도 모처럼의 소풍에 설렜다. 한동안 비구름에 가려져 있던 맑은 하늘에 흰 구름도 설렘이 가득했다.
그 설렘도 잠시, 설렘 가득한 평화는 전화 한 통화로 산산이 부서졌다.
운전 중인 나의 핸드폰으로 콩이맘의 영상통화가 왔다. 나는 급히 통화 버튼을 눌러서 뒷자리의 할머니에게 넘겼다..
“엄마, 우리 소풍 가요.”
“우와 좋겠다. 재밌게 놀다 와. 고모랑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네!!”
합창하듯 콩이와 까꿍이는 분명 '네'라고 대답했다.
화면의 종료 버튼만 까꿍이가 누르면 되는데, 잘못 건드려 화면이 검색창으로 넘어가고 급기야는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콩이맘에게 먼저 끊어 달라고 했다.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까꿍이는 자기가 끊어야 된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차 안이라 까꿍이의 데시벨은 더욱 높게 들렸다. 가까스로 할머니 집에 도착은 했지만, 회사에 있는 콩이맘에게 다시 전화할 수도 없고, 나는 까꿍이를 달래 보려고 했다.
“까꿍아, 엄마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전화를 할 수가 없어. 조금 놀고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가 올 거야.”
하지만 까꿍이는 달래면 달랠수록 더 고집을 꺾지 않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직 육아에 육자도 모르는 나는 참을성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언젠가 저 똥고집을 꺾어 주리라 기회만 보고 있던 찰나 이때다 싶었다.
“까꿍! 그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동안 육아 교육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오은영 박사님에게 배운 걸 써먹었다.
예측하지 못한 고모의 말에 까꿍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한테 다시 전화할 수도 없고, 그렇게 육아의 육자도 모르는 노처녀 고모와 5살 조카의 밀당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먹는 것으로 꼬시기 시작했다.
“우와 할머니가 까꿍이 주려고 심은 수박이 벌써 다 익었네. 우리 이거 잘라서 먹을까?”
그런데 이 콩알만 한 녀석은 먹을 것은 다 받아먹고 배부르면 다시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다시 이번에는 물놀이로 꼬시기 시작했다.
“우리 날씨도 더운데 물놀이 한판 할까? 콩아 어때?”
“우와, 좋아요. 할머니.”
그러나 까꿍이는 잊을만하면 다시 또! 다시 또!!!
고모의 인내심은 바닥을 치고 할머니의 체력도 바닥이 났다. 두 어른을 지치게 해 놓고 이제 제대로 본 게임에 들어갔다. 막무가내로 전화 다시 해서 자기가 종료 버튼을 눌러야겠단다.
할머니는 빨리 전화하자고 성화고, 고모는 이제는 근무 중이고 뭐고를 떠나 고모의 고집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조카에 그 고모다!
“안 되는 건 안 돼! 고모가 안 된다 했어!”
까꿍이도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요놈 봐라.’
할머니는 지쳐하고, 빨리 고모의 승으로 요놈의 고집을 꺾어줘야 하는데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마 오은영 박사님이 모니터를 하고 있었다면 뭐라 했을까?
“고모님 나이가 혹시 4살인가요?” 할 수도.
끝나지 않을 까꿍이와의 밀당, 고모의 비밀스러운 카톡으로 끝이 났다.
‘니 아들, 고집 장난 아니다. 괜찮으면 전화 좀 해.’
콩이맘보다는 자유로운 콩이 아빠한테 몰래 카톡을 남겨 전화해 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통화 후 종료 버튼은 까꿍이에게..
무의미한 승패지만, 누구의 승리일까?
정답!! 까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