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싶었으면 타야지. 잘했어.

까꿍이를 신나게 했던 건, 사랑 가득한 고모의 말 한마디 었음을.

by 꼬야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독거 여인인 내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금쪽같은 내 새끼'와 '신박한 정리'이다. '신박한 정리'는 워낙 청소가, 정리가 취미인지라 그런다고 치지만, '금쪽같은 내 새끼'는 참 어이없는 시추에이션이다.

하지만 조카들을 내 배 아파 낳은 친자식처럼 자주 보고, 도맡아는 아니지만 케어 중이라 그런지 시청 내내 공감은 물론, 금쪽이 들의 사연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얼마 전 그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육아에서의 히어로 “오은영” 박사의 기사를 보았다.

“말이 바뀌어야 한다. 언어가 전부다. 아이의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쉽고 정확한 사랑의 언어를 써야 한다.”

라는 구절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우리 아가들한테 했던 수많은 말들이 생각이 났다.





하루는 유치원 앞으로 픽업을 갔다.

콩이와 까꿍이는 이제 막 규율에서 풀린 망아지들처럼 유치원 옆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한참을 뛰다가 차에 탔다.

“콩이, 까꿍이 안녕? 오늘 잘 지냈어?”

“응, 근데 고모, 까꿍이가 마음으로 말했는데 고모 밉대.”

“응? 이게 무슨 소리야? 까꿍아, 진짜 고모 미워?”
“응.” 까꿍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고모가 왜 미워?”

“치!” 까꿍이는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돌리며 한번 더 싫음을 말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랬을까? 그 후 우리의 대화는 먼 산으로 갔다. 고모가 왜 미운지 까꿍이의 마음을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육아의 육자도 모르는 어리석은 고모가 물었다.

“그럼, 고모도 까꿍이한테 치! 하고 미워해도 돼?”

“안 돼.”

“왜 안 돼? 고모도 까꿍이 미워할 거야!”

“고모, 그럼 우리 엄마 아빠한테 이른다?”

“그럼 나도 우리 동생들한테 이른다?”

“고모 동생? 고모 동생은 우리 아빠 한 명이잖아. 나는 우리 엄마 아빠 두 명한테 이를 거라고?”

“내 동생들은 네 명이거든. 큰아빠, 큰엄마, 너네 엄마 아빠도 내 동생이야.”

쪽수로 밀렸는지 까꿍이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둘! 그만 싸워라!”

그리고 콩이의 말 한마디로 상황 종료가 되었다. 6살짜리한테 5살짜리와 싸워 혼난 꼴이었다.




그 날의 나의 실수는 '그럼, 고모도 까꿍이한테 치! 하고 미워해도 돼?'라고 말한 것이었다.

까꿍이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며 사랑의 언어로 다가갔어야 하는데 그저 귀여운 행동에 정신 팔려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한참 후에야 왜 고모가 밉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날도 유치원으로 픽업을 갔다.

어김없이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한바탕 신나게 즐긴 후 차에 탔다. 타면서 시끌시끌한 게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했다.

내내 비가 오다가 하원 시간에 잠깐 소강상태였는데, 아가들은 비가 안 오니까 별생각 없이 미끄럼틀을 탔고, 예상대로 축축하게 젖은 미끄럼틀 덕분에 아가들의 옷도 축축이 젖은 것이었다.

“까꿍이, 너! 할머니가 미끄럼틀에 물 묻어 있다고 했잖아. 바지 다 젖고 팬티까지 젖었는데 어떡할 거니, 이거. 엉덩이 얼겠네!”

“할머니, 엉덩이 얼으면 어떻게 돼요?”

“요 녀석아! 얼으면 감기 걸리고 감기 걸리면 병원 가야지?”

뒷자리가 난리가 났다. 할머니는 까꿍이 옷이 젖어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었고, 까꿍이는 그런 할머니한테 옹알거리느라 시끌시끌했다.

“까꿍아? 미끄럼틀이 타고 싶었어?”

“응, 고모.”

“타고 싶었으면 타야지. 잘했어. 할머니, 이왕 탄 거, 우리 까꿍이 너무 야단치지 마요.”

“까꿍아, 괜찮아. 하고 싶은 건 하는 거야. 그 대신, 고모가 빨리 집에 갈 테니까 가자마자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야 해?”

“응!”

까꿍이는 가는 내내 고모가 제일 좋다며 그동안 뜸했던 애교를 부리고 신나 했다.

콩이는 말없이 있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까꿍이, 너 오늘, 고모랑 좀 친해 보인다?”




아차 싶었다.

콩이도 알고 있었다. 그동안 까꿍이랑 고모가 덜 친하다는 걸...

까꿍이가 천방지축이고 질투가 많은 아이라 할머니의 관심 안에 있고, 독차지하려는 경향이 있어 나는 늘 양보하는 콩이에게 신경이 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까꿍이가 지 누나를 한 대라도 때릴라치면 따끔하게 혼냈다. 변명 같지만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경쟁하는 두 녀석이라 늘 양보하는 콩이가 대견하고 안쓰러워 자연스레 콩이를 챙기게 되었던 것인데 까꿍이에게는 고모가 누나만 이뻐한다고 생각되었던 같다.

그래서 고모가 지 누나랑 꽁냥꽁냥 하고 있으면 ‘나도 할래’하며 달려드는 것이었음을, ‘고모, 미워’가 ‘나 좀 봐줘’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까꿍이를 신나게 했던 건, 고모가 자기를 좋아해 준다고 느끼게 해 준 건, 아주 대단하고 큰 그 무엇이 아니었다.

‘타고 싶었으면 타야지. 잘했어. 할머니, 이왕 탄 거, 우리 까꿍이 너무 야단치지 마요.’였다. 자기편을 들어주는 사랑 가득한 고모의 말 한마디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