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나는 다시 그것들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잠이 오질 않는다. 며칠 전부터 불면증이 다시 찾아왔다.
와인 한 모금 마시고 자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소용없다. 내일을 위해 자자하고 누우면 피곤하기만 하고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러면 누워서 시간만 축 내는 것 같아 이불 킥을 하고 벌떡 일어나기 일쑤다.
그제 밤은 무려 3번의 이불 킥을 하고서도 잠을 자지 못하고 일어나 침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결국 서재에서 책도 읽어보고, 글도 써보고 했지만 멍한 정신으로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멍한 나의 눈이 꽂힌 건 다름 아닌 오래전부터 불모지처럼 방치된 습작 더미였다.
흑! 꽂힌 곳이 왜 하필 그곳이었을까?
깊은 밤, 나의 병적인 정리가 시작되었다.
과거의 기록들, 그리고 나의 생각들... 그 안에서 살았던 어설픈 나의 드라마 주인공들.
지금은 그냥 방구석의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린 나의 미련.
하지만 그때는 활활 타올랐던 나의 열정이 휘갈겨 썼던 메모지와 빨간 펜으로 수정해놓은 교정본들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묶음 한 묶음 꺼내 보며 깊은 밤만큼이나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 아직 남아 있는 열정을 미련 맞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버려야 하는 걸까?
결국 나는 다시 그것들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아직은 미련 안에 남아 있는 불씨가 다시 타올라 열정이 될지 모르니까.
그 불씨에 바람을 일으켜 피워내야 할 주체는 나 자신이지만 말이다.
아직은 나는 다시 그것들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