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고모는 스스로에게 보탬은커녕 상처만 남길 몹쓸 장난기가 발동했다.
오늘도 조카들의 하원길은 시끌시끌하다.
튼튼이의 뜬금포 발언에 노처녀 고모는 스스로에게 보탬은커녕 상처만 남길 몹쓸 장난기가 발동했다.
오랜만에 콩 남매 하원길에 튼튼이도 합류해 더욱 정신이 없었다.
"나는 콩이 누나랑 결혼할 거야!"
"튼튼아! 고모가 들었는데, 태준이가 그렇게 얘가 괜찮다며? 친구랑도 잘 놀고 까꿍한테 양보도 잘하고."
"응, 태준이, 정말 좋은 친구야."
"응, 그렇다더라. 그래서 고모는 콩이 누나를 태준이랑 결혼시킬까 하는데 어때?"
나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콩이와 튼튼이는 합창하듯이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고모!!!!"
콩이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둘의 반란 강도만을 보면 내일모레 결혼할 거라고, 허락해달라고 투쟁이라도 할 기세였다.
'난 이 결혼 반댈세'했다던 친구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이맘때쯤의 아이들이 그런 걸까?
누구누구랑 결혼할 거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여하튼 콩이도 튼튼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난관은 없는 걸로 넘어가려는 찰나, 조수석에서 열심히 젤리를 먹고 있던 까꿍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도 콩이 누나랑 결혼할 건데??"
나의 장난기의 대상은 다시 까꿍이가 되었다.
"까꿍아! 넌 고모랑 결혼해주라."
"싫어! 나도 누나랑 결혼할 거야!"
"왜에!! 고모랑 하자."
"싫어. 난 누나랑 할 거야!"
"고모가 고모랑 결혼해주면, 까꿍이가 좋아하는 00 마트 매일 데려갈게. 어때?"
00 마트는 까꿍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많은 동네 마트이다. 까꿍이 아빠는 그 마트 주인아저씨가 까꿍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 리스트를 알고 있는 것처럼 녀석한테 없는 것만 가져다 놓는다며 신기해하곤 했다.
까꿍이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까꿍이는 고민 끝에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 말했다.
"알았어. 고모. 고모랑 결혼할게."
나와 엄마는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럴래? 그래. 그러자."
화요일마다 가기로 약속했는데 매일 가주겠다니 아주 구미가 당길 조건이었을 것이다.
어느덧 00 마트 앞, 까꿍이는 신이 나서 장난감을 골랐다. 젤리도 사고 두 손에 하나씩 들고 차에 올라 타 재잘거렸다. 집 주차장까지는 2~3분이면 도착이다. 평소 같으면 주차장에 세우자마자 콩 튀기듯 박차고 나가는 녀석이 미적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왜?? 까꿍이 왜? 고모한테 할 말 있어?"
"응, 고모! 근데...."
"응, 까꿍아! 뭔데?"
"근데, 고모. 결혼은 같은 또래하고 해야 해."
나는 앞 대화를 잠시 잊고 무슨 말인지 멍했다. 뒷자리에서 튼튼이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한 마디 더 붙였다.
"그래. 까꿍아! 결혼은 동갑끼리 하는 거야. 고모 하곤 못해."
그러더니 둘이 끼득거리더니 날쌔게 내려 놀이터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고모, 잘 가."라는 말과 손 인사를 남기고.
이 못된 먹튀들, 이 나이 많은 고모가 니들이 귀여워서 참아준다. 포기해준다.
그래도 다음 주 화요일에 또 들이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