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만드는 일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해 본 경험이 된다.
내가 가진 좋은 장점 중 하나는 새로운 일에 대해 두려운 감정보다는 재미있게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나는 코워킹스페이스를 엄청나게 많이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운영은 더욱이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데스크리서치를 통해 코워킹스페이스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해외에는 네이밍부터 운영까지 다양한 카테고리별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자료들이 많았다. (Coworking Resources) 그리고 내가 과거에 재미있게 읽었던 디지털노마드와 관련한 책과 다큐멘터리를 만드신 도유진님의 블로그를 다시한 번 들여다보기도 했다. 오프라인으로는 서울이나 지역에서 코워킹스페이스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다다른 결론은 결국은 지역의 맥락과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강릉의 코워킹스페이스는 태생적으로 기존의 공간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 '어떤 공간을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이 있다.
"모든 맥락은 브랜드와 함께한다."
파도살롱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먼저 정의를 내렸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공간을 만들면서 마주치게 될 다양한 의사결정 상황에서 '브랜드'의 맥락과 함께하기로 했다. 브랜딩을 통해 의사결정의 근거가 생긴 셈이다.
공간을 만드는 일을 프로세스로 나누어보자면 (브랜딩 1차로 완료되었다는 가정하에) 아래처럼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파도살롱의 경우 먼저 부동산의 위치가 결정된 경우였다. 강릉의 명주동이라는 원도심,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진 동네다. 명주동은 나의 아버지 세대의 다운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동네인데 지금은 소규모 로컬샵과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골목길을 여행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동네가 되었다. 더불어 강릉에서는 명주예술마당이나 작은공연장 단, 문화도시사무국 등이 위치해있어 문화적으로도 밀집성과 다양성을 가진 곳이다. 부동산을 살펴보자면 강릉 IC부터 바닷가까지 시내를 관통하는 경강로라는 큰 대로가 있다. 이 대로변에는 주로 상가건물이 있고 그 뒷골목부터는 주택이나 오래된 구옥들이 많다.
부동산 선정 시 우리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큰 키워드는 접근성과 주차공간이었다. 강릉에서는 시내라고 부르는 임당동과 중앙동에는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가깝지만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명주동에 부동산을 선정했다. 명주동에는 연면적이 큰 건물이 별로 없다. 한 층에 약 60평 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파도살롱이 위치한 건물은 명주동에서 가장 큰 연면적을 가진 상가 중 하나다.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파도살롱의 스펙을 요약해보면, 2층, 면적 58평방미터, 화장실 1개, 넓고 큰 창호, 5m가 넘는 간판 그리고 우울한 입구 정도가 되겠다. (입구에서 쇠창살을 찾아주세요 ㅠ_ㅠ)
다음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서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동선을 구상해보기도하고 전체적인 경험을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오피스 공간이기에 콘센트를 배치하고 사용자가 사용하는 방식, 의자 및 테이블의 배치, 사용자들의 시선을 고려한 가구 배치를 비롯해 세밀한 디테일들을 구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은 모두에게 정답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용자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내겐 의미가 깊었다.
파도살롱의 배치는 아래와 같다.
창이 나있는 한 면이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복도를 만들어 자연스런 동선을 만드는 일부터 가구를 배치하는 일 그리고 공간의 기능적 구성을 염두했다. 가장 먼저 결정한 것은 프라이빗 오피스의 유/무에 대한 부분이다.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고려하여 프라이빗 오피스는 꼭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1개, 2개, 3개, 4개 고민이 되는 지점이었다. 안정적인 수익을 원한다면 1개월 단위의 핫데스크 멤버십 보다는 오피스를 늘리는 것이 나았지만 독립된 공간이 너무 많이 생기다보면 면적을 많이 차지하게 되어 라운지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편의나 업무환경의 질이 매우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타협한 숫자는 프라이빗 오피스 2개이다. 약 5~6평 정도 되는 공간 두 곳을 구획하여 3~4명이 사용할 수 있는 독립 공간을 마련했다.
다음은 회의실이었다. 회의실은 결국 회의를 하기 위한 공간인데 첫째로 외부 소음이나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구조의 공간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한 개 뿐인 회의실은 동시에 2개 이상의 팀이 이용할 수 없기에 라운지 공간에도 간단한 회의를 할 수 있는 4인 이상의 테이블을 추가하여 기능적인 보완을 추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창가 쪽에는 외부에서 봤을 때 오피스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간접등과 탁상등 그리고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파도모양의 테이블을 구상했다. 기존에 콘크리트가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는데 이를 잘 나무 소재로 덮어서 차가운 느낌을 지우면서 사용자들의 선반 기능을 하도록 바꾼 것도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배치나 동선 분 아니라 소재의 사용에도 신경을 썼다. 천정과 바닥을 노출의 형태로 가져가기 때문에 '따뜻한 커뮤니티'의 느낌을 살리려면 반대로 밝은 나무소재로 벽을 마감하거나 가구에 사용했다. 이런 소재의 선택은 넷플릭스의 인테리어 관련 영상들에서 어느정도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다만 나무합판으로 만든 가구들의 경우에는 보기에는 이쁠지 몰라도 시중에 판매하는 기성 가구들보다는 내구성에서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하는 가구 외에는 모두 기존 오피스에서 사용하던 튼튼한 데스커의 책상을 선택했다.
오피스 공간에 부가적인 기능을 더하는 요소들도 공간 디자인의 영역에 있다. 엄청난 규모의 오피스가 아니기에 핵심이 아닌 부가적 요소들은 우선순위에 따라 꼭 필요한 것들을 채워넣고자 했다. 먼저 간단한 사무용품과 공구들을 사용할 수 있는 벽 선반이 있겠다. 오피스에 있다보면 무언가를 자르거나 재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경험을 돌아보며 귀찮은 경험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고 싶어 이러한 디테일들을 구성했다. 과거에 현대카드의 블랙스튜디오에 이렇게 센스있는 여러 기능의 공간들이 있다는 점을 참고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디테일들에서 여러 고민과 실행을 반복했다. 결국 공간도 다른 기획과 마찬가지로 디자인과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게말하자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공간 기획의 핵심인 셈이다.
마지막으로는 기획과 디자인 외에 실제 공간을 만드는 공사 시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 한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어떤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면, 크게 두가지 옵션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인테리어 사업자에게 턴키 계약을 통해 공간을 만들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분야별로 각각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공사기간을 상대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고 여러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비용은 조금 더 든다. 후자의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수준의 디테일을 요구할 수 있고 공사 기간이 조금 늘어지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공사비용을 아낄 수 있다.
파도살롱의 경우, 철거부터 마감까지 모든 부분을 개별적으로 계약해서 진행한 케이스다. 이 경우에는 공사금액을 아낄 수 있지만 월세가 조금 더 나가게 되고 공사 스케줄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스케줄이 맞아야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강릉에서 공사를 하며 느낀 점들은 다음과 같다.
소비자 가격과 업자 가격이 다르다
: 인테리어 사업자를 알고 있다면, 꼭 협력 시공 업체들을 소개받자.
자재가 없다.
: 지역에는 나무나 타일 등 기성 자재들도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따라서 꼭 필요한 자재가 있다면 수도권에서 미리 수급해두는 것이 좋다.
공사는 할 수록 싸진다.
:공사는 견적을 볼 수록, 시공을 해 볼수록 저렴해진다. 시간이 조금 있다면, 여러 업체들을 만나보자.
포기해야하는 부분이 생긴다.
: 공간을 만드는 일은 항상 예산보다 10% 내외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즉 포기해야하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이런 부분을 감안하여 미리 공사나 공간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가구나 비품은 꼭 실측을 하고, 퀄리티체크를 하자.
: 내가 사용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을 임대하는 경우, 시설보다는 자산에 투자하자.
: 시설 투자는 결국 건물을 사는 경우가 아닌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시설투자금은 기능상 문제가 없다면 가능한 줄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파도살롱의 정식 오픈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5월 1일부터 가오픈으로 운영되게 되는데 강릉에 코워킹스페이스를 만들며 참 많은 것들을 느꼈다. 모든 프로젝트가 비슷하지만, 공간을 만드는 일 또한 이상과 현실 어느사이에서 타협하게 마련이고 공간의 미학적인 측면과 실용적인 측면이 갈라서기도 한다.
이렇게 크고 작은 고민들을 하면서 만들어진 공간을 보면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보이지만 '그 동안 참 많은 의사결정을 내렸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공간의 기획, 디자인 그리고 시공이 어느정도 끝났다. 하지만 코워킹스페이스의 진정한 완성은 사람과 문화라고 생각한다. 파도살롱에서 우리는 오피스라는 본질을 잃지 않고 '지역에 새로운 물결을'이라는 우리의 미션을 잘 녹여낼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