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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05. 2024

브랜딩이 생산자에게 필요한 이유 (2)

3. 휘발되는 시간을 나의 브랜드에 축적하기 위해


“남 좋은 일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를 오랫동안 해 온 대표님이 말했다. 업계에서 꽤 오랫동안 그리고 열심히 일해왔는데 남 는 게 크게 없다고 했다. 직원도 늘고 매출 규모도 늘었지만, 그동 안의 시간이 하나의 브랜드로 남지 못한 것이다. 모든 노력과 시간은 고객사의 브랜드에 누적되어 있었다.


B2B 업계에 있는 대표님들을 만나 보면 대부분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체 브랜드가 없다 보니 하는 일에 비해 이익률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축적되는 무언가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다. 고객사는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는데, 본인들은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이 드는 것이다. 집을 지어 주는 대가로 돈을 꼬박꼬박 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자가 되는 것 은 결국 집을 소유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말 그대로 남 좋은 일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자체 브랜드가 없으면 매번 백지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상품과 서비스를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고객의 신뢰를 얻는 데도 매번 수많은 돈과 시간을 써야만 한다. 반면 강력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소비자는 언제든지 강력한 브랜 드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가 새로운 사업으로 확장하는 데 용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유를 하자면 브랜드가 없는 회사가 매번 서류 면 접, 적성검사, 인터뷰, 평판도 검사 등의 무수한 시험에 합격해야 만 할 때, 강력한 브랜드는 이 모든 시험을 치르지 않고 고객 마음에 한 번에 입사하는 것이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 남 좋은 일 말고 나도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도 결국 브랜드가 필요하다.


4. 일잘러와 함께하기 위해


삼성물산 패션 부문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일 중 하 나가 판매 실습이었다. 2주간 매장에서 근무하면서 판매 직원분들을 옆에서 돕고, 때로는 직접 판매도 해 보는 일이었다. 나는 현대 백화점에 위치한 남성 정장 브랜드에 배정되었다. 고객을 눈앞에 서 생생하게 바라보는 경험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책상 앞에서 데 이터나 트렌드 자료를 보며 상상했던 고객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 기 때문이다. 그들은 숫자처럼 고정된 ‘상수’가 아니라 개개인이 다 르고 상황마다 다르게 행동하는 ‘변수’였다. 사무실에서 만든 마케 팅 메시지나 세일즈 프로모션이 판매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어떻 게 도움이 안 되는지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판매 직원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비슷한 나이의 막내 직원분이 있었는데, 조금 친해지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방의 한 의류매장에서 점장으로 일 하면서 대기업 직원 연봉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벌었던 것이다. 그 렇게나 괜찮은 일을 그만두고 더 적은 돈을 받고 막내 직원으로 일 하고 있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비슷한 질문 을 많이 받았었는지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대기업 브랜드에서 일해 보고 싶었어요. 돈을 적게 받더라도요. 기왕이면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 뛰어 봐야죠.”


이처럼 강력한 브랜드는 좋은 인재를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자석 과도 같다. 비록 월급이 적더라도 회사에 남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 이 되기도 한다. 돈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 또한 삼성에 막 입사했을 무렵에는 그 무엇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취해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 “파란 피를 수 혈했다”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고, 회사에서 나누어 준 삼 성 배지Badge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정장에 꽂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겸연쩍기도 한데 결국 이 모든 것이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 강력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브랜드의 힘 이 약하면 좋은 인재를 고용하기도 힘들고 유지하기도 어렵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뜬 영상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비니를 쓴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제가 브랜드가 되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팔로워만 보고 직원을 뽑았더니 레시피만 배우고 퇴사하고, 열정적인 직원을 뽑아서 가르쳤더 니 경쟁사 사장이 되었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투자했더니 많 이 배워서 유명한 경쟁사로 이직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 의 브랜드가 약해서임을 깨닫고 스스로 브랜드가 되기로 마음먹었 다는 내용이었다. 강력한 브랜드가 있어야만 좋은 인재를 뽑고 유 지할 수 있음을 절실하게 깨달은 필아웃 커피 대표의 말이었다.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자동차는 승차감과 하차감이 있다고 말한다. 승차 감은 자동차를 운전할 때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편안함, 쾌적 함, 만족감 등의 감정이다. 하차감은 자동차에서 내릴 때 타인의 시선을 통해 느끼는 자부심, 만족감 등의 감정이다. 비유하자면 승 차감이 ‘연봉, 복지’ 등의 객관적인 근무 조건이라면 하차감은 회 사가 구성원에게 줄 수 있는 주관적인 감정이다. 인재를 유치할 때 작은 브랜드가 돈과 여유가 많은 큰 브랜드와 승차감으로 경쟁하 는 것은 바보짓이다. 하차감으로 승부해야만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다. 이 또한 브랜드가 큰 역할을 한다.


5. 기술이 만들어 내는 승자 독식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헤이 카카오, 생수 주문해 줘!”


스마트 스피커(혹은 스마트 냉장고)가 대중화된 미래에 이렇게 말한다면 카카오는 어떤 생수를 주문할까? 가격이 가장 저렴한 생 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생수? 그것도 아니라면 카카오 에 광고비를 가장 많이 지불하는 생수? 고객의 선호도나 환경 설 정, 관련 법규에 따라 아마도 달라질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 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격 경쟁을 하거나 광고비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이익률을 낮추어야 만 매출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소비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어떨까?


“헤이 카카오, 삼다수 주문해 줘!”


이 경우에 카카오는 100% 삼다수를 주문할 것이다. 다른 옵션 은 없다. 삼다수는 삼다수일 뿐이다. 그 어떤 가격 경쟁이나 광고 비 경쟁도 필요 없다. 고객이 물이 아닌 삼다수를 요청했다면 카카 오는 삼다수를 주문해야만 한다. 삼다수는 “목이 마르니 아무 물이 나 마셔도 돼”라는 소비자의 단순 니즈Needs를 충족하는 상품이 아 니라 “삼다수여야만 해”라는 소비자의 강력한 원츠Wants를 충족하 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스마트 스피커뿐만이 아니다. 기술의 진보는 모든 곳에서 승자 독식 시장을 만드는 경향을 보인다. 인터넷 강의가 활성화되면서 사교육 업계에서는 과목당 한두 명의 스타 강사에게 학생들의 쏠 림 현상이 발생했다. 전국의 수험생들은 그냥 수학 강의가 아니라 현우진 수학 강의, 그냥 사회탐구 강의가 아니라 이지영 사회탐구 강의를 요구한다. 20명 남짓의 강사가 수능 시장을 과점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피라미드를 넘어 압정 수준’의 승자 독식 시장이라 부르고 있다.viii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한 일부 강사 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늘면 효용성이 증가하 는 네트워크 효과의 강화로, 메신저는 카카오톡, 긴 영상은 유튜브, 짧은 영상은 틱톡처럼 하나의 플랫폼이 독식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도 전반적으로 다르지 않다. 기술의 발달은 정보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혼란스러운 소비자의 선택은 뻔 하다. 어디를 가나 ‘많은 리뷰 순’ ‘낮은 가격순’, ‘판매량순’과 같이 1등 제품만 구매하게 된다. 1등이 아닌 브랜드는 소비자의 눈에 보이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가 명확히 인지한 브랜드가 아 니라면 이러한 승자 독식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기술이 발전 할수록 브랜드가 더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540618



사진: UnsplashGreg Rosen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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