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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04. 2024

브랜딩이 생산자에게 필요한 이유 (1)


IT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브랜딩을 돕고 있는 전문가가 말했다. 대다수의 중소기업 대표님은 본인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이렇게나 좋은데 왜 소비자는 이렇게도 몰라주는지에 대해 무척이나 답답해한 다고 했다. 브랜딩이 이 답답함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즉, 브랜딩을 일종의 만능열쇠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브랜딩의 필요성을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 깊 게 파고들어 가야 한다. 브랜딩이 왜 필요한지를 훨씬 더 깊게 고 민해야 한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은 문제가 생기면 ‘왜’를 다섯 번이나 물었다고 한다. 생산자도 브랜딩이 본인에게 ‘왜’ 필요한지를 반복해서 물어보면서 끈질기게 파고들어야 한다. 파고들어 가다 보면 본질적인 이유가 나타날 것이다. 이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 모두가 잘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10년 전에 갔었던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다. ‘전 세계 32개국 1,2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완전 한 어둠 속에서의 100분간 여행’으로 알려진 전시다. 짧게 설명을 하자면 무엇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청각, 후각, 촉 각, 미각 등의 시각을 제외한 감각을 활용해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는 전시다. 전시장은 말 그대로 어둠 그 자체다.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디디며 이동해야만 한다. 나에게는 잠시나마 시각 장애인이 겪 는 일상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값진 전시였다.


전시의 말미에는 어둠 속의 카페라는 코너가 있다. 전시 이름처 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카페다. 시각이 배제된 채 다른 감각만으로 음료를 즐기는 것이다. 어둠 속의 바리스타가 청량음료를 따라 주는데 무엇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호기롭게 무슨 음료 인지 말하지만 대부분 틀린다. 심지어 사이다를 마시고 콜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욱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구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는 연구 결과로 밝혀진 사실이기도 하다.


2003년에 코카콜라는 하나의 실험을 진행한다. 소비자가 코카 콜라와 펩시콜라를 마실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본 것이 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fMRI(기능적 자기 공명영상) 장비를 활용하 여 소비자의 뇌를 관찰했다. 브랜드를 모르고 마실 때는 코카콜라를 마시나 펩시콜라를 마시나 뇌의 같은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뚜렷한 차이점은 브랜드를 보여 주었을 때 나타났다. 펩시콜라임을 알고 마실 때 전혀 반응이 없던 뇌의 영역이 코카콜라임을 알고 마 실 때 추가로 활성화된 것이다. 브랜드를 알고 나서 사람들은 압도 적으로 코카콜라를 선호했다.


신경과학자 리드 몬테규(Read Montague 교수도 fMRI를 활용해 비슷 한 실험을 진행했다. 코카콜라, 맥도널드 등과 같이 강력한 브랜 드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자 뇌에서 쾌감, 즐거움 등과 관련된 신경 전달 물질이자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 인한 것이다.  품질이 아닌 브랜드가 소비자의 만족도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 뇌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과거와 달리 품질로는 점점 더 차별화하기 힘들다. 좋은 품질과 서비스는 이제 기본이기 때문이다. 막연히 좋지 않다고 여겨졌던 중국산 제품도 놀라울 정도의 품질을 보여 주고 있고,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도 그 어떤 글로벌 카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멋 진 공간과 맛있는 커피를 선보인다. 심지어 몇몇 유명 패션 브랜 드의 경우 모조품이 진품보다 품질이 좋다는 소식도 종종 듣게 된 다.  그뿐인가? 인공지능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인해 지식도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모두가 교수고 모두가 전 문가인 세상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은 브랜드다. 같은 것을 먹고, 마시고, 입 어도 그 만족도는 브랜드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브랜드는 생각에 영향을 주고, 감각에 영향을 주고, 감정에 영향을 준다. 고객의 만 족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가치도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가? 그렇다면 같은 제품에 로고만 스타벅스에서 농협으로 바뀐 것을 보고 직접 판단해 보기 바란다. 메시지(Message)보다 메신저(Messenger) 그리고 프로덕트(Product)보다 프로듀서(Producer)가 더 주목받는 브랜드의 시대다.



2. 자체 브랜드(Private Brand: PB)를 만드는 유통 플랫폼에 지지 않기 위해


아마존 비즈니스 초고수를 알고 있다. 팔릴만한 아이템을 빠르게 찾아내서 아마존에 최적화된 메시지로 시기적절하게 판매하는 것 을 자동화하여 큰 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평생 아마존 비즈니스를 해도 될 것 같은 대표님이 어느 날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


“이제 슬슬 다른 비즈니스를 알아보려고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설명을 찬찬히 들어보니 납득이 되었다. 쇼핑몰 상세 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마케팅 또한 자동화가 가능한 시대에 본인 같은 중간 유통업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제조사나 플랫폼은 더 이상 제삼자를 통 해 판매할 필요가 없어졌다. 기술의 발달 덕분에 브랜드를 직접 만 드는 게 너무나도 쉬워졌기 때문이다.


제조업자도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품을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대표님 한 분이 특정 유통 플랫폼의 갑질에 대해 토로했다. 몇몇 유통 플랫폼은 제품이 잘 팔릴수록 더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해당 제품과 비슷한 PB 상품을 만든 다고 했다.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유통 플랫폼을 상대로 제조사가 상품으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 럼 보였다.


유통 플랫폼이 PB 상품을 출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유통업계에 PB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2016년도에 는 대표적인 홈쇼핑 회사들이 앞다투어 PB 상품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내에 전담팀을 구성할 정도로 PB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결과는? 뜨뜻미지근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잠잠했던 PB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심상치 않다. 더 이상 PB 상품은 제조업체 브랜드(NB: National Brand)의 저가 대체품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가격임에도 당당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수많은 유통 플랫폼이 다시 PB 상 품을 앞다투어 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19년 기준, 아마존이 직접 기획해서 만든 PB뿐만 아니라 제 조사가 아마존만을 위해 별도로 만든 PB를 합치면 450개에 달하 고, 상품 수는 무려 2만 개가 넘는다. 우리나라 유통 플랫폼도 크 게 다르지 않다. 쿠팡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16개의 새로운 PB를 만들었고, 마켓컬리는 우유 상품 가운데 1위를 기록한 ‘컬리 스 동물복지 우유’와 식빵 분야 판매 1위를 기록한 ‘R15 통밀 식빵’이라는 PB를 보유하고 있다.


의류 플랫폼 무신사의 행보는 더 적극적이다. ‘무진장 신발 사진 이 많은 곳’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의류 플랫폼을 거쳐, 이 제는 PB를 통해 글로벌 의류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내비치 고 있다. 그리고 ‘무신사 스탠다드’는 그 열망의 시발점이다. 2023 년에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한문일 무신사 대표는 2024년에만 20개 넘는 오프라인 매장을 신설하여 30호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유통 플랫폼은 앞다투어 자체 브랜드, 즉 PB를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고객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실시간 고객 데이 터를 소유한 주체가 유통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김병규 교수는 이 를 두고 온라인 플랫폼은 생산과 유통을 겸비한 P-플랫폼(Producing- Platform)으로 진화 중이라고 말했다. 작은 브랜드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센 물결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고객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원하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P- 플랫폼과 그것을 일일이 조사하고 추측해야 하는 작은 브랜드가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로 경쟁이 될까? 안 된다. 게임의 룰을 바꿔 야만 한다. 생산자가 말하는 객관적인 기능 경쟁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 경쟁으로 규칙을 바꿔야 한다. 이 또한 좋은 브랜드가 가능케 한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540618



사진: UnsplashGreg Rosen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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