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유통업으로 큰 성과를 낸 대표가 미팅을 요청해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엔 자체 브랜드 런칭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온라인 유통 경험은 풍부했지만, 브랜드를 직접 만드는 건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모든 브랜드의 시작은 결국 ‘고객’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제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가 말한 브랜드의 타깃은 20대 남녀로 보였다. 패션 업계에서 가장 많이 겨냥하는 연령대이기도 하다. 중장년층에 비해 새로운 브랜드에 더 열려 있고, 마음에 들면 자발적으로 SNS에서 알리기도 하기에, 빠른 성장을 노리는 신규 브랜드엔 적절한 타깃이다.
# 문화적 맥락을 찾아라
하지만 문제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느냐다. 모두가 주목하는 타깃이기에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20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우리만의 무언가’를 추구한다. 두 글자로 요약하면, 그건 바로 ‘문화’다. 그들만의 코드, 그들만의 배타적인 취향을 공유하고 과시하는 데서 정체성을 느낀다. 그래서 단순히 예쁜 디자인보다는, 자신을 대변해줄 수 있는 문화적 맥락에 더 끌린다.
과거 이런 흐름을 기민하게 포착해 큰 성공을 거둔 브랜드가 있다. 바로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다. 초기엔 전형적인 백인 상류층의 프레피룩을 지향했지만, 힙합 문화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브랜드를 선망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전략을 과감히 전환했다. 광고 촬영 장소는 요트 클럽과 해변 등 부유층의 공간이었지만, 옷은 점점 더 헐렁하고 로고는 더 커졌다. 힙합 스타일에 맞춘 것이다. 스눕 독 같은 힙합 아티스트에게 협찬하며 ‘힙합 문화의 일부’로 브랜드를 포지셔닝했고, 그 결과 8년 만에 매출은 16배 이상 성장했다.
힙합 뮤지션 스눕독. 출처: icon.ink
국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문화의 흐름을 선점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디스이즈네버댓(이하 디네댓)’이다. 힙합 키즈였던 최종규와 박인욱, 조나단이 팀을 꾸려 만든 브랜드로, 홍대 스트리트 컬처라는 뚜렷한 문화적 기반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대부분의 촬영과 작업을 내부에서 직접 진행했고, 아티스트 네트워크를 활용해 디네댓을 단순한 의류 브랜드가 아니라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디네댓을 입는다는 건 스타일을 넘어서 ‘내가 속한 문화’를 표현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DEUX x thisisneverthat Collaboration. 사진 출처: www.deuxofficial.com
# 라이프스타일을 브랜드로 바꾼 ‘르무통’
순천만국가정원에 조성한 르무통빌리지
최근에는 또 다른 방식의 문화 접근도 주목받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브랜드 문화로 끌어올린 사례다. 바로 르무통(LeMouton)이다.
르무통은 단순한 컴포트 슈즈 브랜드가 아니다. ‘편하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는다’는 철학 아래, 걷는 행위 자체를 브랜드 정체성으로 삼았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문경새재 캠페인이다. 서울 성수동 같은 핫플레이스가 아닌, 경상북도 문경시에 있는 울창한 도립공원 ‘문경새재’를 첫 오프라인 캠페인 장소로 선택했다. 걷는 사람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 브랜드 철학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9일간의 캠페인 기간 동안 방문객은 24만 명에 달했고, 현장 체험 후 온라인 주문이 쏟아졌다.
르무통의 걷기 캠페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는 ‘르무통 빌리지’, 문경에서는 찻사발 축제와 연계한 걷기 행사, 그리고 사내 워킹 모임 ‘웤웤(Walk Walk)’까지 운영하며 브랜드 전체가 ‘걷기에 진심인 조직’으로 움직이고 있다. 브랜드 본질에 집중하면서도 지역사회와의 협업, 현장 체험 기반 브랜딩으로 ‘걷기 문화’를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그 결과, 르무통은 출시한 신발 스타일이 단 9가지에 불과함에도 올해 연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르무통은 20대만을 위한 브랜드는 아니다. 오히려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걷기’라는 일상적이면서도 본질적인 행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다. 그들에게 르무통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편하게 걷는 문화’의 상징이다.
# 정체성을 설계해야 팬덤이 생긴다
이처럼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다. 고객이 속하고 싶어 하는 문화적 공간을 제안해야 한다. 단순히 신발을 파는 게 아니라, ‘러닝 크루’ 혹은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정체성을 설계해야 한다. 문화가 있으면 정체성이 생기고, 정체성이 생기면 팬덤이 형성된다. 그리고 팬덤이 생긴 브랜드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시대의 기호로 자리 잡는다. 경쟁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브랜드는 자신만의 세계관 속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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