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검색창으로 쓰는가, 비서로 쓰는가, 아니면...

by 캡선생

최근에 SNS에 올린 글이 꽤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 글은 아래와 같다.


“AI를 잘 못 쓰는 사람은 검색창처럼 쓰고

AI를 잘 쓰는 사람은 비서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비서가 아니라

사수처럼 쓰는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이에 대한 생각을 조금 길게 적어볼까 한다.


요새 AI를 쓰면서 많이 느낀다. AI를 잘 쓴다는 것은 AI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는 점을. AI를 검색창으로 보면 검색어만 떠올리게 되고, 비서로 보면 단순 작업만 떠올리게 되고, 사수처럼 보면 내가 혼자서는 잘 풀기 어려운 문제를 붙들고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게 있다. AI를 사수처럼 생각한다는 말을, AI를 무조건 믿고 따르는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좋은 사수가 있다는 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더 집요하게 물을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는 뜻에 가깝다. 특히 AI를 쓸 때는 더 그렇다. AI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수는 있어도, 최종적으로 답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나’다. 그래서 더더욱 끊임없이 캐물어야 한다. 왜 그런지, 왜 그 순서인지, 왜 그 해석이 맞는지. 이럴 때 필요한 태도가 바로 ‘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도요타식 문제 해결법으로 널리 알려진 ‘5 Whys’처럼, 한 번 듣고 넘어가지 않고 이유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이걸 “정답을 얻는 기술”이라기보다, 생각을 더 깊게 밀어 넣는 습관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며, 텍스트뿐 아니라 음성으로도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바로 따라 해봤다. AI와 50분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더 대화하고 싶었으나 토큰이 바닥났다). 여기서의 대화는 고민을 털어놓거나 잡담을 늘어놓는 시간이 아니다. 50분 내내 AI를 ‘왜’라는 질문으로 밀어붙이는 시간이다. 나는 호기심 많고 반항적인 부사수, AI는 너그럽고 지혜로운 사수라고 가정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시작될 때쯤 주제를 하나 던진다. 이를테면 “오늘은 불교 철학을 좀 깊이 이해해보려고 하는데, 무엇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라고 묻는 식이다. 그리고 AI가 어떤 답을 하든, 내 다음 질문은 똑같다. “왜?” 이 한마디로 받아치는 것이다. 모든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라는 맥락으로 다시 밀어붙이다 보면 내가 모른다는 것조차 몰랐던 영역으로 조금씩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느낀 점이 있다. AI와 제대로 대화하려면 단순히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무엇을 알고 싶은지, 왜 그걸 알고 싶은지, 어느 수준까지 들어가고 싶은지를 먼저 잡아줘야 대화의 밀도가 올라간다. 그냥 “불교 철학 알려줘”보다 “나는 초보인데,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 사유 체계로 이해하고 싶다. 오늘은 핵심 쟁점 3가지만 깊게 들어가보자”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AI를 검색창처럼 쓰면 내가 이미 아는 것을 더 확고히 하거나, 모르는 것을 찾아보는 수준에 머물기 쉽다. 비서처럼 쓰면 그 지식을 바탕으로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 수 있으나 거기까지다. 하지만 AI를 너그럽고 지혜로운 사수로 상정하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탐구의 범위가 ‘내가 모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까지 넓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AI의 대답을 바로 ‘정답’으로 받지 않는 것이다. 설명을 들은 다음에는, 이게 사실에 가까운 설명인지, 해석이 섞인 의견인지 다시 물어봐야 한다. 좋은 대화는 질문 한 번으로 끝나는 대화가 아니라, 설명과 검증이 번갈아 오가는 탁구 같은 대화에 더 가깝다. AI를 사수처럼 쓴다는 건 AI를 신처럼 떠받드는 태도가 아니라, 더 좋은 질문으로 더 깊이 캐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50분의 대화가 끝나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일종의 고양감이었다. 머리를 얕게 스쳐 지나가는 만족감이 아니라, 생각이 한 단계 깊어졌을 때 오는 충만한 감각에 가까웠다. 만화로 비유하자면, 지구의 10배 중력인 계왕성에서 단시간에 성장한 손오공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똑똑한 한 사람과 대화한 것을 넘어, 인류가 축적해온 거대한 텍스트 세계와 한꺼번에 마주한 듯한 느낌도 들었다. 글로 쓰니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때의 체감은 이 정도였다.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빠르면 2027년, 늦어도 2028년이면 AI가 학습하지 않은 새로운 데이터가 고갈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AI가 방대한 인간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 거대함이 마치 인류의 축적된 지성과 마주하는 경험처럼 느껴진 것도 아주 과한 해석만은 아닌 것 같다.


AI 시대에 여러분은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검색창인가, 비서인가, 아니면 사수인가. AI의 발달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관점이 결국 활용 능력의 차이를 만든다. 이제는 AI가 아니라, 나의 관점을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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