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어디에서도 1만 원짜리 커피는 팔린다?

by 캡선생

금요일 아침 7시에 끝나는 TBN 교통방송을 마치고, 북토크가 예정돼 있던 청주로 바로 출발했다.


전날 5시간도 못 자고 방송까지 마쳐서 그런지 청주로 가는 길에 피로가 몰려왔다.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었는데, 빈속이라 캔커피는 부담스러웠다. 이런 순간엔 부드러운 드립커피가 딱이다. 휴게소에 차를 멈추고 지도앱에서 드립커피집을 검색했다. 아침 8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24시간 카페를 제외하곤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다. 8시에 여는 커피집이라면 이동거리를 감안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찾은 카페가 평택의 ‘후드로스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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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도로가에 자리한 후드로스터스는 마치 미국의 긴 사막길 중간중간에 있는 가게처럼, 큰 표지판을 가게 앞에 우뚝 세워 놓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서울 성수동이나 연남동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힙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필터커피를 주문하려고 보니 가장 저렴한 메뉴가 6500원, 비싼 메뉴는 1만2000원이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사람은 중간 가격대를 고르곤 한다. 나도 대세를 따랐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북토크 자료를 검토하다가, 이내 나온 커피를 마셨는데 훌륭했다. 눈앞에 펼쳐진 한적한 풍경과 북적이는 핫플에서나 마실 법한 커피의 조합은 묘한 이질감을 만들었다.


궁금했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 있는 가게가, 그것도 가격대까지 높은데 과연 어느 정도 사람이 올까 싶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른 아침부터 테이크아웃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점심 즈음 되니 그리 작지 않은 카페가 제법 차기 시작했다. 내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한적한 곳에도 고품질의 고가 커피를 찾는 수요가 분명 존재한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적어도 내가 이날 목격한 풍경은 그랬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지역 상권은 대체로 비슷한 순서로 발전한다고 느껴졌다. 햄버거를 예로 들면 이렇다. 먼저 지역의 저렴한 햄버거 가게가 자리 잡는다. 그러다 상권이 커지면 전국구 프랜차이즈 가운데 롯데리아 같은 중저가 브랜드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맥도날드나 버거킹처럼 상대적으로 객단가가 더 높은 브랜드가 들어오는 식이다. 물론 모든 지역이 꼭 이런 순서를 따르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눈엔 지역 저가 브랜드, 전국구 중저가 브랜드, 전국구 중고가 브랜드 순으로 상권이 채워지는 흐름처럼 보였다.


카페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지역 카페가 있고, 그다음 메가커피나 이디야커피 같은 브랜드가 들어오고, 이후 스타벅스나 커피빈, 나아가 더 높은 가격대와 취향을 내세운 브랜드가 들어오는 식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꼭 그런 순서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스타벅스는 없을지언정, 6000원 이상의 커피를 파는 지역 카페 하나쯤은 있는 느낌이다. 물론 모든 지역이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예전보다 훨씬 더, 전국 곳곳에서 고급 커피를 찾는 수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는 인상은 분명하다.


가격이라는 개념도 생각해보면 단순하지 않다. 비싸다, 싸다는 절대적인 기준 같지만 사실은 품목과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1억 원은 분명 큰돈이지만, 그것이 집값이라면 또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대개 품목마다 자신만의 기준가격을 갖고 있고, 그 기준을 바탕으로 싸다 비싸다를 판단한다. 커피 한 잔에 1만 원이라고 하면 웬만한 사람은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커피 한 잔 가격이 식사 한 끼 값이라니” 싶을 만큼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에겐 다른 건 아껴도 커피만큼은 아끼고 싶지 않은 지출일 수도 있다.


취향의 파편화는 가격의 파편화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성립하기 어려워 보였던 고가 커피도 이제는 생각보다 다양한 지역에서 수요를 만든다. 몇 달 전 공유했던 ‘슈퍼 내추럴’처럼 훨씬 높은 가격대(7만 원)의 커피를 내세우는 곳도 있다. 대기업 브랜드라면 최소한의 고객 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기에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가격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단일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품목이든 충분히 비싼 브랜드를 꿈꿔볼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시장은 그런 가능성이 예전보다 훨씬 커진 상태에 가까워 보인다.


P.S. 후드로스터스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시모네’라는 카페는 에그타르트를 메인으로 파는 곳인데, 에그타르트 가격도 기본 4000원 이상이고 1만 원대 드립커피도 주력으로 판매하는데 사람이 가득했다. 이쯤 되면 고가 취향 소비는 일부 지역의 예외적인 현상이라기보다, 꽤 넓게 퍼진 흐름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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