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카페는 소리가 좋다

by 캡선생

최근에 성수에서 하루에 미팅이 3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할 것이 많아 8시에 여는 카페를 급하게 찾아 들어갔다.


카페 문을 열자 귓가를 강렬하게 때리는 90년대 힙합 음악에 확신했다. 이곳 커피는 맛있겠다. 세련된 인테리어 곳곳에는 리얼 힙합(?)을 상징하는 듯한 래퍼들의 LP와 초상화가 놓여 있었다. 카페에서 흔히 듣게 되는 무난한 힙합이 아니라, 매니아들이 들을 법한 동부와 서부 힙합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심지어 커피 원두명도 West Blend와 East Blend일 정도로 힙합에 진심이었다. West Blend는 미국 서부 힙합 G-Funk에서 영감을 받은 블렌드였고, East Blend는 미국 동부 힙합 Boom Bap에서 영감을 받은 블렌드였다. 이곳은 성수동 연무장길에 위치한 퍼프아웃(Puffou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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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맛은? 예상대로 좋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니 직장인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재미있는 건 대부분이 카페 안에서 마시려는 것이 아니라 테이크아웃을 하려고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아메리카노가 4,500원이고 드립커피는 1만 원 전후로 가격대가 낮지 않았는데도, 맛있는 커피를 원하는 직장인들은 짧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 한 잔 하러 온 것이다.


늘 궁금했다. 왜 음악을 뻔하지 않게 잘 트는 곳의 커피는 맛있고, 멜론 TOP 100 같은 관성적인 음악을 트는 곳의 커피는 맛이 없는 경우가 많을까.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이것이다. 음악을 뻔하지 않게 튼다는 것은 디테일에 민감하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감각에 예민하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감각은 미세한 차이가 맛을 크게 가르는 커피에도 영향을 주지 않나 싶다. 즉 뻔한 음악을 못 견디는 바리스타는, 그저 그런 커피도 쉽게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서울숲 근처의 단일서울도 그렇다. 이곳은 원두만 찾으러 오는 손님들이 종종 웨이팅을 할 정도로 커피 맛으로 유명한 곳인데, 늘 박물관에서 흘러나올 법한 Tycho의 「Melanine」 같은 엠비언트 일렉트로닉 음악이 나온다. 커피에만 집중하라는 무언의 속삭임 같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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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방문했지만 나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던 자양동의 공백도 그랬다. 이곳은 카페 사장님들이 본인 가게 휴무일에 방문하는, 커피인들의 카페 같은 곳이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운영한 지 7년이나 되었는데 지역 주민들은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고, 카페 사장님들이 주로 방문한다고 했다.


다양한 드립커피가 구비된 이곳에서는 90년대 가요가 흘러나왔다. 레트로 콘셉트를 표방하는 카페에서 종종 틀어주는 음악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익숙한 노래가 0.9배속으로 재생되는 듯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모든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틀어 늘어진 테이프가 만들어내는 묘한 사운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듣지 못한 소리였다. 어릴 적 추억과 함께 마셔서 그런지, 아니면 원체 맛있어서 그런지 커피도 맛있었다. 괜히 카페 사장님들이 본인들이 쉴 때 방문하는 카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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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설대로 감각에 민감하고 디테일까지 집요한 사장님들이기에, 뻔하지 않은 음악을 틀고 그것이 커피에도 영향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내가 좋은 음악을 듣고 감각 자체가 너그러워진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언급한 카페의 커피가 진짜 맛있는지는 여러분이 직접 한 번 판단해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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